▲샬롬 김 박사(美 쉐퍼드대학교).
십자가의 사도, 바울

바울 사도는 한 마디로 십자가에 매료된 사람이다. 예수님의 생전에 예수님의 제자로서 직접 따르지도 못했지만, 그는 십자가의 비밀을 가장 깊게 이해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다른 사도들과 비교할 때 확연하게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약에 포함된 글을 쓴 사도들은 바울 외에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 유다 등이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의 글에서 십자가를 의미있게 언급하는 사람은 바울 뿐이라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의 십자가 이해

신약 전체에서 보자면 십자가에 대한 언급은 총 71회이다. 좀 더 구분하자면 사복음서에서 47회, 사도 바울이 21회, 베드로 사도가 사도행전에서 2회, 요한 사도가 요한 계시록에서 1회이다.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복음은 실제로 십자가형이 집행되는 상황이니까 언급을 할 수밖에 없다. 사도 바울은 그의 여러 편지에서 십자가를 21회 언급한다. 그리고 십자가를 언급하는 횟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울의 십자가관이 다른 사도들의 십자가 이해와는 그 심도면에서 구분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사였던 누가가 쓴 사도행전에서 베드로 사도는 두 번 십자가를 언급하며 설교한다. 베드로 사도가 설교 속에서 언급하는 십자가는 유대인이 예수님을 죽인 십자가이다(사도행전 2:36, 4:10). 피해자 입장의 십자가인 것이다. 즉, 예수님이 죽임을 당한 죽음의 형틀로써의 십자가이다. 이것은 매우 일차적인 십자가의 이해이다. 또한 요한 사도가 쓴 요한계시록에 언급되는 십자가는 십자가가 있던 장소를 지칭할 뿐 십자가를 설명하지 않는다(계시록 11:8). 물론 당연히 베드로 사도도 예수님과 십자가의 비밀을 알고 있었을 것이지만 최소한 그들의 편지 속에서 발견되는 십자가의 이해의 폭은 달랐다(십자가 언급 횟수: 마태복음 16, 마가복음 12, 누가복음 8, 요한복음 11, 사도행전 2, 로마서 1, 고린도전서 6, 고린도후서 1, 갈라디아서 6, 에베소서 1, 빌립보서 1, 골로새서 3, 히브리서 2, 계시록 1). 베드로 사도가 일차적으로 예수님이 죽임 당하신 형틀과 장소 차원의 십자가였던 반면 바울 사도가 이해한 십자가는 상당히 달랐다.

바울 사도의 십자가 이해

그렇다면 과연 바울 사도가 이해한 십자가는 무엇일까? 먼저 그의 말을 살펴보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린도전서 1: 18). 바울 사도가 이해하는 십자가는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러나 구원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일 뿐이라고 이해한다. 십자가의 도라고 번역된 “도”의 그리스어 원어는 로고스이다. 이 로고스는 말씀, 법령, 교훈, 이성, 정신 능력 등을 뜻한다. 십자가에 내포된, 십자가가 제시하는 모든 것들이 구원으로 인도하기에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 스러운 무기이며 능력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바울 사도의 십자가 이해는 베드로사도의 일차적인 이해와는 차원이 너무도 다른 것을 보여준다.

바울 사도의 예수와 십자가의 이해를 더 살펴 보자.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쓴 편지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에 대하여 유대와 그리스인들의 이해를 비교하여 전한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린도전서 1: 22-25)

바울 사도는 당시의 민족별 시대정신을 이렇게 요약한다. 유대인들이 기적적인 표적을 찾고, 당시 지성의 상징인 헬라인들이 철학적 지혜를 찾는다는 것이다.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는 예수님에 대하여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드는 장애물이었다. 그리고 헬라인들에게도 신과 십자가는 어울리지 않는 미련한 것이었다. 가장 비천하고 흉악한 죄수들을 죽이는 십자가와 영광과 권능의 신은 어울리지 않는다. 로마의 황제는 신이나, 신의 아들로 여겨지고 그들은 초호화 생활을 하였다. 로마인들이 생각하는 신은 그러므로 초호화의 부귀와 영화를 누려야 한다. 그런데 십자가의 죄수는 그 정반대편에 서있는 것이다. 죄악과 수치의 상징이 어떻게 초월적이며 영광과 능력의 신과 연결이 되며, 신적 지혜와 연결이 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유대인들도, 희랍 철학자들도, 로마의 귀족들 어느 하나도 십자가를 이해할 수 있지 않았다. 오늘날도 이런 몰이해는 그래서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바울 사도는 십자가를 어떻게 이해하였는가? 그는 유대인이며 헬라 철학을 배운 인텔리였기에 두 민족의 장점과 단점을 알고 있었다. 바울 사도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해하는 십자가는 초월적 표적을 찾던 유대인들이 찾던 참 능력이며, 철학적 지혜를 구하던 헬라인들이 찾던 참 지혜였다(고린도전서 1:24). 그렇다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

바울 사도가 이해하는 십자가의 도는 우선 하나님과 우리를 화평케 하는 비밀이다. 이 화평을 위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원수로 만들었던 죄를 십자가의 피로 소멸하셨다는 것이다(에베소서 2:16).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에베소서 2:13-18)

이 화평케 함이 바울 사도가 앞서 언급한 십자가의 참된 능력과 지혜의 핵심이다. 세상의 어떤 표적과 지혜도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 시킴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케하는 구원을 줄 수가 없다. 그런데 십자가의 피가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존재를 완성시키는 지혜와 존재를 영원케 하는 능력, 이것이 십자가의 비밀이라고 그는 본 것이다. 존재를 완성하고 영원케 하지 못하는 지혜와 능력은 부질 없는 것이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과의 연합이며,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을 사는 것에 있다. 이것은 인간 편에서의 진정한 존재의 변화와 완성이 없이는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의 힘으로 이루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부족한 부분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감당하여 주심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화목하고, 새 사람을 만들어 주셨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골로새서 1:19-23)

십자가는 긍극적으로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하나님과 예수님과 화목, 즉 화해하도록 하는 비밀스런 능력이었다(골로새서 1:20). 이 화목은 불화를 전제로 하며 그것은 인간의 죄와 악으로 인해 하나님과 불화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죄 진 사람을 용서함으로 하나님과 화해케 하는 참된 능력이며, 참된 지혜가 된다.

중요한 것은 단순하게 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죄성을 없앰으로 존재의 완성을 준다는 것이다. 죄악 속에 있던 인간들에게 그러므로 십자가는 죄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근거가 된다. 이것은 우리가 믿음 안에 지속적으로 거하는 것과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을 또한 전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아무나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과의 화해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이러하기에 바울 사도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십자가만 자랑하고, 그것을 위한 삶의 곤핍함과 위험과 어려움을 무릎쓰고 “복음의 일꾼”이 된 것이다.

이 글은 <크로스코드>의 출판사 비전북하우스 제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