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샬롬 김 박사(美 쉐퍼드대학교)
우리는 십자가 칠언의 전체 구조 속에서 발견되는 귀한 암호를 해독해 내고 있다. 오늘은 십자가의 7언 속에 담긴 성도 혹은 제자, 사역자의 성숙에 담긴 암호를 해독해 볼 것이다.

사역 후의 유혹 극복

십자가의 첫 마디는 아버지께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실 것을 구하시지만, 마지막 말씀을 통하여 아버지께 자신의 영혼을 부탁하신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알려준다. 사역의 완성도 중요하지만, 사명을 감당하는 아들로서, 아버지 안에서의 정체성의 유지가 근본이자, 궁극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보는 예수님의 정체성은 아버지와 함께하시는 아들의 정체성이다. 이것이 늘 첫번째였다. 예수님의 인류에 대한 사역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늘 아버지와의 관계 정립이 된 후의 문제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한때 칠십 인의 전도자들이 나가 병 고치고, 귀신을 쫓는 사역의 승리감에 도취되어 돌아왔을 때 말씀하신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 20).” 이 말씀은 사역의 성취감에서 기뻐하지 말고 천국에 이름이 기록됨으로써 회복된 아버지와의 관계를 인하여 기뻐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땅의 것들은 변하지만 천국의 것들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잠시 사역을 잘한 후 연약해질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으로 온 우리 구원은 강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역이 끝난 후 아버지와의 관계 정립을 다시 확인하신다. 과연 나는 하나님 안에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사역 중 혹시 교만하여 지거나, 나태하여지지는 않았는가를 확인 하는 것이다. 이 확인 작업은 더 가혹하다. 사역의 차원에서 예수님의 죄 용서의 선포와 낙원의 초대와 새 관계의 선포는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도 영웅적이셨다. 그러나 혼자 사명을 감당하는 차원에서는 버림받음의 상징이 되시고, 목마름에 찌든다. 이 때가 사실은 중요한 때이다. 관계 속의 사역이 끝난 후 나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가 어려운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 때는 모든 욕망이 고개를 드는 순간이다. 사탄은 이 때를 최대한으로 이용한다. 관계 속의 외로움, 육체적 욕망과 결핍들이 치밀어 오르며 유혹한다. 이제는 너 자신을 위하여도 무엇인가 해보라고 유혹한다.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치명적인 문제들이다. 사역을 잘 감당한 후 자신을 지키는 것을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할 때 예수님의 해결 방법은 말씀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그 결핍을 눈에 보이는 어떤 세상적인 것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시편을 되뇌신다. 이미 살핀 바와 같이 심한 탈수 증상으로 죽어가시는 입장에서도 “물”이라는 물질를 구하시지 않고 “내가 목마르다”는 시편을 되뇌심으로 이중 암호를 우리에게 주신다. 그 이중 암호 중 첫째는 자신이 실제로 깊은 고통 가운데 있다는 것을 우리로 알게 하심으로 이 고통과 결핍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구원의 해답이라는 것을 알게 하신다. 둘째는 버림받고 목마름의 표현이 시편의 인용임을 알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는지의 해법을 알려 주신다. 그리고 그 시편 전체와 시편의 결론을 암호로 우리에게 주신다.

예수님의 이러한 방법은 인류 시초에서부터 있어 왔던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와 결핍의 해결의 방법을 제시하시는 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결핍해결을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떠나서 자기 좋은대로 행하는 것을 철저히 거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관계성 속에서 예수님은 사명을 완성하시고, 다시 죄인의 대표 차원에서 버려진 다음에도 아버지께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담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파괴한 후 숨은 것과, 추방된 것과의 큰 대조인 것이다.

엘리 엘리 나만 못박다니, 엘리 엘리 나의 사닥다리

이렇게 십자가 칠언의 말씀들을 종합적으로 보자면, 모든 성도들과 사역자의 자세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아버지로부터 시작하여 용서를 비는 기도, 회개한 죄인과의 동행, 가족과 제자들에 대한 배려를 우리는 첫 세 마디에서 확인한다. 이 때까지는 매우 자랑스럽고 신나는 사역이다. 성도의 삶은 그러나 사역의 기쁨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네번째 말씀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와 다섯 번째 말씀은 “내가 목마르다”를 지나쳐야 한다. 때로 인생을 살아 가면서, 혹은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의 임재와 응답이 없는 것 같을 때, 버려진 느낌을 받을 때 타는 목마름 속에서 외쳐도 응답이 없을 때를 지나야 한다.

그렇게 응답이 없을 때 사람들은 왜라고 질문한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친다.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왜 나를 구원하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면 모두 행복해 보이는 듯하다. 내가 제일 불행해보이고, 내가 제일 힘들어 보인다. 그럴때 사람들은 마치 자신 혼자 버려지고, 못 박힌 것 같이 느낀다. 그때가 “엘리 엘리 나만 못박다니”의 상황이다. 왜 내게만 이런 가혹한 어려움을 허락하십니까? 내 나를 구하시지 않습니까? 이런 절규 속에서 스스로 절망하고 믿음을 버린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상황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인내로 지나면 상황의 변화가 온다. 그리고 나를 버리셨나이까의 절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엘리 엘리 나의 사닥다리”로 변한다. 때로 버림 받은 것 같은 고난은 삶의 지름길이 되어 준다. 이것이 바로 집을 떠나 광야에서 잠을 자던 창세기 28장에서 야곱이 한 경험이었다. 당시 야곱은 형과 아버지에게 쫒기고 도망가는 처량한 신세였다. 편안한 집에서 쫓기듯 도망나오고 이제 드넓은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는 신세가 되었다. 자신의 죄로 인해 쫒기는 상황이긴 하지만 버림받은 것과 다름 아닌 상황이었다. 그러나 황량한 광야, 도울 자가 없던 그 버림받은 땅에서 그 밤에 여호와의 사닥다리를 본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받는다.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과정을 지나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게 이런 과정을 지나가게 하신다. 이 버려진 것 같은 최대의 결핍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을 통하여 다음 단계로 가는 것이다. 그 관계의 고독 이후에도 고난은 있다. 그것은 목마름이다. 영, 혼, 육의 평화와 회복의 목마름이다. 이것을 믿음으로 지날 때 그 다음 단계가 바로 테텔레스 타이, 다 이루었다이다. 그 네번째의 버려짐과 같은 고독, 다섯번째의 목마름을 이기지 않으면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신은 버림받는 상황으로 전락해 버린다. 그러나 그것을 견디었을 때 온전한 구원과 그 사명을 이룬다. 그리고 이 상황은 마지막으로 아버지께 영혼이 드려지는 아버지와의 연합으로 연결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고, 온전하게 하나님의 나라게 임한 상황이다. 이와 같이 십자가의 7언은 전체 구조 속에서 또한 놀라운 성도의 삶의 여정의 비밀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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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계속(이부분은 지난주에 이어 십자가 구조 속에서 해독되는 각 말씀의 암호에 관한 것입니다): 이 상황은 철저하게 혼자인 상황에서 아무도 예수님을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상황은 그러므로 철저하게 예수님의 고독한 시간이었다. 이 고독 속에서 예수님은 다윗의 시편들을 묵상하신다. 그리고 그 시편들을 읊조리신다. 어찌 보면 자신과의 싸움이었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싸움의 시간으로 만들지 않으셨다. 고통을 음미하시면서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상황이었지만 그 완벽한 고독을 통하여 이루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약 말씀을 통하여 음미하며 묵상하셨다.

여섯번째 말씀, “다 이루었다”는 그런 온전한 희생양으로써의 드려짐을 통해 인내와 순종의 열매가 무엇인지를 선포하신다. 그것은 인류 죄의 청산, 갚음, 탕감 그리고 구원의 완성, 새 창조, 그 것들의 다 이룸이다. 여섯번째 말씀의 대상은 예수님의 사명 자체이다. 사명은 각 인간이 가진 핵심적 삶의 내용이다. 이 사명에 대한 자세, 그리고 완성의 정도가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명을 다 완성하신다. 그러므로 구원자가 되시며, 만유의 주인이 되신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 사명을 다 완성하셨기 때문이다. 이 완성은 우선 창조의 재창조에 대한 선포였다. 또한 이 말은 단순히 사람들뿐만 아니라, 살핀대로 영계에 주는 교훈도 있었고, 전체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대한 선포이시기도 하셨다. 이 완성을 위하여 예수님은 철저한 버려짐과 피 흘림의 바쳐짐을 견디셨던 것이다.

일곱번째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다시 아버지를 듣게 된다. 예수님의 첫 대상과 마지막 대상은 아버지이다. 이것은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버지로 시작하여 하나님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아버지로 돌아오는 결국을 보게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정립을 통하여 예수님은 인류의 죄의 관계를 해결하였다. 그리고 사명을 완성하셨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아버지께 다시 돌아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