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영옥 박사.
벌써 가을 학기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학기가 시작된지 엊그제 같은데 이제 곧 긴 겨울 방학으로 들어갈 것이다. 늘 이맘때 쯤이면 내 마음은 많이 분주해진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상적인 일조차도 마감 시간에 쫓기는 듯한 기분이 된다. 아마도 차가운 겨울이 곧 올 것이라는 심리적 불안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교정의 나뭇잎들도 누렇게 빛이 바랬고 낙엽이 쌓인 호숫가에는 짧은 가을 햇살이 파리하다. 겨울을 생각나게 하는 모든 것들은 언제나 창백하다.

지난 주였다. 나는 학생들에게 ‘나의 하나님’이라는 주제의 글쓰기를 과제로 제시하면서 각자가 자신이 생각하는, 또는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자신의 입장에서 구체화하도록 방향을 잡아주었다. 그 주제의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성경을 인용하거나 추상적인 감상은 가급적 억제해야 한다는 것을 예를 들어 주었다.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말하기도 전에 먼저 울먹이며 눈물을 흘리면 그 다음의 언어는 힘을 잃는다. 다음은 익선 학생이 쓴 ‘나의 하나님’ 이라는 글이다. 모두 4페이지 정도의 글이지만 지면 관계로 요약하여 옮긴다.

지난 추석 명절은 너무나 길고 힘든 시간이었다. 부임해 오신지 두 해 밖에 되지 않은 우리 목사님이 사랑하는 아내를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보냈기 때문이다. 어린 두 딸 다솜이와 슬기와 함께 병상에서 마지막 예배를 드리던 날 사모님은 “엄마가 너무 미안하다. 그리고 목사님과 교회에 정말 미안합니다.” 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했다. 명절 끝날 사모님의 장례행렬을 뒤로 하고 나는 학교로 오면서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나의 중3 때의 일이 떠올랐다.

우리 집안에는 스님이 있을 정도로 불교가 깊이 뿌리를 박고 있었다. 나는 혼자 일곱 살 때 옆집 아주머니의 전도를 받아 교회에 다니게 되었지만 쉬는 달이 더 많았다. 그러다가 중3이 되던 해에 어머니께서 암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은 여덟 시간 동안 계속되었지만 어머니는 암세포를 완전히 제거 하지 못한 채 사형 선고를 받으셨다. 얼마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말에 나는 너무나 무서웠고 슬펐다.

그때 오래 동안 잊고 살았던 하나님이 생각났고 그날부터 나는 학업을 전폐하고 교회의 강대상 앞에서 울부짖었다. “하나님 어머니를 살려주세요. 어머니만 살려주신다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저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내가 클 때 까지만 살아있도록 해주세요. 20년만 더 살 수 있게 해주세요.”

한 달쯤 지났을 때에 집안의 먼 친척의 권유로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기도원을 찾았다. 첫날 100여명이 참석한 그 집회에서 나는 어머니가 눈물로 통회하면서 용서를 구하는 것을 보았다. 놀랍게도 어머니는 처녀 시절에 잠깐 교회에 나간 적이 있으셨다. 나도 어머니를 끌어안고 세 시간 가까이 몸부림치며 회개하고 눈물로 기도를 드렸다. 그날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자를 불쌍히 여기셨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할렐루야!

(나의 어머니는 4년 전에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병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후 20년을 더 사셨고 나는 어머니가 떠나신 후 목회자의 길을 가기 위해 이제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익선이의 글은 다음 기도로 끝을 맺었다.

하나님, 나의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께 여쭈어 봅니다. 어찌하여 우리 목사님의 사모님은 고쳐주지 않으셨는지요? 온 교인들이 눈물로 밤낮으로 기도를 드렸는데 어찌하여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셨는지요? 이제 저는 제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좀 더 잘 알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도록 나를 붙들어 주십시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하여 제가 정직한 신뢰를 갖도록 붙들어주십시오.

나는 익선 학생의 글을 읽고 깊이 마음이 움직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하나님께 여쭈어 보고 싶은 말인가. “어찌하여 어떤 이의 기도는 들어주시고 또 우리들의 기도에는 침묵하시는지요? 그러나 하나님. 당신의 사랑에 대해 정직한 믿음을 갖도록 우리를 붙들어주십시오. 순수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고개를 드니 나뭇잎은 딩굴며 흩어져 가고 바람소리는 더욱 요란하다. 참으로 우리 모두에게 한 줌 따스한 햇살이 그리운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