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라힘 씨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아랍말로, 그리고 순례자는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한국말로 이렇게 함께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지금 티그리스 강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락 전쟁을 거두어 주소서.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 사이의 오랜 갈등과 분쟁을 없애주소서.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의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이 싸움을 그치고 사이좋은 이웃으로 살게 하소서. 한 하 나님을 믿는 기독교와 유대교와 이슬람이 서로를 긍휼이 여기며 평화롭게 살게 하소서”

내가 아사브 해변에서 이브라힘 씨를 만난지 한 시간이 넘었고, 높은 언어의 장벽으로 인한 오랜 침묵에도 불구하고 그와 나 사이에는 지루함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손을 잡고 있지 않았지만 우리 사이에는 이웃 사랑과 평화의 언어가 교류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은사였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잔잔한 기적이었습니다.

이튿날은 주일날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에리트레아 정교회에 속한 아사브 성당에서 혼자 기도를 드린 후 순례자는 사흘간의 지부티 행 자전거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우선 서쪽의 에티오피아 국경으로 이어지는 간선도로를 15킬로미터 쯤 달린 후 지부티 방향의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었습니다. 아사브를 출발한지 2시간 쯤 경과했을까,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으므로 시장 끼가 밀려들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위에서는 오전의 태양이 무자비하게 이글거리고 있었습니다. 기온이 섭씨 35도 쯤으로 느껴지는 날씨였습니다.. 달려도 달려도 쉴만한 곳이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 쯤 더 달렸을까, 저만치 길섶에 그늘을 드리운 서너 그루의 가시나무가 순례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우선 비스킷을 하나 꺼내어 입에 넣었습니다. 비스킷은 장거리 오지 여행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인 대용 식품입니다. 비스킷을 씹는데 돌 씹는 맛이었습니다. 어제 호텔에서 삶아가지고 온 달걀을 하나 꺼내어 소금에 찍어 먹었는데 맛이 정상적인 달걀 맛이 아니었습니다. 간밤에 어느 구멍가게에서 산 달걀인데 그들은 이미 상한 오래된 달걀을 나에게 속여 판 것입니다. 이 비정상적인 고약한 달걀 맛이 아프리카의 정상적인 달걀 맛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연거푸 두세 개를 입안으로 쑤셔 넣었습니다.

한 30분간 쉬면서 찬송가를 부르고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낭독하는 동안 뱃속에서는 이미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우선 몸이 나른하고 현기증이 일기 시작하더니 구역질과 동시에 구토가 났습니다. 금방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일으켜 자전거를 끌고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현기증이 일어나 한두 번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열사병으로 쓰러지면 어쩌나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자동차가 멈추어 이 지치고 곤비한 순례자를 어딘가로 데려다주기를 빌었습니다. 한 시간에 한두 대 씩 지나가는 그 흔한 군용 화물차도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길, 처음에는 그 길을 나는 홀로 걷고 달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내가 혼자가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삼위일체 되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하늘 위에서는 하나님이, 땅 위에서는 예수님이, 내 영혼의 가슴 속에서는 성령께서 나를 보호하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나를 도와주심을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진한 몸으로 자전거를 저어가며 나는 찬송가 499장을 음송하기 시작했습니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 다. 주가 나와 동행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이 찬송가를 서너 번 음송하며 달리고 있을 때, 순례자의 시야에 독립 가옥 한 채가 가득 안겨왔습니다. 주님은 기진하고 핍절한 순례자를 광야의 황톳길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한 늙은 아버지와 장성한 두 아들이 사는 움막집으로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끝>

감사의 글

나의 자전거 괴나리봇짐에 선교 구제비를 꾹꾹 담아주신 하이델베르크 한인교회(담임 유영경 목사) 제직과 성도님들, 손창근 목사님, 만하임 갈릴리선교교회(담임 장광수 목사) 성도 님들, 처제 차남 집사, 마인츠의 남은순 집사님, 비슬로크의 전영희 집사님, 지금은 미국에 사시는 정연선, 박용연, 김성분 등 여러 집사님들, 그리고 미국 뉴욕에서 주경야독하며 틈틈이 모은 황금을 인애의 마음으로 송금해주신 전명숙 선생님에게 참맘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또한 글쓴이의 선교순례기를 ‘유럽크리스천신문’의 귀중한 지면에 30여회 이상 할애해주신 이창배 발행인 목사님께도 충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나의 조그마한 허리춤에 선교 순례 여행 경비를 꼬깃꼬깃 접어 넣어 주신 미국 버지니아 주에 사시는 구순의 모친 정옥자 권사님, 캘리포니아주 산디아고에 사는 맏누이동생 주일 권사, 같은 주 애나하임에 사는 둘째 누이동생 정희 집사, 버지니아주에서 오빠 대신 노모를 모시고 사는 막내 누이 은희 집사 등 혈육들에게 뜨거운 고마움을 표합니다.

마지막으로 꿈만 먹고 사는 남편을 사랑으로, 물질로, 기도로 내조하느라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된 아내(송화순)에게 하나님의 크신 위로와 상급을 빌며 눈물어린 고마움으로 아내의 가슴에 한 송이의 빨강 장미꽃을 선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