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가 자전거로 달린 5백 킬로미터의 마싸와-아사브 종단 홍해 해안 길은 참치, 붉은빛 전갱이, 킹 피쉬(king fish)라 불리는 왕어, 정어리, 등 1천 종이 넘는 물고기의 어획 지역이기도 합니다. 멀리 북쪽의 아카바 만과 수에즈 운하에서 시작하여 남쪽의 예멘과 지부티에 이르는 넓고 기다란 홍해 해역에는 큰 식용 새우인 바다가재, 게, 굴, 새우 등 고가(高價)의 어물로 가득합니다.

에리트레아에서는 물고기 소비량이 아주 낮습니다. 에리트레아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육류를 즐겨 먹기 때문입니다. 원래 유목민으로 살았고 목축과 농사로 살아가고 있는 에리트레아 사람들은 먹기에 간편하고 단조로운 음식 메뉴를 좋아합니다. 그들의 눈에는 그 싱싱하고 맛좋은 생선을 날것으로-회로 만들어- 먹는 우리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이 야만인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들은 생선을 굽거나 기름에 튀겨 먹는 것이 고작입니다. 토막낸 생선을 냄비에 넣어 고춧가루, 마늘, 파, 후추 등 갖은 양념을 섞어 국이나 찌개를 끓여 먹는 것을 그들은 상상조차도 못합니다.

에리트레아 해역의 홍해에 서식하는 물고기들은 다른 바다에 서식하는 물고기들보다 생존 위협이 훨씬 적어 수명이 깁니다. 바다에 그물을 쳐 자기들을 잡아가는 어부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30년 이상 계속된 에티오피아와의 에리트레아 독립 전쟁 기간이 이 해역의 물고기들에게는 최상의 태평천국이었을 것입니다. 에리트레아 정부가 외국으로부터 돈을 빌려 어선을 건조하거나 매입하고 어업을 장려하기 시작할 때까지 그 나라 해역에 서식하는 물고기들의 태평천국은 당분간 계속될 것입니다.

아스마라를 출발한지 닷새 만에 순례자는 에리트레아의 맨 남쪽 해안에 위치한 항구도시 아사브에 도착했습니다. 이튿날 수소문하여 겨우 찾은 자전거포에서 새 튜브를 갈아 끼웠습니다. 닷새 동안 모래와 자갈투성이의 비포장도로를 달리느라 만시창이가 된 자전거를 손질하고, 씻어주고, 기름을 쳤습니다. 순례자의 충실한 종 ‘당쇠’는 다시 말쑥하고 늠름한 자전거가 되었습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자동차 하나 없는 시내 거리를 일주했습니다. 그리고 해변을 찾아가 홍해 물에 잠시 발을 담그었습니다. 그리고 발가락 사이와 발목에 덕지덕지 끼인 때와 무좀으로 생긴 피부 껍질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떼어냈습니다. 여러해 전 이스라엘 성지순례 때 요단강과 갈릴리 호수와 사해에서 물에 발을 담그고 기도했던 내용과 성서 말씀이 되살아났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5)-

“주님, 이 맑고 깨끗한 물로 나의 더러운 몸을 씻어내듯 주님의 거룩한 영으로 나의 허약하고 피곤한 영혼을 소생시켜 주소서“

맨발로 백사장을 밟고 싶었지만 모래밭은 잘게 부서진 조개껍질과 산호초가 즐비하여 걸을 수 가 없었습니다. 광활한 홍해 바다를 바라보며 묵상에 잠겨 옛날 출애굽 사건을 유추하고 있는데 저만치서 한 노인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걸어오는 품이 꼭 대선지자 모세를 닮았습니다. 나이가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브라힘 씨는 에리트레아 남부 해안 지방에 사는 아파르 족 이슬람 신자였습니다. 예수님의 신성만 믿지 않을 뿐 그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알라)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브라힘)과 대선지자 모세(무사)를 믿는 독실한 모슬렘이었습니다. 내가 그에게 대선지자 모세를 닮았다고 칭찬하니까 오히려 그는 나를 나귀 타고 미디안 광야를 찾아온 젊은 모세로 보인다고 추켜세웠습니다.

이브라힘 씨와 나 사이에는 종교(신앙신조)가 다르고, 말(의사소통)이 다르고, 피부 색깔(민족)이 다르고, 생활 양식(전통과 관례)이 전혀 다른 보이지 않는 두터운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인애(人愛:사람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나 사이에는 무한한 평화가 있었습니다.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