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제1차 로잔대회가 열리는 모습
현대선교에 로잔운동만큼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도 없다. 첫번째 로잔운동의 가장 큰 영향은 유일주의 신학을 고수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다양성이 강조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는지에 관해 선교학자들 간에 논쟁이 뜨거운 것은 사실이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로잔위원회는 자신들의 신학적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만 했다. 일반적으로 구원론에 관해 종교신학은 4가지 유형을 나타내고 있는데 유일주의, 포괄주의, 보편주의, 다원주의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세주인가?”라는 질문에 로잔운동의 답변은 한 마디로 “그렇다”이다. 즉, 유일주의 입장이다. 유일주의는 한편 제한주의 혹은 배타주의라고도 불리고 있는데, 이들은 포괄주의자나 다원주의자의 견해를 따르지 않고 유일주의 신학을 고수하고 있다.

예를 들어 로잔언약에서는 일반 계시를 통해 구원 받을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로잔언약 제3항에 “우리는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반 계시를 통해서도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 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부인한다”고 발표한 것처럼 포괄주의 신학을 거부하고 있다. 포괄주의는 포용주의 혹은 내포주의라고도 불리는데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세주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 그러나…”로 표현한다. 그렇다 보니 이들은 보편적인 구원의 가능성을 인정하였고, 나아가 구원이 일반계시를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존 샌더스(John Sanders)와 피녹크(Clark H. Pinnock)가 있다.

더욱이 로잔언약 제3항에서는 다원주의자들이 따르는 혼합주의도 거부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는 또한 여하한 형태의 혼합주의를 거부하며, 그리스도께서 어떤 종교나 어떤 이데올로기를 통해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신다는 식의 대화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손상시키므로 이를 거부한다”고 말한다. 마닐라선언문을 살펴보면 역시 타종교에 구원의 길이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우리는 다른 종교나 이데올로기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또 다른 길이라고 볼 수 없으며,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되지 않는다면 인간의 영성은 하나님께 이르는 것이 아니라 심판에 이른다는 것을 믿는다.” 로잔운동자들은 다원주의를 거부한다. 다원주의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세주인가?”라는 질문에 “아니다”의 견해를 가지고 있고 대표적인 학자로는 존 힉(John Hick)이 있다.

이와 같이 로잔운동은 유일주의 신학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있어서 로잔운동에 나타난 구원론을 정리한다면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구원의 경험은 오직 한 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둘째 일반계시에는 구원이 없다고 믿고 있다. 셋째 타종교에는 어떤 구원도 없음을 믿고 있다. 로잔운동은 복음주의자들로 하여금 다양성이 강조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유일주의 신학을 고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즉 교회 건물이나 예배 스타일과 같은 ‘형식’(form)은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할지라도 복음과 말씀과 같은 ‘내용’(content)은 변함없이 고수해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두번째 로잔운동이 오늘날 세계선교에 끼친 가장 혁신적인 공헌이라면 복음주의자들로 하여금 전도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도 그리스도인의 임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했다. 사실 1966년 베를린 대회는 WCC의 급진적 선교관에 ‘선교=복음전파’라는 전통적 개념을 재천명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크리스처니티투데이가 밝힌 베를린 대회의 7가지 목적에서 잘 확인할 수 있다. (1)성경적 전도를 규정하는 것, (2)오늘날 사회가 기독교의 선교와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 (3)이 세대 안에 복음전파의 긴박성을 알리는 것, (4)우리 시대에 맞는 성경적 전도법을 발견하는 것, (5)성경적 전도의 장애물 연구와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 (6)복음 전파의 수고가 여러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음을 인지하는 것, (7)복음전파가 우선순위임을 인식시키는 것 등이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불거진 가난, 질병, 고아, 부의 불균형 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교회가 전혀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 관심을 가지고 의식전환을 시키는데 일등공신을 한 사람이 바로 존 스토트이다. 그는 1968년 WCC가 주최한 웁살라 대회에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복음주의 진영의 선교관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그리스도인의 사회참여가 너무 미약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영혼구령을 강조하는 것에 비해 사회적 책임이 너무나 약하였다. 그래서 그의 수고와 헌신 끝에 1차 로잔대회에서 밝힌 로잔언약에는 복음전파와 사회적 책임은 그리스도인의 임무임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로잔언약 제5항에 “또는 종종 전도와 사회참여가 서로 상반된 것으로 잘못 생각한 데 대하여 뉘우친다. …전도와 사회-정치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 부분임을 인정한다”고 언급하고 있듯이 복음주의 진영이 사회적 책임에 마음을 연 것은 혁신과도 같았다.

로잔언약 제5항에는 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자세히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레네 파딜라(Rene Padilla), 사무엘 에스코바(Samuel Escobar), 칼 헨리(Carl Henry)가 로잔대회 때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복음주의 선교개념의 패러다임을 바꾸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복음주의 선교관의 패러다임 변화는 소위 ‘급진적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이후 더욱 확산 되어져 갔다. 로잔언약은 베를린대회 때보다는 획기적으로 진일보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로잔운동은 전도와 사회적 책임 가운데 전도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전도의 긴박성을 강조한 것이다. 1974년 제1차 로잔대회에서 밝힌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은 1982년 그랜드래피즈(Grand Rapids) 대회에서 더욱 심층적으로 다루어졌다.

특이한 점은 사회적 책임의 형태(form)를 사회봉사(social service)와 사회활동(social action)으로 정하고, 구제나 박애 사업과 같은 사회봉사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사회의 구조적 악이나 인권 유린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회 활동에는 교회가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 그랜드래피즈 대회에서는 하나의 길을 제시해 주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천직(vocation)을 통해서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었다. 이 대회는 무엇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각인시켜 주었다. 오늘날에도 복음주의자들이 이 말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안희열 교수
- 침례신학대학교 선교학 교수
- 세계선교훈련원(WMTC) 원장
- 한국복음주의선교신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