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 일찍 순례자는 ‘바오밥(Baobab)의 마돈나’라 불리는 ‘성모 마리아의 거목(巨木)’이 있는 케렌(Keren)을 순례하기 위해 자전거 안장에 올라탔습니다. 아스마라에서 북쪽으로 75km 쯤 떨어진 케렌은 아스마라보다 고도가 1천 미터나 낮지만 굴곡이 많은 도로여서 산악 자전거 여행자에게는 쾌적한 라이딩 코스입니다. 도중에 여러 마을을 거쳐 갔는데 코에 커다란 금 고리를 걸고 목과 얼굴에는 적갈색 문신을 한 어여쁜 빌렌 족 여자들이 아카시아 그늘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들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점심 시간이 훨씬 지나 에리트레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로 알려진 케렌에 도착했는데 실제로는 인구가 8만 명도 되지 않은 조그마한 과거의 도시였습니다. 사람들이 이 도시를 가리켜 에리트레아에서 가장 신비스럽고 매혹적인 도시라고들 말하고 있는데, 케렌 주변의 평원에는 수백 살이 된 바오밥 나무와 아카시아 나무들이 점철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는 케렌에 도착하자마자 시중심지에서 2,3km 떨어진 거룩한 나무 ‘바오밥의 마돈나’를 순례했습니다. ‘바오밥’은 아프리카에서만 서식하는 커다란 상록수입니다. 이 지역의 가톨릭 신자들과 에리트레아 정교회 신자들은 거룩한 나무를 순례하여 기도하기를 즐겨합니다. 수백 년 이래 숭배되어오고 있는 이 거목을 손으로 만지거나 또는 입맞춤하며 기도를 드리면 풍요와 다산(多産)의 축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19세기 말엽에 ‘자선의 수녀들’(Sisters of Charity)이란 가톨릭계의 단체에서 직경 2미터의 바오밥 나무의 내부를 파내어 그 안에 성모 마리아 상을 모신 조그마한 예배실을 만들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인 1941년에 영국 공군기가 이 성지를 공습했을 때, 서너 명의 이탈리아 군인들이 이 나무 안의 예배실로 피신했습니다. 공습을 받은 나무는 크게 피해를 입었지만 성소와 이탈리아 군인들은 살아남았습니다. 해마다 5월 29일에는 수백 명의 순례자들이 이곳에 모여 노래 부르며 춤을 춥니다.

오늘날에도 만일 어떤 여자가 시집을 가고 싶거나 아기를 원한다면 그녀는 거룩한 바오밥 나무를 찾아가 그 나무 그늘에 커피를 준비해 놓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일 그곳을 찾은 순례자나 여행자가 그 커피 잔을 마신다면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내가 늙은 바오밥 나무 순례 중에는 대여섯 명의 이탈리아인 순례자들이 나무 주변을 서성거리며 커피 잔을 찾고 있었습니다. 커피 잔이 보이지 않자 그들은 교대로 성호를 긋거나 성모경을 암송하며 나무 안 성소로 들락날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을 바라보는 순례자는 그들 가운데 누군가를 한 사람 붙들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형제님,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형제님과도 함께 계십니다. 천국이 하늘나라에 있듯이 우리 마음과 우리 가정과 우리 믿음의 공동체에도 천국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 대상은 인간 동정녀 마리아가 아니고, 신부나 사제도 아니고, 피조물인 나무나 바위도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 대상은 오로지 우리를 지으시고 생명을 주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일 뿐입니다 -

기독교 신앙과 교리에 토속적이며 미신적인 요소를 혼합하여 믿는 에리트레아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에티오피아의 경우도 마찬가지 임-크리스천들의 신앙이 분명히 잘못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담대하지 못한 순례자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를 발하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나는 그 인상 깊은 거룩한 나무 전체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멀찍이 걸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바오밥 나무의 자태는 미려하고 숭고했습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검푸른 잎들이 바람에 하늘하늘 춤추고 있었습니다. 바오밥 나무는 순례자에게 에리트레아인 개인의 생사화복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에리트레아인 민족 공동체의 복지 회복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순례자는 웃음 잃은 에리트레아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중보 기도했습니다.

-주님,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흘릴 눈물 없어 마른 눈물로 우는 곤고한 자들을 사랑합니다. 사랑의 주님, 궁핍해서 허기지고 병들어 신음하고 있는 에리트레아 사람들 곁을 떠나지 마시고 그들의 얼굴에 주님의 생명을 바라보는 소망의 웃음을 가득 부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