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교회 교역자 시절, 대학부 청년들과 함께 한 옥한흠 목사(맨 왼쪽) ⓒ 사랑의교회 커뮤니케이션실 제공
▲교육전도사 시절 옥한흠 목사(맨 오른쪽)와 그의 아내인 김영순 사모 ⓒ 사랑의교회 커뮤니케이션실 제공
▲옥한흠 목사와 김영순 사모 ⓒ 사랑의교회 커뮤니케이션실 제공

“아들이 셋이나 있었지만, 가족끼리 바닷가는커녕 집 뒤 남산에도 한번 못 갔다. 너무 가난하던 시절이었는데, 남편은 사역하고 연구하다 집에 들어오면 피곤해서 잠들어버리기 일쑤였다. 유학을 이틀 앞둔 날인데도 남편은 그날 밤 집에 들어오질 않았다. 아침에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다음날 떠날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내와 자식들을 두고 유학을 떠날 사람이 애틋한 말 한마디 들려주지 않는다. 학생들이 불러내자 다시 나가버렸다. 그날도 종일토록 사방으로 쫓아다니다 밤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남편은 1970년부터 1989년 10월 병이 나 쓰러지기까지 19년 이상을 제자훈련에 완전히 미친 사람이었다”

사랑의교회 옥한흠 원로목사의 아내 김영순 사모가 남편을 생각하며 옥 목사의 책 「열정 40년」(국제제자훈련원)에 남긴 말이다. 이 책은 옥 목사가 지난 40여년 간의 제자훈련 사역을 회고하며 쓴 것으로, 책에는 김 사모의 간증문이 실려있다.

지난달 옥 목사가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후 많은 이들이 그의 쾌유를 기원하는 가운데, 김 사모의 글이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김 사모는 이 글에서 옥 목사와의 과거를 회상하며 “가난한 집안의 장남, 장래 목회자가 될 사람, 폐결핵으로 몸도 건강치 못했던 남편과의 결혼을 친정 어머니가 많이 반대하셨다”며 “그럼에도 남편의 목소리는 꽤 좋았고, 젊었기에 모든 게 끌렸었다. 그러나 결혼 후 남편은 성도교회 대학부를 맡으면서 청년들과 제자훈련 하느라 거의 집에 없었고, 가정에도 소홀했다”고 말했다.

김 사모는 옥 목사가 쉽고 편안한 길보다는 항상 힘들과 어려운 길을 택했다고 했다. 교회 담임 자리를 마다한채 교회 개척에 나섰고, 사랑의교회 개척 후에는 제자훈련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다고 회고했다. 개척 초기에는 제자훈련을 받을 사람이 없어 김 사모가 직접 옥 목사의 제자훈련 대상자가 되기도 했다고.

가정보다 제자훈련에 모든 것을 바친 옥 목사가 책 「예수 믿는 가정, 무엇이 다른가」를 냈을 때는 그의 둘 째 아들이 “아버지는 그런 책을 낼 자격이 없어요”라고 하기도 했단다. 그럴 때면 어려운 사역을 감당하는 남편이 안쓰러워 가슴이 많이 아렸다고 김 사모는 고백했다.

김 사모는 “사역에 바쁜 남편은 외부 집회 인도도 모두 거절하고 설교에 들어갈 시구를 찾기 위해 시집을 사러 가는 사람이었다. 일주일에 제자반 4개와 순장반 등을 인도하면서도 매일 성경을 연구했다. 공휴일에도 쉬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아이들도 차츰 아버지의 진심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김 사모는 “아이들이 아버지를 가장 존경하고 있다. 어려운 형편에 그 흔한 태권도장 한 번 보내주지 못했는데 지금까지 잘 자라줬다”며 “남편이 하나님의 일을 그렇게 미친듯이 열심히 해서 아이들도 잘 자라준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사모는 평생 남편의 제자훈련을 옆에서 지켜보며 제자훈련에 대한 남다른 애착도 생겼다. 그래서일까. 요즘 제자훈련에 골몰하는 교역자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제자훈련 하는 교역자들을 보면서 ‘저래서는 안되는데, 미쳐야 할텐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저런 값을 지불하지 않고 대채 무슨 제자훈련이 되겠어요. 가혹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제자훈련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남편의 사역을 옆에서 지켜보며 내린 제 결론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