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 한편이 이렇게 처연하고, 쓸쓸하고, 애처롭고, 애잔하고, 감성적이며 서정적일 수 있을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원령공주’, ‘이웃집 토토로’ 등을 제작한 일본 지브리스튜디오의 신작 '마루 밑 아리에티'에는 몸이 10cm 밖에 되지 않는 소인들이 등장한다.

▲ 애니메이션 ‘마루밑 아리에티’. 아리에티는 오래된 저택 마루밑에서 인간들의 물건을 빌려 살아가는 소인이다.

‘아리에티’는 교외에 위치한 오래된 저택 마루 밑에서 인간들의 물건을 몰래 훔쳐 살아가는 소인이자 14세 소녀다. 마법을 쓸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요정도 아니기에 이들이 바라본 세상은 거대하며 두렵고 위협적이다. 쥐와 싸우고 바퀴벌레에게 쫓기며 살충제를 피해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인간’이다. 이웃 소인들 중에는 인간들의 눈에 띄어 어느 날, 행방불명이 되거나, 이사를 갔다. 아리에티와 가족들은 인간들의 눈에 띄면 안 된다는 철칙을 갖고 살아간다. 이들이 소인종족의 유일한 남아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소인들은 ‘멸종 위기’에 놓여있다. 매일매일의 삶은 위태롭다.

하지만 힘없고 작고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사는 소인에게도 그 누구보다 따뜻한 가족이라는 있어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 아리에티의 아버지는 매일 인간들로부터 필요한 물건을 빌리기 위해 위험한 외출에 나서는 용기있는 가장이다.

어머니는 지혜롭게 가정을 지킨다. 인간에게서 빌린 각설탕과 비스킷으로 만든 어머니의 스튜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다. 어머니가 끓여준 허브티는 세상에서 가장 향기롭다.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인 가족상, 그 가족상을 소인들이 이루며 살고 있다. 너무나 평범한 가족의 모습이라 오히려 더 신선할 정도다.

호기심 많고 감수성 풍부한 아리에티는 아버지를 따라 인간들의 물건을 빌리러 나서는 모험을 감행한다. 각설탕을 가지러 간 작업 첫날, 우연히 인간 소년 ‘쇼우’의 눈에 띄게 된다. 부모님이 이혼하고, 심장병에 걸린 소년 쇼우는 외로운 아이다. 어머니는 아픈 쇼우를 내버려두고 외국으로 떠났다. 요양차 할머니의 저택에 머무르는 중이다. 우연히 만난 아리에티와 친해지고 싶지만, 인간을 믿지 못하는 아리에티는 쉽게 마음문을 열지 않는다.

▲소인 아리에티와 인간 소년 쇼우와의 교감과 우정은 어른들도 공감할만한 감동을 전한다.

인간은 무서운 존재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쇼우는 생각 외로 다정다감하다. 아리에티가 떨어뜨렸던 각설탕을 몰래 전해주고, 영국산 ‘인형의 집’에 딸린 주방을 선물한다. 다정한 쇼우의 모습에 조금씩 마음문을 열게 된 아리에티가 마루 밑 세계의 규칙을 어기고 쇼우에게 다가가던 어느 날, 아리에티 가족에게 예기치 않은 위험이 찾아온다.

제작자 미야자키 하야오는 메리 노튼의 영국 소설 ‘마루 밑 바로우어즈’(원제: The Borrowers)를 원작을 각색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기발한 판타지와 모험, 그리고 마루 밑 세계에 대한 세밀한 묘사에 이끌려 이 작품을 기획하게 됐다고 한다.

습기 많고 곰팡내 가득할 것 같은 마루 밑 이미지는 그의 손을 거쳐 쾌적한 주거공간으로 변신했다. 소인 ‘아리에티’는 빨간 원피스와 갈색 부츠, 빨래 집게 머리핀으로 작업 복장을 갖추고 벌레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구슬 달린 핀을 허리춤에 찌른 채 마루밑, 벽장속, 넝쿨 잎 사이를 달리며 기발한 모험을 펼친다.

첨단을 달리는 최신 3D영화가 각광받는 요즘,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그려낸 2D애니메이션은 따뜻하며 서정적이다. ‘상생’(相生)을 추구하는 소인 아리에티와 인간 소년 쇼우와의 만남과 교감의 깊이는 어른들도 공감할 만한 감동적인 여운을 남긴다. 9월 9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