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하루하루 연습을 거듭하면 나도 언젠가 멋진 음악가가 될 수 있겠지?”

“오후 6시만 되면 거리에서 총격전이 시작되고, 모두 잠을 청해야 한다. 가끔 대낮에도 총격전이 벌어져 아직 집에 돌아오지 못한 엄마를 기다린다. 혹시 총에 맞아 부상을 입지는 않았는지 걱정이다. 친구들 중에도 총상을 입어 다음날 학교를 나오지 못할 경우도 있다. 총상을 입지 않아도 사는 것은 ‘지옥’이다. 13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약에 중독돼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자체가 전쟁이다. 빈곤에서 해방되고 싶다.”

어린 아이의 입에서 ‘사는 것이 지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각박한 현실이 바로 남미의 석유부국인 베네수엘라 빈곤지역 아이들이 겪는 실상이었다. 꿈이나 희망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조차 사치로 여겨지는 그야말로 밑바닥의 삶. 이 아이들이 마음껏 희망할 수 있는 세상으로 안내하고, “코끼리처럼 큰 걸음으로 세상을 향해 나가겠다”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말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은 ‘음악’이었다.

빈곤지역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음악교육을 통해 희망을 선물하고자 했던 ‘엘시스테마’(El Sistema) 프로젝트는 1975년 베네수엘라의 한 도시의 허름한 차고에서 시작됐다. 들리는 거라곤 총소리 뿐이었던 전과 5범 소년을 포함한 11명의 아이들은 총 대신 악기를 손에 들고, 난생 처음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5년 뒤, 차고에서 열렸던 음악교실은 베네수엘라 전역에 200개 센터가 되었고, 11명이었던 단원수는 30만명에 이르렀다.

오는 12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영화 ‘엘시스테마’는 거리의 아이들이 어떻게 음악을 통해 삶이 변화되는지 여정을 그리고 있다. 지휘자이자 경제학자였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Jose Antonio Abreu)라는 한 사람의 꿈에서 시작된 ‘엘시스테마’라는 공동체가 어떤 과정을 통해 전 세계적인 영향을 끼치는 기적의 아이콘이 됐는지 다양하고 역동적인 영상과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종이오케스트라를 통해 음악의 기초를 터득하고 각 단계별 오디션을 거치며 좀 더 구체적으로 음악을 배워간다. 개중에는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등 전문적인 음악가로 성장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엘시스테마는 실력이 뛰어난 아이들을 발굴해 성공한 음악가로 키우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음악을 접할 기회가 없는 거리의 아이들에게 오케스트라 연주를 가르치면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풍부한 감수성을 일께워주고, 희망을 갖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데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엘시스테마 설립자인 아브레우 박사(가운데).

이 일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하고 헌신했다. 설립자 아브레우 박사를 비롯해 지휘자, 교사, 수많은 자원봉사자들……. 이들은 월급이 남보다 적고 그 결과가 단시간만에 눈에 띄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가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내어놓았다.

아브레우 박사는 말한다. “엄청난 부를 가진 선진국의 사람들은 권태와 염세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더 이상 지켜야 할 것, 이루고 싶은 것이 없는 그들은 엄청난 부를 가졌기에 오히려 더 비참할 수 있다. 가난한 아이들은 음악을 배우며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그리고 거기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지켜야 할 가치가 있고, 이뤄야할 꿈이 있다면 가난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삶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 꿈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 진짜 ‘부자’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비참했다. 하지만 그는 그 절망적이고 비참한 상황 속에서 주저앉지 않았다. 그는 소경이라는 자신의 주어진 처지에 절망하기 보다 부르짖을 수 있는 입이 있음을 감사했다. 설령 제자들이 그를 막을지라도 그는 끝까지 “나사렛 예수”를 부르짖으며 구원을 요청했고, 그는 결국 나음을 입었다. 바디매오처럼 부르짖음을 포기하지 않고, 코끼리가 걷듯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보면, ‘엘시스테마’의 기적은 오늘날 이 자리에 서 있는 우리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