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에 ‘라은성 교수의 교회사 맥 잡기’를 연재 중인 라은성 교수가 교회사 속 오늘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무심코 흘려 보낸 오늘, 그 옛날 누군가는 예수를 전하기 위해 목숨을 버리기도 했을텐데요. 1천년 전 오늘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7월 19일>

445년 오늘은 이집트의 수도사 아르세니우스(Arsenius the Great, 350-354~445년 7월 19일)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아르세니우스가 세상을 떠날 때 주위에 있었던 수도사들은 그가 우는 것을 목격하고 뭔가 두려워하는게 아닌가 하고 매우 궁금했습니다. 그들이 물었습니다. “아버님! 정말 두려우십니까?”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그래! 수도사가 되었던 지금까지 나를 떠나지 않은 것은 두려움이란다.”

<7월 20일>

1160년 오늘은 유명한 『네 권으로 된 명제들』(Libri Quattuor Sententiarum)을 쓴 피에르 롬바르드(Pierre Lombard, 약 1100~1160년 7월 20일)가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그는 스콜라주의 학자며 감독으로서 신학적 교재를 쓴 인물입니다. 이 작품은 중세 대학교에서 사용한 교과서입니다. 성경 외에 다른 책이 없었기 때문에 중세시대에 탁월한 신학자들인 알베르트, 토머스 아퀴나스, 옥캄의 윌리엄, 그리고 가브리엘 비엘 등은 모두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마르틴 루터 역시 『네 권으로 된 명제들』을 읽곤 했습니다. 1권은 삼위일체, 2권은 창조, 3권은 그리스도와 타락, 그리고 4권은 성례를 다루고 있습니다.

<7월 21일>

285년 오늘 로마제국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약 244년 12월 10일~311년 12월 3일)는 넓은 로마제국을 혼자 다스리기 어려워서 공동 황제로 막시미아누스(Maximianus, 약 250~310년 7월)를 임명했습니다. 그리하여 ‘2두 정치’(Diarchy)를 시도했습니다. 자신은 동로마제국을, 막시미아누스에게는 서로마제국을 다스리도록 했습니다. 293년 3월 1일 그는 다시 로마제국을 넷으로 나누어서 자신 밑에는 갈레리우스(Galerius, 305~311)를 또 막시미아누스 밑에는 콘스탄티우스(Constantius, 305~306)를 두어 ‘4두 정치’(Tetrarchy)를 실시했습니다.

<7월 22일>

로마교황 이노센트 3세의 사절 아날드 아마우리(Anald Amaury)는 교황에게 “남녀노소 구분하지 않고 남김도 없이 제거했습니다!”고 보고했습니다. 십자군들이 그에게 어떻게 이단자들을 구별할 수 있었는지를 묻자 그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모두 죽여 버려라! 하나님의 뜻이니라!”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통용됐던 일이었습니다. 이 십자군운동을 가리켜 ‘알비파 십자군운동’(Albigensian Crusade)이라 부릅니다.

<7월 23일>

1742년 오늘은 부흥주의자 존 웨슬리의 모친 수잔나(Susanna Wesley, 1669년 1월~1742년 7월 23일)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날입니다. 1688년 11월 11일 그녀는 새뮤얼 웨슬리를 만나 결혼하여 19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9명은 어린 시절에 잃어버리고 네 명은 쌍둥이들로서 죽었습니다. 두 차례나 집은 불에 탔습니다. 첫 번째 화재에서 존은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그래서 매주 그녀는 한 명씩 가슴에 안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두 번째 화재로 인해 그녀는 2년 동안 다른 집들에 자녀들을 흩어져 살도록 했습니다. 웨슬리 아이들은 정말 힘들게 살았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그녀는 명상과 신앙적 증진을 위해 늘 매진했습니다.

<7월 24일>

1725년 오늘은 ‘자비로운 주 하나님’(Amazing Grace)의 작사자인 존 뉴턴(John Newton, 1725년 7월 24일~1807년 12월 21일)이 태어난 날입니다. 노예선에서 일하는 도중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그는 선원과 아프리카 배의 노예무역을 폐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1764년 앵글리칸 목회자가 되어 매주 친숙한 가락으로 찬송시들을 지었습니다. 1787년 뉴턴은 노예무역을 폐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를 돕기 위해 ‘아프리카 노예무역에 관한 생각들’(Thoughts Upon the African Slave Trade)을 썼습니다.

<7월 25일>

1593년 프랑스 왕 앙리 4세는 프로테스탄트였다가 1572년 8월 24일 ‘바르톨로뮤의 대학살’(Massacre of St. Bartholomew)을 겪으면서 오늘 정치적인 이유로 로마 카톨릭주의로 개종합니다. 1593년 7월 그는 로마 카톨릭 감독들과 신학자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파리의 데니스 성당으로 갔습니다. 마침내 앙리 4세는 1593년 프로테스탄트주의를 공적으로 포기했습니다. 그 이후 그는 1595년 ‘낭트 칙령’을 발표하여 프랑스 위그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