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에 ‘라은성 교수의 교회사 맥 잡기’를 연재 중인 라은성 교수가 교회사 속 오늘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무심코 흘려 보낸 오늘, 그 옛날 누군가는 예수를 전하기 위해 목숨을 버리기도 했을텐데요. 1천년 전 오늘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6월 14일>

오늘은 전통적으로 루터란에서 동방교회 4명의 박사들 중 닛사의 그레고리를 추모하는 날입니다. 그가 정확하게 언제 태어났는지는 모르나 335년에 태어나 394년 이후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되는 닛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 약 335년~395년 3월 9일)는 위대한 바실의 남동생으로서 경건한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닛사의 그레고리를 가리켜 ‘수도원운동의 아버지’라 부릅니다. 그의 영적 순례를 사람들은 세 가지 여행으로 보았는데 빛, 구름, 그리고 어두움의 여행이라고 했습니다.

<6월 15일>

오늘은 독일의 신비주의자 요하네스 타울러(Johannes Tauler, 약1300~1361년 6월 15일)가 스위스 슈트라스부르크에서 태어난 날입니다. 15세에 스트라스부르그에 있는 도미니크 수도원에 가입하여 2년 동안 수습 수도사로 지냈고 8년 동안 기본적 신학을 배웠습니다. 엑하르트의 설교를 들으면서 신비주의에 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후 쾰른의 도미니크 대학교에서 4년간 학문을 배울 때에도 엑하르트 설교를 들었습니다. 쾰른에서 엑하르트는 범신론자로 고소를 받았지만 무혐의로 벗어났습니다. 엑하르트 외에도 여러 신비주의자들에 관해 배웠습니다.

<6월 16일>

영국 감독, 신학자, 변증가, 그리고 철학자인 조셉 버틀러(Joseph Butler, 1692년 5월 18일~1752년 6월 16일)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날입니다. 버틀러는 토머스 홉스의 이기주의(egonism)와 존 로크의 개인 주체성(personal identity)에 영향을 끼쳤고, 후에는 데이빗 흄과 아담 스미스와 같은 철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당대에 가장 유명한 변증서를 썼는데 『종교, 자연 및 계시된 것들, 자연의 법칙과 과정의 유사성』(Analogy of Religion, Natural and Revealed, to the Constitution and Course of Nature)이었습니다.

<6월 17일>

1703년 오늘 감리교의 창설자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년 6월 28일~1791년 3월 2일)가 영국의 Epworth에서 태어났습니다. 웨슬리의 생애는 세 가지 시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Holy Club’을 설립했을 때이고, 둘째는 신대륙 조지아 주의 Savanah에서의 선교사 시절, 그리고 셋째는 영국으로 돌아온 런던에서의 시절 등입니다. 1738년 5월 24일 그는 런던 Aldersgate Street에서의 모라비안 모임에서 영적 체험을 했습니다. 마틴 루터가 쓴 로마서 주석의 서문을 읽으면서 그는 유명한 “내 가슴이 이상하게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I felt my heart strangely warmed)”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6월 18일>

1546년 오늘 영국의 프로테스탄트였던 앤 애스큐(Anne Askew, 1521년~1546년 7월 16일)가 화체설을 부인한다는 이유로 정죄를 받았습니다. 화체설이란 성례식에서 떡과 포도잔이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보혈로 변화된다는 이론입니다. 앤 애스큐는 영국 시인이며 프로테스탄트였습니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년 11월 30일~1910년 4월 21일)이 1937년에 쓴 『왕자와 거지』(the Prince and the Pauper)의 2장 31페이지를 보면, 앤 애스큐의 화형장면이 등장합니다.

<6월 19일>

‘설교자들의 황태자’라 불리는 찰스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년 6월 19일~1892년 1월 31일)이 태어난 날입니다. 평생동안 10,000,000명에게 설교했으며 일주일에 10차례 설교를 감당했습니다. 수많은 언어로 그의 설교는 번역되었는데, 스펄전은 38년 동안 런던에 있는 New Park Street Chapel의 목회자로 사역했습니다. 그는 칼빈주의자는 아니지만 칼빈의 사상을 따르는 사람들과 매우 친숙했기에 ‘마지막 청교도’(The Last Puritan)라는 별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비록 조직신학자는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주권과 회개에 대한 인간의 책임성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유명한 말입니다. “주여! 선택한 자들을 부르시며 더 많은 자들을 선택하소서!”

<6월 20일>

1530년 오늘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로스 5세가 ‘아우크스부르크 의회’(Diet of Augstburg)를 공식적으로 개최한 날입니다. 그 이유는프랑스에 대한 전쟁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1529년 프랑스와 성공적인 평화협정을 체결한 후 독일 내 종교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