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만석 목사
지난 한 주 동안은 크리스찬타임즈(발행인 이윤태 장로)에서 주최한 이슬람 세미나를 인도하기 위해 미국의 애틀랜타에 머물렀다. 몇 교회를 순회하며 이슬람 세미나를 인도하던 중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는데 신문을 무료로 나눠주는 것이었다. 광고면까지 포함해서 80여쪽이나 되는데 신문들(미주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등)이 매일 쏟아져 나와 한인 슈퍼마켓이나 식당에서 경쟁적으로 배포되고 있었다. 신문을 하나 집어 훑어보니 이슬람에 관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2010년 5월 24일자 애틀랜타 중앙일보 A-7면에 ‘유럽이 이슬람 이긴 후 300년 문화 역주행 시작’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이 글은 문화평론가라는 한국 사람이 쓴 기사로 ‘신의 용광로’(데이비드 리버링 루이스 저, 이종인 역)라는 책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기사 내용을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요약하자면 ‘이슬람 군대가 당시 기독교 지역이었던 유럽을 침략하여 스페인을 점령하고, 프랑스의 중부 평원 피레네 산맥 96Km 지점에 있는 푸아티에까지 진격하여 벌어진 전투에서 프랑크족의 지도자 카를 마르텔이 승리를 거둠으로 이슬람의 유럽 진출을 막았던 역사적 사건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그 때 이슬람 군대가 이겼으면 유럽은 이슬람의 찬란한 문명을 통해 더욱 발전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기독교 군대가 이겼기에 유럽은 발전의 기회를 놓쳤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만일 이슬람이 이겼더라면 서양은 세계적인 이슬람 제국에 흡수되었을 것이며 성직자 계급이 따로 없고 모든 종교 신앙은 존중받으며 많은 문명적 이득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슬람이 13세기 초까지 약 400년 간 스페인에 정착해 있는 동안 이슬람의 관용으로 유대교와 기독교를 융합하여 선진문화를 만들어 냈다고 주장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몇 가지 느낀 것이 있다. 첫째는 소위 글을 쓰는 지식인이라면 자신의 전공이 아닌 분야는 함부로 손을 대지 말아야 하는데 진위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도 없으면서 비전문 분야의 책을 논평하는 행위는 자제할 것을 권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슬람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몰라서 그랬는지, 혹은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책을 현란한 기자의 글 솜씨로 미화하여 추천 도서라고 소개하는 것이 씁쓸했다. 물론 지금의 서양에서는 테러를 당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이슬람에 대해서 감히 부정적으로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에 있다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이런 글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둘째는 이슬람의 찬란한 문명이라는 것이 과연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슬람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주후 570년에 태어난 무함마드라는 사람이 주후 610년 자신의 종족신 알라(Allah)를 유일신이라고 주장하다가 우상숭배자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주후 622년 메디나(Medina)로 이주하면서 창설한 종교다. 그는 메디나에 온지 채 2년이 안 되어서 최고 통치자의 자리에 등극하였다. 그가 아라비아 제 2도시 메디나의 통치권을 쥐고 처음 맞는 해인 주후 624년부터 군사력과 정치적 힘이 생기자 기독교인들과 유대교인들(Nadir족, Quraiza족 , Khaibar족)을 살육하고 유목민들을 학살하고 군사력을 키워 630년 메카의 항복을 받아내 아라비아 반도를 점령했다. 그리고 주후 632년 무함마드 사후에도 칼리프들을 통해서 칼을 통한 정복 역사는 계속되었다. 이들이 어떤 문화나 문명의 유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생각 없이 파괴와 살육을 통해 정복 행진을 한 것은 이란이나 이집트를 정복할 때의 역사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이슬람에서는 문화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말에 분노하거나 냉소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문화란 음악과 미술, 문학 등이 어우러진 삶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슬람에서는 음악을 금하고 있다. 하디스에 보면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여자의 노래 소리를 듣는 자는 심판의 날에 끓는 납을 그 귀에 채워 넣을 것이다’(Fatawa Islamiyah, Vol. 7, Pages 188-189, DARUSSALAM)라고 했으며 ‘간음과 음악과 음주와 남자가 실크(비단) 옷을 입는 것을 허용하는 자들은 산이 무너져 죽을 것이며 거기서 살아남은 자들은 심판의 날까지 돼지와 원숭이가 될 것이라’(Sahih al Bukhari Hadith No. 5990)고 한다. 그래서 이란에서는 유치원부터 대학교 때까지 음악이라는 과목이 없고 소말리아에서는 14개 라디오 방송에 음악을 방송하는 일조차 금하고 있다.(매일경제 2010.4.13)

미술은 어떤가? 그림을 그린 자와 그림을 소유한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이며, 천사는 그림이 있는 집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 이슬람의 가르침(Sahih Bukhari vol 3. book. 34, no. 318)이다. 물론 조각은 사탄의 행위로 간주하고 더욱 금하고 있다.(꾸란5:90) 한글 꾸란에는 이 구절을 우상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아랍어 원문은 ‘Al Ansab’이라고 되어 있으며 이슬람사전에서 이 단어는 ‘숭배를 위한 우상뿐만 아니라 어떤 형상을 새기거나 조각하거나 파거나 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율법을 따라 아프간 탈레반 정부가 온 세계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6세기에 만들어진 세계문화재인 바미안 석불을 로켓포로 파괴한 것은 유명한 사건이다.

또한 시(詩)는 어떤가? 무함마드는 메디나에서 시인들을 죽였다. 또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에는 ‘길을 잃고 헤매는 자들은 시인들의 뒤를 따른다’(꾸란26:224)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시 뿐만 아니라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이 지은 모든 예술 장르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이슬람 여성학대를 고발한 영화 ‘굴종(Submission)’을 제작한 네덜란드 영화감독 테오 반 고호 살해사건(2007.11 무함마드 부예리)이나 이슬람을 풍자한 책 ‘악마의 시’(Satanic Verses)를 쓴 영국 소설가 살만 루시디를 살해하면 150만불의 상금을 줄 것이라는 파트와(Fatwa, 알라의 이름으로 내리는 종교적 명령) 선포(1989.2 이란 호메이니) 등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슬람의 역사에 보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관한 기사가 있다. 2대 칼리프인 우마르가 이슬람 세계를 통치하던 때 아므르 알 아아스(Amr al-Aas) 장군을 보내 이집트를 점령했다. 당시 이집트 수도였던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한 그는 세계 최대의 도서관을 발견했다. 역사에 의하면 거기에는 수십만권의 책과 두루마리들이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도서관의 책들을 어떻게 할지를 물으니 우마르는 ‘그것이 꾸란과 조화를 이루는 내용이라면 더 이상 필요치 않으며 꾸란과 다른 내용이라면 이단 문서이므로 파괴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명령을 받은 아아스 장군은 그 책과 두루마리들을 도시의 목욕탕 땔감으로 주어 6개월간 모두 태워 없앴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천주교의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이 역사를 2006년 1월 18일 그의 연설문에 인용했다. 물론 이 이야기의 진위의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미술, 음악, 조각, 시, 문학 등을 대하는 이슬람의 태도를 볼 때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의 찬란한 문명을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앞서 언급했던 기사에서는 이슬람의 찬란한 문명으로 천문학, 삼각법, 아라비아 숫자, 그리스 철학 등을 꼽았는데 천문학은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 혹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생하여 발전한 것이다. 이슬람이 천문학의 원조라면 정확한 태양력을 놔두고 왜 부정확한 월력(음력)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을까. 또한 삼각법은 기원전 6세기경에 그리스의 탈레스가 처음 사용했다고 전해지며 십진법이나 ‘0’(Zero)의 개념 등은 인도에서 만들어 유럽으로 건너간 것이다. 그것이 아라비아를 거쳐 갔다고 아라비아 숫자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지금도 아라비아에서는 우리가 사용하는 1, 2, 3, 4 등의 숫자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스의 철학과 문학은 다신론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이슬람은 유일신 철학을 기본으로 한다. 이것을 마치 이슬람이 만들어 낸 문명처럼 홍보하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지만 이런 책을 생각 없이 옮기면서 추천도서랍시고 순진한 사람들을 오도하는 것이 더욱 기가 막힌다.

가장 황당한 것은 이슬람이 유럽을 점령했다면 모든 종교적 신념은 존중받았을 것이라고 하는 대목이다. 지구상의 어느 이슬람 국가가 다른 종교적 신념을 온전히 존중한단 말인가? 인도네시아처럼 자유로운 이슬람 국가도 ‘빤짜실라’라는 정책을 통해 5대 종교만 인정을 하고 그나마도 무슬림들에게는 개종과 전도를 제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란도 유엔 인권선언문에 서명을 했지만 이슬람에서 타종교로 개종한 이들이 가혹한 고통을 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가옥이 불타고 집단살해를 당하며 수단에는 이슬람 정부와 테러단체가 공모하여 30만명의 기독교인들을 죽여 국제 사법재판소가 바시르 대통령에게 소환장을 발부한 상태다. 지금도 수단에서는 기독교인들을 납치해 1인당 100달러에 팔아먹는 노예시장이 무슬림들의 인기 직종 중 하나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종한 무슬림들은 목숨이 위태하여 숨어 다니고 가족들에 의해서 가혹한 명예살인을 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이슬람이 유럽을 점령했다면 모든 종교적 신념이 존중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지라기보다는 무책임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비단 미국 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 되어 버렸다. 소위 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라도 그렇다. 이슬람 측에서 주장하는 홍보자료를 먼저 접한 사람은 속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유명 만화가 모 여대 교수도 유럽인들이 몽둥이 들고 토끼를 쫓아다니고 있을 때 이슬람의 찬란한 문명을 보고 놀랐다는 주장을 만화로 그린 것을 보았다. 어수선한 세상에 살수록 검증된 참된 정보를 분별하는 지혜가 더욱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이만석 목사(한국이란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