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덕주 교수 ⓒ 크리스천투데이 DB
9일 오전 7시 서울 신문로 새문안교회(담임 이수영 목사). 이른 시간임에도 예배당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주제를 ‘4·19 학생운동과 오늘의 학생운동’으로 정하고 4월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를 열었다. 역사적인 달, 더군다나 50주년을 맞은 의미있는 4월의 아침은 평온했지만, 긴장이 있었다.

“눈을 부릅뜬 채 입을 벌리고 그 무엇을 부르짓다가, 그 무엇을 노려보다가 스러진 아들. 그러나 나는 울지 않았다. 거룩한 내 아들, 아니 대한의 아들이 과감히 죽어 가는데 왜 울어야 하는가. 장하다 내 아들! 어미는 울지 않으련다.”(강효순 ‘4·19 혁명투사의 모(母) 이계단 여사의 수기’ 中)

‘4·19 학생혁명 50주년의 역사신학적 의미’를 제목으로 발표한 감신대 이덕주 교수의 목소리는 예배당 안 가득히 퍼졌다. 약간의 떨림도 있었다. 객석은 조용했다. 사람들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눈을 크게 떴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 교수는 “(학생들의 죽음 앞에서) 교회는 머리룰 숙이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독재정권의 폭력과 총알에 수 없이 스러진 젊은 청년 학생들의 죽음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었던 한국교회는 4·19에 대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이 교수가 말을 잇는다. “교회는 입이 있으나 할 말이 없지만(有口無言), 희생자들은 한국교회에 대해 입은 없으나 할 말이 많다.(無口多言)”

그는 독재에 맞서 정의를 외치며 목숨을 던졌던 4·19 혁명의 정신 앞에 한국교회는 회개해야 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교권 분쟁에 몰두해 자기 정화 능력을 상실함으로 부패한 정권에 대한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타락한 정권과 결탁해 그 선전 도구가 됐던 과오” 때문이다. “단지 같은 기독교인이란 이유로 그 능력과 자질을 묻지 않고 정치인들을 맹목적으로 지지, 후원함으로 집단 이기주의의 대표적인 집단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은 이들에게서도 이 교수와 같은 ‘의분’(義憤)이 이는 듯했다. 이 교수의 목소리는 점점 힘을 더했고 객석은 더욱 조용해져 갔다. “4·19는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권력에 대한 심판만은 아니었다. 그런 정치권력의 부패와 타락에 침묵했을 뿐 아니라 동조 내지 방조한 교회에 대한 심판이기도 했다. 4·19는 정치권력에 밀착해 이권과 편의를 추구하려는 종교단체의 집단 이기주의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었다.”

이 교수는 당시 기독교, 특히 자신이 속한 감리교의 정교유착(政敎癒着)을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이승만 전 대통령은 감리교 장로였고 이기붕 전 부통령과 그의 아내 박마리아 여사는 감리교 권사였다. 감리교에게 이들은 교단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존재였고, 이들 역시 자신들의 정치적 지위를 위해 기독교라는 지지기반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감리교는 선거지원을, 정치인들은 감리교에 여러 특혜를 제공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는 없었다. “누가 누구를 정죄할 것인가 하는 집단적 공범 의식에 근거한 책임무용론이 확산됐다. 여기에 1년 후 군사혁명으로 인한 새로운 정치 환경이 조성되면서 4·19와 관련한 기독교계의 회개와 반성운동은 사실상 종결됐다. 결국 한국교회는 시간적으론 21세기 글로벌시대를 살면서도 정신적으론 여전히 ‘자유당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4·19를 미완의 혁명으로 부르는 이유다.” 또 한 번의 침묵.

이 교수는 “감리교 목회자로, 또한 감리교 목회자를 길러내는 신학교의 교수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뉘우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이렇게 교단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함께 자리한 손봉호 박사(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 기독교는 4·19에 대해 할 말이 많지 않다. 한국교회는 온갖 불법을 감행하는 자유당 정권을 별로 비판하지 않았고, 오히려 지지했다”며 이 교수의 의견에 동의했고, 한복협 회장 김명혁 목사는 “이 교수가 먼저 자신이 발표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며 “학자이면서도 영성이 살아있는 분”이라고 했다. 객석에 앉은 이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비로소 침묵은 깨졌다.

그러나 이현정 목사(UBF 대표)는 이 교수의 발표에 대해 “정치권력과 유착되었던 것은 한국기독교라고 하기보다 교권에 관여한 일부 혹은 다수의 ‘소위 기독교 지도자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이름 없이 맡겨진 사명에 충성했던 순한 양 같은 성도들이 그 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날 한복협 발표회에는 이 교수 외에도 손봉호 박사, 김요한 박사(CMI 국제대표), 박성민 목사(한국대학생선교회 대표)가 각각 4·19와 학생운동을 주제로 발표했다. 손 박사는 과거 학창시절 4·19를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줬고, 김 목사와 박 목사는 한국교회의 청년 복음화에 대해 역설했다.

한편 한복협 5월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는 다음달 14일 오전 7시 서울 반포동 남서울교회(담임 이철 목사)에서 ‘용서와 사랑과 화해의 순교자 손양원 목사님을 기리며’를 주제로 열린다. 방지일 목사(영등포교회 원로),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이상규 박사(고신대 교수), 차종순 박사(호남신학대학교 총장)가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