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은성 교수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등에서 교회사를 가르쳤고 현재는 교회사아카데미의 대표로 후학들을 길러내고 있는 라은성 교수가 잠자고 있는 교회사의 면면들을 다시금 깨워냅니다. 크리스천투데이는 매주 목요일 ‘라은성 교수의 교회사 맥잡기’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힘차게 박동하는 맥을 타고 생명의 기운이 흐르듯, 라은성 교수와 함께 역동하는 교회사의 맥을 짚어봅시다. -편집자 주

진키비크라는 폴란드인은 로마를 방문해 친구인 지미라드치키와 함께 로마로 들어오는 길 옆에 있는 어느 채플에 들어갔습니다. 그 채플에서 ‘쿠오바디스’라는 글이 새긴 비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의미를 친구에게 묻게 되었고 초대교회에서 기독교인들의 핍박에 대한 생생한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의 친구 지미라드츠키는 고대 로마의 삶과 역사에 대해 그린 그림으로 유명했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들 중 하나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네로의 횃불’이었습니다. 이 그림은 네로의 정원들에서 순교한 기독교인들의 그림입니다. 기독교인들을 나무 기둥에 묶고 화형시키는 그림이었습니다.

▲1876년 지미라드츠키가 그린 ‘네로의 횃불’

이 그림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은 진키비크는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의 ‘연대기’를 탐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기독교인들의 삶은 너무나 고상하고 고귀했습니다. 그야말로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주는 삶이었음이 비기독교인 역사가의 눈에도 비쳤던 것이었습니다. 진키비크는 사악한 로마제국의 폭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결같이 살아가는 기독교인의 성경적 삶을 그냥 알고만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의 친구가 그린 ‘네로의 횃불’을 통해 난폭한 세속권에 대한 영적 승리라는 아이디어를 얻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많은 박물관들을 방문하여 화려했던 고대 로마의 관습들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연구하여 얻은 자료들을 통해 그는 글을 쓰기 시작하여 마침내 1896년에 ‘쿠오바디스’라는 제목의 소설을 출판하기에 이릅니다. 이 소설은 1901년까지 일 년에 무려 80만 권이나 팔렸고 50개 국어로 번역되어 읽혀지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진키비크는 두 종류의 사회를 소개합니다. 하나는 로마제국이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였습니다. 전자는 철학적 사상, 풍요하고 사치스런 삶, 화려한 문화 및 막강한 권력을 소유했고 후자는 도래할 세상의 보상을 바라보는 삶, 사랑, 이타주의(利他主義)와 청렴으로 점철된 엄격한 도덕적 삶을 추구했습니다. 너무나도 대조적인 두 사회였습니다. 기독교의 이런 면에 대해 화려한 공허 속에서 살던 로마인들은 부러워했습니다. 육체적으로 화려하게 지내지만, 그것은 일시적이고 허무한 삶이기에 영원하고 충만한 삶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이러한 삶에 대한 묘사는 초대교회 ‘속사도들’의 글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의 삶은 로마인들과 너무나도 대조적이었습니다. 비교되지 않는 삶이었기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핍박과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기독교인들은 비사회적이고 문제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인들이 아무리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괴롭혀도 그들이 가진 영원한 진리를 결코 불태워 없앨 수 없었습니다. 복잡하고 번잡한 것을 추구하며 진리를 시기하고 증오하는 사람들은, 빛인 진리 앞에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앞에서 지적한 베이컨의 글처럼 사람들은 거짓을 진리보다 훨씬 좋아합니다. 모함과 억지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선한 것을 따르는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은 날이 가면 늘어가게 됩니다.

이 장을 떠나기 전에 지미라드츠키가 그린 또 다른 그림을 통해 감동을 이었으면 합니다. ‘속사도들’의 글들 중 고린도교인들에게 보내는 ‘클레멘트 1서신’이 있습니다. 그 서신의 6장을 읽어보면,

“거룩하게 사신 분들에 무수한 선택 자들을 더할 수 있는데 특별히 많은 모욕과 고문을 열정으로 감내하였던 분들로서 우리에게 정말 고귀한 모본인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열정을 가진 다나이드즈(Danaids)와 디르카에(Dircae 또는 Dirce)입니다. 두 여인은 핍박을 받고 무시무시하고 형용할 수 없는 고문으로 고통을 받은 후 자신들의 믿음의 경주를 굳건하게 지켰고, 몸으로 많이 허약했지만 귀중한 보상을 받으셨습니다.”

결국 디르카에는 말뚝에 묶인 채로 황소 뿔에 받혀 죽고 말았죠. 그들은 다나이드스를 물 항아리 속에 묶어 넣어 질식사 시키려 했지만 죽지 않자 그녀와 함께 여러 여인들에게 뜀박질을 하게 하여 승리하는 자는 석방시켜 준다고 제안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석방된 여인들은 죽도록 강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와 관련된 그림을 지미라드츠기는 ‘기독교인 디르카에’(the Christian Dirce)라는 이름으로 1897년 화폭에 담았습니다. 이 그림은 현재 바르샤바의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지미라드츠키의 ‘기독교인 디르카에’

진키비크가 ‘네로의 횃불’이란 그림을 보고 고대 기독교인들의 진정한 삶을 서술하려고 했던 그 열정은 그림을 그려 돈을 벌려는 의도와는 무관했습니다. 무언가에서 진리를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가려져 있었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진리를 발견했던 것이죠. 그것을 발견케 한 것은,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을 이끌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했던 열정이었습니다. 가장 고귀한 생명까지 포기할 뿐 아니라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숭고한 삶은 진리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것이라 믿습니다. 이것은 결코 감성에 의해 일어난 삶이 아니었고 무력이나 지략으로 승리한 것도 아닙니다. 진실하게 살도록 하는, 그 무엇인가를 찾아내게 하는, 의지를 변화시키는……, 진리를 찾고자 함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