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배본철 교수(성결대, 교회사)는 지난 한 해 필리핀, 아프리카, 영국 등 세계를 돌며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스스로 이 순회를 ‘세계순회 성령사역’이라 이름 붙였죠. 그는 이 순회를 통해 “신념과 주장을 좀 더 힘 있게 나눌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배 교수가 가졌던 신념과 주장은 무엇일까요. “나의 거듭난 삶 자체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은혜”라고 고백하는 배 교수가 자신의 신념과 주장을 글에 녹여 본지에 기고했습니다. 질풍노도의 기간을 지나 하나님을 만나고, 성령을 좇아 세계를 순회했던 모든 과정을 매주 화요일 소개합니다. 배 교수와 함께 성령이 운행하는 세계로 다시 떠나봅시다.

퀸즈랜드신학대학

7,8월을 미국과 캐나다에서 순회사역을 하고 난 후 아내와 함께 호주 땅을 밟게 되었다. 미국 LA 공항을 출발한 것은 9월 1일 밤이었지만, 중간에 날짜경계선을 지나는 바람에 하루가 그냥 지나가고 3일이 되었다. 덕분에 올해 양력으로 9월 2일인 아내의 생일이 태평양 상공에서 공중 분해되었다!
비행기 안에서 아내가 담담하게 말한다.

“올해는 안식년사역에다가 내 생일까지 주님께 깨끗이 드렸네요.”

나는 아내가 내심 고마웠다. 해외에 나와서 만일 아내가 쇼핑이며 관광이며 그런 것에 관심을 쏟게 되었다면 도대체 올해 사역이 어떻게 되었을까? 가방이나 그릇 종류에 아내가 관심이 많다는 것을 난 잘 안다. 한국에서도 둘이 어쩌다 백화점에 쇼핑을 나설 때면 그릇 가게 앞에 종종 발길이 머물곤 하던 아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런던이나 파리의 호화스런 쇼 윈도우(show window) 앞에서도 아내는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 영국이나 미국에서 그 유명한 그릇 제조회사를 둘러봤을 때도, 다만 아름답다는 찬사 외에는 단 한 개의 물건도 사지를 않는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이런 절제의 은사를 넘치게 하시는 성령님께 감사 돌리고, 또 주님 앞에서 늘 정결한 헌신의 제사를 드리기 힘쓰는 아내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이런 현숙한 아내가 없었더라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잠언 31:30)

시드니 공항에 내리자마자 바로 브리스베인(Brisbane)이라고 하는 곳을 향해 다시 비행기에 몸을 맡겼다. 피터 랄프스(Peter Ralphs) 박사가 학장으로 있는 퀸즈랜드신학대학(Bible College of Queensland)에 가기 위해서였다. 이 학교는 선교와 목회 그리고 청년사역에 중점을 둔 신학대학으로서, 호주신학협회의 공인된 학위를 주는 호주 크리스천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다. 학장 랄프스 박사는 영국과 호주에서 수학을 하였는데, 예배 때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찬양을 인도할 정도로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분이었다.

나는 거기서 두 주간 동안 ‘개신교 성령론의 발생’(The Rise of Protestant Pneumatology)이라는 제목의 성령론 강의와 성령의 능력에 대한 말씀을 전했다. 모두들 살아계신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역동적인 사역에 대해서 큰 소망을 갖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동안 많은 목회자들 배출해 온 이 학교의 학생 수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고 있다는 말이다. 중국 계 학생들이 그나마 부족한 학생 수를 어느 정도 채워주고 있는 듯 했다. 호주 비자를 쉽게 얻으려고 일부러 신학대학에 등록을 하고 있는 중국인 학생들도 꽤 있다고 들었다. 이 학교를 거쳐 간 한국인 목회자들도 꽤 있고 또 지금도 한두 명 한국 학생이 있긴 하지만, 앞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한국 학생들이 그리 많이 공부하는 학교는 아니었다. 학교가 복음주의 노선이고 캠퍼스도 신학대학으로서는 아담하고 또 주위 전경도 아름다워서, 한국의 신학대학과 학점 교류를 하게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시드니연세중앙교회(上)

우리 부부가 시드니로 내려간 것은 9월 둘째 주 토요일이었는데, 그 때부터 한 달 보름 동안 눈코 뜰 새 없는 사역이 진행되었다. 그 때부터 우리는 거처를 시드니연세중앙교회 박 목사 댁으로 잡고 이곳저곳의 사역에 들어갔다. 시드니연세중앙교회는 시드니 지역에서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교회 중의 하나로 소문이 나 있었다. 도착한 바로 그날 저녁부터 나는 토요기도회를 인도하게 되었고 그 다음날은 주일설교를 하였다. 비록 몸은 쉴 새 없이 바빴으나, 하지만 이곳저곳 교회를 다니면서 성령 안에서 그들을 굳게 세우는 일에 통로로 쓰임 받게 된 것이 우리 부부로서는 너무 감사하고 영광스러웠다.

어느 날 시드니대학 전도팀과 함께 시드니대학교를 한 나절 전도하며 돌아다녔다. 두세 명씩 2개조로 나누어 캠퍼스 전도를 한 후 약속시간에 약속장소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전도하는 동안 우리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수많은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오르며 뛰기 시작했다.

‘정말 세상의 땅 끝이 여기에 다 모였구나!’

수많은 세계 각 국의 유학생들이 모여 공부하고 있는 이곳은 진정 ‘황금어장’이라는 말이 바로 여기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한국교회가 선교 선교하면서도 막상 이런 곳에 선교의 힘을 투입하지 못한다면 주님이 얼마나 안타까워하실까.’ 안타까운 마음에 기도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이곳 시드니 땅이야말로 우리 한국교회 선교의 동력이 집중되어야 할 중요한 지역 중의 한 곳이라고 느꼈다. 이 시드니 땅은 마치 선교를 위한 영적인 발전소와 같은 곳이어서, 이곳에서 훈련 받고 능력 받은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세계의 땅 끝을 향해 다시 파송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곳이라고 느꼈다.

한번은 이 교회 국제사역(IM; International Ministry) 담당 전도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네팔 출신이고 아내는 한국인이었다. 길 가다가 어떤 청년을 만났는데, 이 청년은 이 전도사와 기쁘게 인사를 나누었다. 알고 보니 같은 네팔 사람으로서 대학원까지 나온 엘리트인데, 호주에 와서 직장을 구하고 있는 중인데 여의치 않았단다. 그들이 길거리에 서서 얘기하고 있는 것을 쳐다보면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는데, 내 마음속에 그 청년의 허전한 영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몹시 메마르고 황량한 영혼이었다. 나는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에게 웃으며 다가갔다. 인사를 나눈 후 나는 다짜고짜 말을 끄집어냈다.

“형제의 영혼이 매우 피곤하고 지쳐 있네요.” 그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제가 기도해 드려도 될까요?” 그는 아무 상관없다고 했고, 우리는 길목에 막 바로 걸터앉았다. 행인들의 발걸음이 빈번한 거리였지만, 남들의 시선 따위는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를 사이에 두고 한편에는 내가 또 한편에는 네팔 전도사가 앉았다. 나는 내 오른손을 가볍게 그의 어깨에 얹었다. 그리고는 속으로 기도하였다. ‘주님.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알려주십시오.’ 그러자 메마른 광야와도 같은 그의 영혼이 내 마음속에 그림으로 떠올랐다.

광야 길에 지친 그의 두 어깨에 무언가 커다란 돌 판이 눌려있다. 그는 거기서 헤어 나오려 안간힘을 쓰지만 소용이 없다.

나는 그를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조용히 이 그림을 말해주면서 질문했다.

“이 무거운 짐에서 해방받기 원하십니까?”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주님께 그의 영혼 속에 들어오셔서 그의 모든 짐을 가져가실 것을 간구했다. 그리고 영접기도를 따라하도록 했다. 그는 순순히 모든 과정을 따랐다. 마침내 기도를 마치고나니 그가 내게 고맙다고 하면서 악수를 청하는데, 방금 전의 어두웠던 얼굴이 변하여 매우 환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나중에 네팔 전도사가 내게 말하기를, 그는 그 친구의 영혼이 구원받도록 벌써 오래 전부터 기도해 왔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