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한국교회의 위기를 말한다. 정체 혹은 후퇴하고 있는 성장세, 자꾸만 들려오는 부정적 소식들, 교회에 대한 사회의 불신 팽배 등 총체적 난국은 미래 한국교회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 구석구석에서 여전히 저마다의 영성과 철학으로 ‘희망’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지는 특별히 목회 현장 가운데에서 한국교회에 희망을 전하는 리더십 50인을 만나 그들의 사역을 소개함으로써 한국교회에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영엽 목사는 1974년 교회를 개척해 지금까지 목회를 이어오고 있다. 처음엔 지독히도 전도가 되지 않아 목회를 포기할까도 생각했다는 이 목사. 그러나 계속된 기도와 하나님의 도움으로 끝내 일어설 수 있었다. ⓒ 김진영 기자 
벌써 몇 주째 날카로운 바람이 분다. 거리에는 한껏 옷깃을 여민 사람들이 종종 걸음을 쳤고, 자동차들도 허연 연기를 뿜으며 눈의 흔적이 채 지워지지 않은 도로 위를 미끄러져갔다. 그 틈에서 십자가를 받치고 선 교회의 첨탑들이 더 뾰족하게 보인다. 날씨만큼이나 한국교회의 현실도 추운 이 때, 서울 송천동 반도중앙교회 이영엽 목사를 만나던 날에도 칼바람이 불었다.

개척 20년 만에 부흥… “기도가 원동력”
“한국교회에 올바른 영성신학 알리고파”

-날씨가 많이 춥다. 목회 현장도 그런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뜨겁다. 날씨가 그렇듯 항상 뜨거울 수만은 없고, 추운 것도 끝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의 위기를 말하지만 다시 따뜻해질 날이 올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아직 식지 않은 열정이 있다.”

-이 교회를 개척해 여기까지 온 것만봐도 그 열정이 짐작간다.

“다 하나님의 은혜다. 돌아보니 그렇다. 처음엔 우리 식구 세 명하고 고향 집사 부부, 그리고 처남내 부부를 합쳐 모두 7명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2천여명으로 성장했다. 사람의 힘으론 도저히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 하나님의 일을 자세히 듣고 싶다.

“교회를 개척하고 전도를 해서 교인이 한 20여명 정도 모였다. 그런데 여기서 더 이상 늘지가 않았다. 항상 제자리였다. 나는 매일 도봉산 기도원에 올라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백일 기도를 한다고 산에서 내려오지 않은 때도 있었다. 며칠 동안 라면만 먹기도 했다. 그래도 교회는 부흥되지 않았다. 점점 한계가 다가옴을 느꼈다. 실망감에 포기를 결심했다. 그런데 ‘아 이제 그만해야지’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교회를 부흥시키겠다는 음성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때부터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한 해에 4~5백명씩 등록을 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귀하고 또 감사해서 등록하고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절대로 그 이름을 지우지 않았다. 그랬더니 교인 등록부에는 3천여명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1부 예배만으로는 모든 교인들이 한꺼번에 참석할 수 없어 3부 예배까지 드렸다. 개척 20년 만이었다.”

이 목사는 얼굴에 웃음이 많다. 눈이 선해 웃을 때면 푸근한 옆집 아저씨 같기도 하다. 오랜만에 꺼낸 추억이 이 목사를 더욱 웃게 만드는지 기자도 잠시 그 웃음을 함께 나눴다. 가만히 곱씹어 보니 “개척 20년 만”이라는 게 참 대단하다. 그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붙든 이 목사가 그렇고, 때를 따라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능력이 또한 그랬다. 이 목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교회당 건축을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었다. 겨우 교회 근처에 땅을 구할 수 있었지만 주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교회가 들어서면 땅값이 떨어지고 밤에 소음이 발생한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어렵게 구한 땅을 그냥 놓칠 순 없지 않은가. 나도 끝까지 맞서겠다는 각오였다. 그 때마침 우리 교회는 1일 전도 부흥회를 위해 여자 강사를 초청했는데, 글세 그 강사가 대뜸 ‘교회를 지으려 하느냐’고 묻는게 아닌가.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가 기도 중에 우리 교회에 대한 음성을 들었다며 지금 교회를 짓지 말고 더 큰 땅 위에 더 크게 지으라고 했다. 나는 그 강사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다.”

▲서울 송천동에 위치한 반도중앙교회 ⓒ 교회 제공
-그래서 지은 교회가 지금의 이 건물인가?

“맞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지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아름답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나도 기분이 좋다. 하지만 이 교회는 겉모습 보다 믿음으로 세워진 건물이라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건축비가 턱없이 모자라 많이 어렵기도 했지만 교인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끝내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당시 교인들은 교회가 완공될 때까지 약 420일을 금식하며 기도했다.”

반도중앙교회는 서울 송천동 미아역 주변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 모양의 십자가 탑이 인성적인 이 교회는 천편일률적인 인근 건물들 사이에서도 단연 눈에 띈다. 교회 옆에는 지상 6층 높이의 교육관이 있다.

-기독교 언론사 이사장 경력이 있는데, 언론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가?

“언론사와는 칼럼을 쓰면서 인연이 됐다.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하면서 느꼈던 바들을 한국교회 전체를 위해 나누고 싶어 글을 썼다. 처음으로 ‘한국교회는 야훼란 이름을 부르지 말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는데, 반응이 좋았다.

목회를 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너무 쉽게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안타까울 때가 있었다. 당시에 목회자들과 부흥사들 사이에서 야훼란 말이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었는데, 야훼를 하나님의 본래 이름으로 알고 있던 나는 이것에 공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이름도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것이 예를 아는 사람의 행실이거늘, 어찌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가 야훼라는 그분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칼럼에는 나의 이런 생각을 가감 없이 담았다. 혹자는 별 것 아닌 일에 민감하다고 하지만 작은 것 하나에서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을 느껴야 큰 것에서도 두려움을 갖고 임할 수 있다는 것이 내 변치 않는 믿음이다.”

-교회 자체에서 영성목회신학원이라는 교육 기관을 운영하는 것으로 안다.

“교회에서 사명자들을 길러내기 위함이다. 처음엔 미국에서 뉴욕신학대학원을 운영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분교 형태로 출발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신학적 노선이 달라 독립적으로 신학원을 세우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한신대학교 총장직을 역임한 바 있는 주재용 박사님께서 신학원 운영의 활로를 열어주셨다. 신학원의 비전과 교인들의 열정에 흔쾌히 동참을 결심하신 것이다. 이렇게 주 박사님께서 신학원을 맡으신 후 매년 이곳을 통해 지성과 영성을 겸비한 사명자들이 배출되고 있다. 최근에는 캐나다 동부의 명문인 C.C.C(Canada Christian College)와 공동학위수여 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신학원 이름에 영성이란 말을 붙인 특별한 이유가 있나?

“지금의 신학이 현장 목회를 돕지 못하고 있다는 내 비판적 견해 때문이다. 요즘 보면 목회, 혹은 목회자에 대한 신학자들의 인식이 상당히 부족한 것 같다. 미국에서는 이론신학을 목회 경험이 있는 신학자들에게 가르치도록 함으로써, 신학과 목회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고 있다. 한국교회에서 영성을 강조하며 부흥을 이룬 교회를 향해 신학계가 신비주의다 직통계시다 하면서 공격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현재까지 영성이란 말의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는 것이 지금 한국교회의 현실이기도 하다. 영성목회신학원을 통해 올바른 영성이 무엇인가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전도는 교회 홍보 아닌 하나님 전하는 것”
“기독교학술원 통해 신학생과 목회자 지원”

▲이 목사는 영성목회신학원과 기독교학술원을 통해 한국교회에 제대로된 영성신학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 김진영 기자
-독특한 전도법이 있다고 들었다.

“대개 전도하는 모습을 보면 전도지나 교회 주보를 나눠 주면서 교회에 한번 나와보라는 식이 많다. 그러니까 전도를 하면서 진리와 성령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홍보를 하고 있는 꼴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대번에 하나님을 전해야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는 이런 식으로 전도하고 있다.

일단 교회 나오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교회는 전도 대상자가 은혜받고 하나님을 알게 되면 자연히 나오게 돼 있다. 먼저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간증을 하면서 내 삶이 어떻게 변화됐는지, 하나님을 믿는 가정이 얼마나 화목한지 등을 전하다 보면 듣는 사람도 공감을 해서 자신의 고민을 말할 때가 많다. 그래서 전도가 되면 그냥 두세 사람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성경에도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 예배를 드리면 성령이 임하는 것을 느낀다.”

-차별화된 목회 특징이 있나?

“달란트 목회체제라고 이름붙인 것이 있다. 이것이 차별화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성경 말씀에 충실한 목회를 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이것은 마태복음 25장에 나온 달란트 비유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각 교구장에게 일정 목표를 세우게 하고 스스로 교구를 책임지도록 한다. 그리고 그 목표 달성 여부에 따른 상벌을 마련해 동기를 부여한다. 매월 통계를 내고 등수를 매기니까 교역자들이 긴장을 하고 사역에 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간혹 너무 세상적이지 않느냐 하는 말도 듣는데, 본질적인 것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교회에도 이런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본다. 좋은 게 좋다고, 하나님의 은혜만 강조하면 쉽게 도덕적 해이에 빠진다.”

-차영배 박사(총신대 전 총장), 김영한 박사(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초대원장)가 활동하는 기독교학술원은 어떤 경위로 이사장직을 맡게 됐나.

“차영배 박사님께서 영성에 특히 관심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직접 연락을 취해 만남을 가졌다. 그분께 영성에 대한 내 관심을 말씀드렸더니 김영한 박사님을 만나보라고 권하셨다. 김 박사님과의 만남을 통해 자연스레 기독교학술원을 알게 된 것이다. 이후 여러 차례 만남을 통해 기독교학술원이 영성신학을 한국교회에 바로 알리는 데 귀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서게 됐다. 그래서 김 박사님께 학술원을 돕겠다고 한 것이다.”

-기독교학술원의 올 한 해 계획을 듣고 싶다.

“매월 월례 발표회를 꾸준히 가져 학자들의 훌륭한 논문들을 한국교회에 알리는 데 앞장 설 것이며, 12인의 저명한 학자들의 영성 논문들을 모아 영성신학시리즈로 발간할 예정이다. 또한 매년 신대원 졸업자들의 논문을 심사해 우수한 논문을 작성한 이에게는 연구비를 지원할 계획이며, 일선 목회자들에게도 선별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할 것이다. 그 외에도 장기적 안목에서 영성훈련과 영성 콘텐츠 사업, 번역사업 등을 활발히 펼쳐나갈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목회한지도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다. 남들은 그래도 이만큼 교회 성장시켰으니 된 것 아니냐 하지만, 사실 교회가 성장한 것은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물론 처음엔 교세를 키우는 게 절실한 문제였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저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시고 구원해주신 것이 가장 기쁘고 감사하다. 외양간에 소가 없고 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리라는 하박국 선지자의 말이 이제야 가슴에 와 닿는다.

예전만큼 교회 부흥이 쉽지 않고, 전도도 마음놓고 하기 어렵다고 한다. 미자립교회에서 어렵게 목회하시는 많은 목회자님들을 생각하면 옛날 고생하던 생각이 나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꼭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다. 누군가 내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다.”

인터뷰를 끝내고 배웅을 받으며 나온 밖은 여전히 쌀쌀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렇게 뾰족하게만 보이던 첨탑 위 십자가가, 그렇게 단단하게만 보이던 교회 벽돌들이 하늘을 향하는 기도의 함성 같고, 영혼을 지키는 믿음의 방패 같았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 이렇게 매서운 칼바람도 언젠가는 따뜻한 봄바람 되어 꽃을 피우리라는 것.

이영엽 목사는

한신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 트리니티 신학대학원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2006)를 받았다. 명지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교회음악을 공부하기도 한 그는 뉴욕교회음악아카데미의 이사장으로 취임해 교회음악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였으며, 지난 1995년 한국교회의 거룩함 회복을 위한 기독교정화운동을 발족, 지금까지 다방면에 걸쳐 교회 개혁에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