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배본철 교수(성결대, 교회사)는 지난 한 해 필리핀, 아프리카, 영국 등 세계를 돌며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스스로 이 순회를 ‘세계순회 성령사역’이라 이름 붙였죠. 그는 이 순회를 통해 “신념과 주장을 좀 더 힘 있게 나눌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배 교수가 가졌던 신념과 주장은 무엇일까요. “나의 거듭난 삶 자체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은혜”라고 고백하는 배 교수가 자신의 신념과 주장을 글에 녹여 본지에 기고했습니다. 질풍노도의 기간을 지나 하나님을 만나고, 성령을 좇아 세계를 순회했던 모든 과정을 매주 화요일 소개합니다. 배 교수와 함께 성령이 운행하는 세계로 다시 떠나봅시다.


포틀랜드

6월 하순. 멕시코 사역을 마치고 미국 오리곤 주의 포틀랜드(Portland)에 있는 처제 집에 몇 주간 머물게 되었다. 처제가 다니고 있는 이곳 빌리지침례교회(Village Baptist Church)는 다민족교회(Multi-ethnic Church)의 좋은 모델로 손꼽히고 있다. 현재 이 교회를 담임하는 존슨(John Johnson) 목사는 이 교회 내에 있는 여러 민족 공동체들을 북돋으면서 팀 사역 형태로 다민족목회를 이끌어오고 있다. 이 교회내의 한인공동체가 이러한 정신을 잘 이해하고 이러한 사역에 협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필자의 눈에는 매우 새삼스러우면서도 신선하게 보였다.

대개의 경우, 처음에는 외국인교회에 작은 한인공동체를 시작하다가 좀 커지면 독립해서 따로 한인교회를 만들곤 하는데, 이 교회의 한인공동체는 오히려 미국인교회에 소속되어 동역하고 있는 것을 큰 자랑으로 알고 있었다. 물론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불편한 걸로 따지면 미국인 공동체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한 몸이라는 일치 사상 안에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면서 교회사역을 해나가는 모습이 매우 고무적이었다. 이 교회는 다민족교회의 모델로서 Mark De Ymaz가 쓴 ‘Building a Healthy Multi-ethnic Church’라는 책에 제시되기도 했다.

이제 우리 부부는 이곳 포틀랜드에서 심신을 정비하면서 순회사역의 전반기를 정리하고 후반기 사역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동안 약 반년 동안을 계속 선교지 상황에 맞춰 사역하다가 모처럼 만의 자유로운 시간과 공간이었다. 아내와 나는 저녁에는 일찌감치 식사를 마치고 처제 네와 함께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포틀랜드의 하늘은 맑은 날은 맑은 날대로, 구름 낀 날은 구름 낀 날대로 아름다운 하늘이다. 신선한 공기를 가슴 가득 들이마시며 공원길을 걷노라면 저절로 온 몸과 마음이 새로워지는 느낌이다. 붉은 해가 서편 대지 밑으로 가라앉으면서 토해내는 화염같이 붉은 석양빛을 보노라면, 내 가슴 속의 모든 정서들이 다 소리치며 일어서는 기분이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 한편 저편에는 불현듯 걱정스런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년에 귀국하면 우리나라의 희뿌연 하늘을 어떻게 보지?’ 황사와 매연 때문에 뿌연 날이 더 많은 한국 도시의 하늘. 요즘 자라나는 한국의 어린이들이 하늘을 그리라면 아예 회색빛으로 그림을 그리지나 않을까. 우리 어른들은 어렸을 적에 그래도 푸른 하늘을 보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라오지 않았던가. 우리 한국의 부모 세대들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좀 더 좋은 자연환경을 물려주었어야 했는데,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기도와 말씀으로 충분한 시간을 갖게 되어 정말 좋았다. 교수로서 올해 안식년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여태 바쁜 사역 일정 때문에 이런 여유를 많이 누려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충분히 주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여유와 기쁨, 그리고 하나님 말씀의 깊은 진리 속에 내 영혼을 잠그는 그 풍요로움과 평안, 그리고 저녁에는 대자연으로 나가 붉은 석양과 가슴속까지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공원을 걷는 즐거움. 이 모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과 함께 우리 부부는 이 몇 주간의 안식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처제와 동서 그리고 두 자녀, 나와 아내, 이렇게 여섯 명의 식구들이 매일 밤 모여 가정예배를 드린다. 우리가 여기서 떠나기 전까지 야고보서를 영어성경으로 한 대목씩 읽어가면서 다섯 장 전체를 대하기로 했다. 야고보서에는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경건한 지혜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자라나는 세대들을 위해 유익한 교훈이 많다고 본다. 나와 아내는 매일 주님께 이 가정과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였다.

“이 야고보서의 모든 말씀이 이 자녀들에게 그대로 적용되게 하옵소서.” 특히 필수 암송구절을 영어성경으로 하루에 하나씩 지정해서 같이 암송을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내가 요구하는 구절들을 다 외우면 상금을 주기로 약속했다.

나 역시 틈날 때마다 영어 성구 암송의 시간도 갖는다. 이 모든 것이 후반기 사역의 무장을 갖추는 일이기에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영어 성구 암송은 나의 영어권 사역에 있어서 필수적인 무기중의 하나다. 나는 그동안 수년 간 영어 성구 암송을 해왔다. 처음에는 60구절 성구 암송카드에 나와 있는 영어성경 구절들을 다 외웠다. 그리고는 200구절 이상 되는 카드 암기에 도전하였다. 거의 날마다 빠짐없이 성구 암송을 되풀이하다보니, 이것도 역시 거의 모두 외웠다. 그런 후 성경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내가 죽기 전까지는 꼭 외워야지’ 라고 생각되는 구절들을 뽑아서 내가 스스로 카드를 만들었다. 이것이 또 약 300구절 이상은 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약 팔백 구절 이상의 영어 성구들이 내 마음 속을 채워가고 있는 것이다.

지루해지기 쉬운 비행기 안에서도 성구들을 암송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잠이 들어버리거나 아니면 목적지에 다다르곤 했다. 영어로 설교하거나 기도회를 인도할 때, 내 속에 영어 성구들이 꽉 차 있다 보니, 상황에 따라 성령께서 자유롭게 내 속에 저장된 성구들을 뽑아 사용하시는 것이다.

영어

내가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사역하는 일이 영어 때문에 막힘이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 앞에 성실하게 준비한 자세가 아니라고 믿는다. 이런 지울 수 없는 부담감이 오늘날까지 나를 영어와 질긴 인연을 맺게 하였다. 그러고 보면 이것이 또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특별한 부르심이라고 본다.

나와 영어와의 인연은 중학교 때부터이다. 아버지께서 가끔 외국 손님들을 집에 데려오실 때면 꼭 나를 불러서 그들에게 인사시키신다. 나는 외국 손님들 앞에서 홍당무가 된 얼굴로 몇 마디 외어둔 문장을 떠듬떠듬 말하곤 했지만, 이 분들은 나의 그런 모습이 여간 귀여워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베리 굿(very good), 베리 굿!” 마음씨 후한 미국 아저씨들은 나의 서툰 영어에도 불구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으셨다. 아무튼 나는 영어에 대해서는 특별한 이유도 없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중학교에 들어와서는 영어나 수학 시간이 가장 재미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영어 선생님은 우리에게 발음을 훈련시킬 때면 언제나 내가 어떻게 발음하는지 내 입술 모양을 지켜보시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도 많이 있는데, 왜 선생님은 내 입술만 보면서 영어 발음을 시키실까?’ 왠지 선생님이 나만 편애하는 것 같은 인식을 다른 아이들이 갖게 될까 거북한 마음이었다. 어쨌든 그때 그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영어 발음이 이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내가 몹시도 방황하며 정신 못 차리던 때였다. 학교 공부는 완전히 담을 쌓고 오직 노는 일에만 정신을 쏟던 시절이었다. 모든 공부의 기초가 허물어져 가고 있었지만, 유독 영어만큼은 흥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학교 공부 때문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팝송(pop song) 가사를 외우느라고 말이다.

신학대학에 와서도 몇몇 급우들과 함께 영어공부 모임을 만들어서 학교 수업하기 전에 일찍 모여 공부하곤 했다. 그 때는 영어 원서 몇 줄 읽으려면 사전을 더 많이 찾아야 했던 때였다. ‘나도 언제쯤이면 사전 안보고 영어 원서를 줄줄 읽어내려 갈 수 있을까?’ 나는 소망을 가지고 나름대로 열심히 영어를 공부했다. 기분 좋았던 것은, 나는 늘 영어 원서를 들고 다니는 취미가 있었는데, 이 취미 때문에 학교 동료들은 내 영어실력이 대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원서를 끼고 있는 나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그들의 눈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헤헤. 나도 별 볼일 없는 실력이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다.’ 그런데 그 때는 몰랐었는데, 사실은 영어에 대한 친숙감을 갖는 것이 영어 실력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나는 늘 영어책을 끼고 다녔기에 영어에 대한 친숙감이 있었다. 신학 4년을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에 진학할 때도 모든 수험생들의 두려움은 영어 시험이었다. 지금도 영어 시험은 공포의 대상이겠지만, 당시에는 영어 시험이 거의 모든 필기시험의 당락을 결정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런데도 나는 이유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무슨 문제가 나와도 답장을 메울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 나는 한편으로는 시골에서 목회를 하면서 또 시간을 쪼개어 학장님 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때 신학 전공서적들을 번역하는 일을 이삼년간 했던 일이 내겐 또 하나의 영어 학습의 큰 자산이 되었다. 더군다나 어느 잡지사에서 영문 수필들의 번역을 정기적으로 내게 부탁하였는데, 이것을 번역하여 보내면 이백 자 원고지 한 장 당 천 원씩을 번역료로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이 당시 가난했던 전도사 시절의 나에게 큰 재정적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어 실력 향상에도 큰 발돋움이 되었다.

그 후 교수가 되고 나서 캐나다에 교환교수 자격으로 가서 한동안 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영어 쓰기나 읽기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데, 도대체 듣기와 말하기가 안 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듣기는 나의 두려움이었다. 캐나다에서 있는 동안, 내가 얼마나 영어를 못하는지를 철저하게 깨달았다.

캐나다에서 돌아올 때 나는 굳은 다짐을 하였다. ‘내가 죽으면 죽었지 꼭 영어를 정복하고 말리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속 영어에 대한 소원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나의 그런 다짐도 얼마 후면 풀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이라는 곳이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도 아니고, 학교에서도 비록 수많은 시간을 영어공부에 비중을 두긴 하지만, 외국인을 만나면 의사표현도 제대로 못하는 죽은 영어 아닌가? 그런데 내가 결심 하나만 가지고 이것을 지속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들다. 이 노력을 지속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동기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소명이 영어와 결부되었기 때문이다. 즉, 주님께서 세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셨기에, 나는 이 명령에 대한 복종을 위해서 영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있어서 영어는 부수물이 아니고 선택사항도 아니다. 필수인 것이다.

나는 나의 모든 환경을 영어식으로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집에서도 간단한 회화는 식구들과 영어로 하고, 틈날 때마다 영어 성구 암송과 영어성경 읽기를 한다. 집에서 런닝 머신(running machine)으로 운동을 할 때는 TV의 영어 프로그램을 본다. 그 당시 우리 집은 TV를 베란다에 내다놓았었다. 지금은 아예 TV가 없지만. 그래서 TV 보고 싶으면 운동을 하든지, 또 운동을 하려면 TV 영어 프로그램을 보든지 말이다.

그리고 이건 정말 나 자신의 영어에 대한 know-how인데 공개하겠다. 나는 개인기도 할 때 영어로 기도하기를 훈련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할렐루야, 아멘을 빼놓고는 잘 안되었지만 점차 영어로 기도하는 표현이 늘어나게 된다. 나중에는 영어기도가 우리 말 기도보다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교회에서나 학교에서 설교를 들을 때는 한국말로도 은혜를 받고 또 이것을 마음 속에서 영어로 동시통역을 해서 또 한 차례 은혜를 받는다. 이것도 처음에는 잘 안 된다. 그래도 자꾸 하다 보면 점차 우리말 문장 형식을 영어식으로 바꿀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적절한 영어 문장을 찾아 한국말을 영어로 통역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통역에 있어서 문장 전체를 붙잡아야지 너무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다 보면 설교에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되니 주의하기 바란다.

그러면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들은 내게 질문할 것이다. “그래서 도대체 얼마나 영어를 잘 하십니까?” 원어민들이나 영어권에서 자란 2세들이 나의 영어를 듣는다면 당연히 딱딱하고 유치한 수준일 것이다. 그건 당연하다. 내가 미국인도 아니고 또 영어권에서 자라난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그래도 나에겐 한 가지 자부심이 있다. 내 전공에 관한 강의, 설교, 신앙상담, 기도, 논문발표, 부흥집회 인도 등에 있어서 영어를 사용하는 일이 이젠 거의 자연스러워졌다. 그러면 된 것이다. 내가 다른 전공의 영어에 신경 쓸 일 없다. 미국인들끼리 조크(joke)를 사용하며 대화하는 것을 옆에서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괜히 주눅들 이유도 없다. 나는 복음 들고 세계의 땅 끝을 향하기 위해 영어 훈련을 한 것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스스로 ‘이 정도면 불편함은 없다’는 수준까지는 도달한 것이다.

앞으로도 영어와 관계된 나의 소망 중의 하나는 영어권의 한국인 1.5세와 2세들에게 부흥회나 세미나를 통해 부흥의 불씨를 전달하는 일이다. 나는 한 해 동안 미국과 캐나다와 영국 그리고 호주 등을 돌아보면서 그들이 드리는 EM(English Ministry) 예배 가운데 영적인 자유와 능력이 같은 교회에서 드리는 한국어예배에 비해 매우 약한 것을 보았다. 많은 한인교회들이 갖고 있는 고민 가운데 하나는, ‘어떻게 하면 부모들이 갖고 있는 한국적 영성의 긍정적인 면들을 그들의 영어권 다음 세대들에게 누리게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다음 세대들은 부모들 예배와 영어권 예배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어떻게 보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사각지대에 속해 있는 것이다. 이들이 예배 시간에 은혜를 받고 또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영어예배를 드리는 모든 한인교회에서 매우 중요하게 담당해야 할 일인 것이다. 내가 비록 영어에 능한 자는 아니지만, 주님이 인도하시는 곳이라면 달려가서 그들에게 친숙한 영어로 그들을 깨우는 일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