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투데이는 지난해 12월 박명수 교수가 한국종교학회에서 발표한 ‘다종교사회에서의 개신교와 국가권력’ 논문을 연재합니다. 박명수 교수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되고 있는 이른바 ‘종교편향’ 문제를 기독교적 입장에서 다뤘습니다. 박 교수는 “일반인들에게 이런 내용을 알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본지를 향해 “항상 복음주의적인 입장에서 한국교회를 보도해 주어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 박명수 교수.
모든 다원주의적인 상황의 중요한 특징은 그것들의 세부적인 역사적 배경이 어떠하든 탈독점적인 ‘종교적 기업’들이 고객 집단의 충성을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전에는 권위있게 부과할 수 있었던 종교적 전통을 이제는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더 이상 ‘구매’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고객들에게 ‘판매’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원주의적 상황은 무엇보다 ‘시장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 기관은 매매 기관이 되며, 종교적 전통은 소비자 상품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어쨌든 많은 종교 활동이 시장경제 논리에 의해 지배당하게 된다.

Ⅰ. 문제제기: 종교와 국가권력

최근 한국사회에 종교 편향이 중요한 이슈로 제기되고 있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강조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특정종교에 편향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이것은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일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는 다행히도 그간 종교간 큰 갈등이 없이 발전해 왔다. 이것은 역사에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국가가 특정 종교를 지원하고, 여기에 다른 종교가 차별을 느낀다면 대한민국은 이념갈등, 지역갈등 못지않게 또 다른 심각한 갈등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이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일은 의미있다고 본다.

사실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개념은 우리 한국사회에 낯선 것이다. 전통적으로 사회의 가장 밑바탕에는 종교가 있으며, 그 종교를 기반으로 사회는 통합돼 왔다. 종교는 사회를 통합하는 기초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해방 이후 대한민국 헌법은 정치·종교의 분리와 신앙의 자유를 명시했고, 그것은 별 이론(異論)이 없이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과연 한국 사회에서 정치와 종교의 분리가 무엇을 의미하며, 이것이 신앙의 자유를 어떻게 보장하는가 하는 것은 분명하지 않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정치와 종교의 분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은 앞으로 더욱 토론해야 할 과제라 본다.

오늘 필자는 한국 개신교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복음주의가 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려 한다. 여기에서 핵심이 되는 이슈는 국가권력이 여러 종교를 공평하게 다뤘는가 하는 것이다. 국가 권력이 특정 종교를 지원하고, 또 특정 종교가 국가 권력을 이용하려 한다면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밖에 없다. 필자는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다음 몇 가지 질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 복음주의는 다종교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 왔는가? 둘째, 한국 개신교는 국가로부터 편향적인 지원을 받아 왔는가? 셋째, 현재 개신교는 한국사회로부터 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 필자는 첫번째 문제를 다루기 위해 근대 복음주의 역사를 개괄할 것이며, 두번째 문제를 위해 근대 한국의 종교시장에서 개신교와 국가권력의 관계를 살펴 볼 것이며, 마지막으로 세번째 문제를 다루기 위해 최근 이슈가 된 여러 문제들을 점검해 보려 한다. 필자는 이와 같은 문제를 공정하게 다루기 위해 비교 연구를 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비교연구를 통해서만이 편향 문제가 밝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Ⅱ. 서구 기독교사회의 변화와 개신교 복음주의

1. 존 로크와 관용령

오랫동안 서구 사회는 기독교에 근거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영국에서였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영국은 성공회와 천주교, 청교도 가운데 무엇을 사회의 근본으로 삼을까 하는 문제로 심각한 논쟁을 벌였다. 처음에는 성공회가 영국 국교회가 됐다가 천주교가 여기에 도전했고, 다음에는 청교도가 가세했다. 영국의 기독교가 분열하면서 영국 사회가 분열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여기에 대해 결론을 내린 것이 1689년 만들어진 관용령이다. 이 관용령에 의하면 성공회가 영국의 국교이지만 청교도에게도 관용이 주어지며, 천주교는 여기에서 예외였다. 천주교가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된 것은 19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다.

이 관용령의 이론적인 배경을 제시한 사람이 바로 존 로크다. 존 로크는 종교를 사회의 근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한 사회의 기초가 종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상호간의 계약에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영국 사회의 근간은 영국인들이 오랫동안 믿어오던 종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국 왕과 시민의 대표인 의회가 맺는 조약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영국 사회의 세속화를 의미한다.

이런 세속 사회에서는 국가의 종교에 관한 임무가 과거와 결정적으로 달라진다. 과거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백성들의 영적인 복지를 진작시켜 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국가의 책임자는 바른 종교를 선택하고, 그것을 유지하고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국가는 강제적인 힘을 사용할 수 있다고 봤다. 여기서 국가의 왕과 종교의 감독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된다. 왕이 없는 곳에 감독이 없는 것이다(No king, No bishop).<계속>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교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