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공부 블로그’를 운영하며 청소년 네티즌들에게 공부 비법을 전수했던 ‘10대들의 영웅’ 강모(20) 양은 지난 3월 지금까지 공개한 자신의 학력과 신상, 나이 등이 전부 거짓이라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는 자신을 독일 유학파에 경희대 의대를 합격했다고 소개하면서 수많은 네티즌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지만 결국 이 모든 게 ‘장난’에 불과했다. 당시 이 사건은 ‘비단꽃 거짓말’이라는 키워드로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오르며 이슈가 됐었다.

세계 1,300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가상공간인 ‘세컨드라이프 닷컴’에선 회원들이 제2의 자아(自我)를 만들어 일상생활을 할 뿐 아니라 결혼해 가정도 꾸린다. 이 중 한국인 회원은 0.23%(2만9900명) 정도. 세컨드라이프 닷컴의 한국 커뮤니티인 ‘세라 코리아’에도 현재 4만5,740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사이버 생활을 하고 있다.

‘세라 코리아’에서 한 여성과 결혼식을 올린 김모(26) 씨는 사이버 아내에게 프러포즈를 하기 위해 반지를 맞추고 꽃을 사고 부부가 살 집을 구입했다. 이런 물건들을 구매하려면 실제 돈을 ‘린든 머니’라는 가상의 게임 머니로 환전해야 한다. 김 씨는 이를 위해 용돈 10만원을 투자했다.

아이돌 스타들을 좋아하는 10대 청소년들에겐 ‘팬덤문화’라는 것이 있다. 팬덤은 광신자를 뜻하는 ‘퍼내틱’(fanatic)의 팬(fan)과 영지·나라 등을 뜻하는 접미사 덤(-dom)의 합성어로,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가수 조용필 씨의 ‘오빠부대’가 한국 팬덤의 시초이고 90년대 가수 서태지 씨가 청소년의 우상으로 떠오르면서 팬덤문화를 낳았다. 2000년을 전후해서는 수많은 팬클럽이 등장하면서 한국 청소년 문화를 팬덤문화로 보는 학자들까지 생겨났다. 인기 아이돌 그룹인 ‘소녀시대’의 한 팬은 “하늘색, 노란색을 말할 때 나도 모르게 윤아색(윤아의 셔츠색), 파니색(티파니의 셔츠색), 시카색(제시카의 셔츠색)이라고 한다”고 했다.

‘흠좀무’ ‘지못미’ ‘넘사벽’……. 한글이지만 한글같지 않은 이 말은 청소년들이 사이버상에서 주로 쓰는 소위 ‘외계어’라는 것이다. ‘흠, 이거 사실이라면 좀 무섭겠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라는 말에 앞글자를 따 이렇게 만들었다. 2002년 10대들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언어 파괴냐 고유한 개성 표현이냐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10대들 사이에는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팬덤문화가 있다. 10대들은 하늘색, 노란색을 말할 때 윤아색, 파니색, 시카색 등으로 표현한다.

장로님은 블로그와 UCC를 이해할까?

인터넷, 모바일, 디지틀 등의 단어로 대변되는 청년·청소년(이하 청년으로 통칭) 문화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얼굴과 색깔로 나타난다. 그 안에는 오늘날 청년들의 수만 가지 표정과 감정의 색깔들이 녹아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청년들을 알 수 없고, 그들과 소통할 수 없다. 한국교회는 예전부터 어린이와 청년들을 한국교회의 ‘미래’라고 말해왔다. 우리는 얼마나 청년들을 이해하고 있을까.

교회에는 갈수록 청년들의 숫자가 줄고 있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문제시되고 있는 저출산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이와 함께 청년들의 교회 이탈 현상도 두드러진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 박성민 목사는 지난해 한 공개석상에서 “청년들을 위한 집회에 모실만한 사역자가 부족하다”면서 “예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엔 초청할 만한 청년 사역자 좀 추천해 달라며 CCC에도 문의가 많이 온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날 박 목사는 청년들이 줄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구체적인 설문조사를 근거로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청년들이 교회를 현제 다니거나 과거에 다녀본 경험이 있는 경우가 무려 72%였음에도 전체 응답자 중 66%가 교회의 이미지에 대해 잘 모르거나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교회에서 청년들이 줄고 있는 현실의 근저에는 청년과 장년간 ‘문화적 소통’의 부재가 자리잡고 있다. 과거 한국이 근대화의 길을 걷기 위해 공장짓기에 여념이 없을 무렵,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문화의 종류는 지극히 적었고 교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때 청년들과 장년들은 찬송가와 율동, 성탄절 무대에 올려진 성극 등에서 모두 같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급변했고 청년들의 문화는 다양해졌다.

문화선교연구원 성석환 교수(안양대학교)는 「신앙세계」 7월호에서 “이제 소통은 문화적으로 실천된다. 그것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나타나고, 같은 것보다는 다른 것에 매력을 느끼며 기존의 것보다 창조적인 것을 선호한다”면서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고, 인터넷에 자기만의 블러그와 UCC를 제작하고, 찜질방에서 모이고, 몸짱을 위해 운동을 하는 모든 행위가 개인의 사회적 삶을 구성하는 문화적인 소통방식”이라고 했다.

점차 고령화되고 있는 한국교회 현실에서 성 교수의 말이 던져주는 의미는 자못 크다. 교회에서 소위 ‘어른’들은 입버릇처럼 “청년들이 한국교회 미래”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청년들이 줄고 더불어 교회가 대중문화의 그늘에 가려 “기독교 문화가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 교수는 또한 “기독교가 대중문화에 담겨있는 다양한 표현양식들과 담론들로부터 풍부한 소통방식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기독교’라 표현했지만 교회 ‘어른’들이 먼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성도수 3백여명의 인천 한 중형교회에 다녔던 박모(25) 군은 중고등부 회장을 지냈고 찬양단 리더도 역임하는 등 교회에서 나름 헌신했던 청년이다. 그는 “행정 업무를 비롯해 모든 교회 업무는 장년들이 도맡아 한다. 교회에서 활동하면서 소외감을 많이 느꼈다”며 “장로님이나 권사님, 하다못해 집사님의 자제가 아니다 보니 뒤에서 눈총을 받는 경우도 생겼다”고 했다.

박 군은 또 “주중에는 교회 모임이 거의 없다”며 “수요예배나 금요기도회, 새벽기도회 등에서 특송을 부르거나 예배 진행을 위해 악기를 연주한다. 이 밖에 교회에서 하는 활동도 대부분 찬양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주일 청년부 모임이 끝나면 다같이 모여 영화를 보러 간다. 은근히 이 때가 제일 기다려진다”고 덧붙였다.

주요 직분자의 자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눈총을 받고, 주일날 가장 기다려지는 때가 다함께 영화를 보러 가는 때라는 박 군의 말을 통해 교회 내 청년 문화의 부재는 물론, 청년 문화에 대한 장년들의 무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한다.

아이들은 점점 인터넷 게임 속으로

박 군의 말처럼 교회를 다니는 청년이라 해도 수요일과 금요일의 일부 시간, 그리고 주일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교회와 단절된 채 보낸다. 자연히 대중문화를 접하는 시간이 늘고 그만큼 대중문화의 부정적 영향을 받기도 쉽다. 위에서 예로 든 것처럼 교회로부터 소외된 청년들은 사이버 상에서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거짓말을 일삼기도 하고, 현실을 망각한 채 게임이나 가상 공간에서의 생활에 빠져들기도 한다.

놀이문화교육센터(소장 권장희)는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서울 시내 7개 초등학교 4, 5, 6학년 학생 1,361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게임 접속 실태 및 이용 환경을 파악했다.

조사 결과 초등학생이 현재 가장 많이 접속(34%)하고 있는 인터넷 게임은 ‘메이플스토리’로 이 게임은 중독성이 높은 ‘다중접속 캐릭터육성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으로 많았던 것은 현재 15, 18세의 두 개 이용 등급으로 서비스 되고 있는 총기류 살상게임인 ‘서든어택’과 전체 이용 등급의 대전(對戰)류게임 ‘크레이지 아케이드’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학생 중 46%가 이 두 게임을 즐긴다고 답했다.

특히 초등학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상위 10개 인터넷 게임 사이트를 분석한 결과 도검류나 총기류를 이용해 게임 속 상대를 때리고, 찌르고, 죽이는 등 폭력성 높은 게임류가 무려 5개로 나타났다. 또한 이 중 3개의 게임은 12세, 15세, 18세 이용가 등급으로 초등학생은 가입할 수 없는 것들이다.

▲청년들은 현실을 망각한 채 온라인 세상에 빠져 살아간다. 그들은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기도 한다.

조사를 진행한 놀이문화교육센터 권장희 소장은 “이 조사는 물론 일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오늘날 초등학생들의 실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교회 청소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제 교회는 이러한 청소년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게임 중독이나 기타 사이버 관련 문제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뿐더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제자교회(정삼지 목사)에서 문화 사역자로 섬겼던 김태경 목사(시흥샘물교회 담임)는 “문화 사역자로 청년들을 대하면서 찬양집회를 제외하면 장년과 청년간 공유할 수 있는 문화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다”며 “나 또한 찬양을 인도하면서 최신 CCM 곡을 부를 때면 오랜 시간 연습에 임한다. 갈수록 청장년간 문화의 갭이 커지는 것 같다”고 했다.

김 목사는 또 “장년들이 청년들과 문화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우선 청년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마음이 장년들에게 자리잡혀야 할 것 같다”며 “서로 마음이 통하면 자연스럽게 대화의 장이 생겨나고, 비로소 세대간 문화적 소통의 길이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