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훈 칼럼] 두 근본주의의 충돌

입력 : 2009.01.20 07:47

성경 문자주의와 자연주의적 진화론의 문제

▲양승훈 교수.

금년은 현대 생물진화론의 방아쇠를 당겼던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된 지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학설이 등장했다가 사라졌지만 진화론의 불길은 아직도 꺼지지 않고 있으며, 등장 이후 지금까지 여러 분야에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오랫동안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근대주의도 20세기 후반을 지나면서 포스트 모더니즘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세계 인구의 1/3을 붉게 물들였던 공산주의 사상도 지금은 퇴조 상태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실존주의 철학도 이제는 사람들의 의식 깊숙한 곳에 침잠하고 있다.


하지만 진화론은 등장한지 한 세기가 훨씬 더 지났지만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맹위를 떨치고 있다. 처음에는 생물학, 지질학, 천문학 등 몇몇 기초과학 분야에 국한되었던 진화론이었지만 근래에는 대부분의 학문 분야에까지, 나아가 매스컴이나 문화, 교육, 경제, 심지어 문학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문화 전반에 걸쳐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진화론의 가는 길에는 거침이 없다고나 할까.

하지만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는 것은 진화론만이 아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반진화론 운동, 혹은 창조론 운동도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세기는 가히 창조론의 부흥기였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1925년 스콥스 재판 이후 한동안 잠잠했지만 1970년대부터 다시 창조론과 관련된 사건들이 줄을 이었고, 특히 1980년대 미국에서는 진화론 관련 소송들이 봇물을 이루었다.

또한 20세기 중후반을 지나면서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호주, 한국, 캐나다, 독일,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창조론 단체들이 등장하였다. 이들 단체들은 대부분 기독교적 배경을 갖고 있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은 단체들도 있었다. 반진화론 단체 혹은 창조론 단체들이 증가하면서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은 20세기 후반의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근래 에 실린 브랜취(G. Branch)와 스콧(E. Scott)의 “창조론의 최근 얼굴”(The Latest Face of Creationism)도 진화론자의 입장에서 쓴 창조-진화 논쟁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진화론자들의 모든 논리를 대변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핵심적인 논점들을 포함하고 있다. 아래에서는 과연 창조-진화 논쟁의 핵심은 무엇이며, 특히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결말이 나지 않는지 몇 가지 근본적인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창조과학적 창조론

우선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로는 진화론자들, 혹은 반창조론자들의 비판이 주로 기독교계의 소수 의견인 창조과학에 집중하고 있음을 들 수 있다. 과학적 창조론이라고도 불리는 창조과학은 안식교도 프라이스(G.M. Price)와 남침례교도 모리스(H.M. Morris) 등 주로 근본주의적 배경을 가진 성경 문자주의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창조과학이 가장 번성한 나라는 전반적으로 근본주의적이고 보수적인 미국 남부와 호주, 한국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창조과학자들은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받아들이면서 성경을 과학 교과서로 사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은 주류 과학계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과학적 사실들과 지구 역사, 우주론, 지질학, 생물학 분야에서 진화와 관련된 것들을 모두 부정한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증명된 과학적 사실들까지 부정하면서 독특한 자신들의 과학, 즉 창조과학을 제시한다.

창조과학에서는 6천년 지구/우주 연대를 주장하면서 고생대 캄브리아기로부터 신생대 제4기까지의 모든 지층이 1년 미만의 노아의 홍수를 통해 형성되었다는 홍수지질학(flood geology)을 믿는다. 이러한 주장은 6천년 지구/우주 연대 주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창조과학이라고 한다면 이 두 가지, 즉 6천년 지구/우주 연대와 홍수지질학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 두 주장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어서 홍수지질학이 없으면 6천년 지구/우주 연대는 유지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창조과학에서는 지구나 우주의 절대 연대를 측정하는 대표적 연대 측정법인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법을 비롯하여 오랜 연대를 보여주는 모든 연대 측정법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1960년대까지 이러한 창조과학이 주류 과학에 대한 대안 과학으로 제시된 것은 근본주의 교회 내부에 국한되었다. 또한 극소수 기독교 학교에서만이 홍수지질학을 기존 지질학을 대체하는 이론으로 소개하였다. 그러나 창조과학은 애초부터 주류 학계에 대한 도전이었다기보다 대중적 캠페인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 이유는 창조과학자들 대부분이 자신들이 공식적으로 훈련 받은 분야와는 동떨어진 분야에서, 그것도 연구보다는 캠페인 중심의 운동을 펼쳐왔기 때문에 대중들을 상대로 설득하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요약한다면 그 동안 진화론자들이 창조론의 대표인 듯이 비판해 온 창조과학은 성경을 과학 교과서로 보는 전투적이고도 선명성 있는 주장으로 인해, 그리고 대부분의 반진화론 혹은 창조론 교육을 위한 법정 투쟁과 연루됨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지만 기원과 관련하여 기독교를 대표하는 이론은 아니다. 특히 창조과학의 2대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6천년 지구/우주 역사와 홍수지질학은 복음주의권 내의 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 소수 의견에 불과하다.

진행적 창조론과 유신론적 진화론

실제로 성경에 대해 복음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6천년 지구/우주 연대와 홍수지질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창세기의 역사성을 받아들이고 창세기 1-11장의 신적 영감성을 인정하는 학자들조차 지구/우주 역사를 6천년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창세기 6-8장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의견이 다양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지층이 노아의 홍수로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는 홍수지질학을 지지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것은 비단 기원 논쟁과 직접 관련이 있는 지질학이나 생물학, 천문학 등의 전문가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창세기를 전공하는 구약학자들, 그 중에서도 성경의 무오성을 받아들이는 복음주의 신학자들조차 대부분 창조과학적 창세기 해석에 반대한다.

오히려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방사능 연대 등 주류 과학계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지구와 우주 연대를 수용한다. 노아의 홍수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캄브리아기로부터 신생대까지의 모든 지층과 화석이 1년 미만의 노아의 홍수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창조과학의 홍수지질학은 단호하게 반대한다. 이들은 성경은 창조주에 대해서, 창조의 목적과 이유에 대해서 말하지 창조의 방법이나 시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다고 본다. 창조의 방법이나 시기는 성경 연구에서가 아니라 과학 연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고 믿는다.

사실 이러한 입장은 20세기 후반 창조과학의 부흥이 일어나기 전인 1950년대에 이미 등장했다. 복음주의 신학자이자 오늘날 북미주 최대의 복음주의 과학자 단체인 ASA(American Scientific Affiliation) 회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램(B. Ramm)은 1954년에 출간한 <과학과 성경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라는 책을 통해 근본주의 창조론 운동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하면서 오늘날 진행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ism)으로 알려진 이론을 제안했다.

진행적 창조론에 의하면 태초에 창조주가 생명체들을 창조했으나 순간적인, 혹은 6천년 동안이 아니라 오랜 지구 역사에 걸쳐 창조했다고 본다. 이들은 소진화, 즉 종 내에서의 변이는 받아들이지만 대진화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창조과학자들과 의견을 함께 한다. 하지만 이들이 대진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성경 해석 때문이 아니라 유전학적, 고생물학적 이유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는다.

진행적 창조론자들은 우주론에서도 창조과학자들처럼 “무에서 유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믿는다. 하지만 창조과학자들과는 달리 이들은 현대 우주론의 표준모델인 대폭발 이론의 기본 개념을 받아들인다. 대폭발 이론은 확정된 사실로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과학자 공동체가 발견한 증거들을 가장 설득력 있게 제시한 작업가설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창조론자들이 대폭발 이론에 대해서 진화론자들과 입장을 달리하는 부분은 이 이론의 무신론적이고 자연주의적인 특성이다. 이런 대폭발 이론의 특성은 과학과는 무관한 일종의 세계관이요,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복음주의 전문가들 그룹에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진행적 창조론을 이끄는 대표적인 사람을 든다면 천문학자 로스(Hugh Ross)를 들 수 있다. 그는 주류 과학계에서 제시하는 지구/우주 연대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생물학적 대진화는 부정한다. 또한 진행적 창조론을 지지하며, 특히 젊은 지구/우주에 대한 과학적 증거들에 대해 비판적이다. 하지만 진행적 창조론의 모태가 되었던 ASA는 근래에 들어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행적 창조론을 복음주의 진영의 비교적 보수-중도적 입장이라고 한다면 유신론적 진화론은 복음주의 진영의 진보적 학자들이나 자유주의 진영의 학자들이 받아들이는 견해라고 할 수 있다. 진행적 창조론에서는 창조주가 생물종들의 발달 과정에서 특별한 창조능력으로 개입한다고 보는 데 비해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창조주가 자연선택에 개입하여 진화를 인도한다고 생각한다. 유신론적 진화론에서는 자연주의 진화론의 모든 매커니즘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별도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유신론적 진화론은 적어도 과학적인 측면에서는 진화론이 갖는 모든 문제들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진화론의 문제

그러면 진화론의 문제는 무엇인가? 진화론을 비판하는 창조론자들은 모두 아마추어이며 그들의 비판은 재고의 가치가 없는 이야기들일까? 그렇지 않다. 진행적 창조론자들은 물론 특히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지적설계 운동가들이나 복음주의권 내에서 진화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이들의 비판은 성경을 과학 교과서로 받아들이는, 공학도나 딜레탕트 중심의 창조과학 운동의 목소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면 창조론자들이 줄기차게 지적하는 진화론의 문제는 무엇인가?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선 화학진화론부터 생각해 보자. 필자는 진화론자들에게 ‘오파린-할데인 가설이나 이 가설에 기초한 밀러-유레이 실험, 그것을 이은 폭스 실험 따위가 정말 생명의 기원을 설명한다고 생각하는가?’ 라고 물어보고 싶다. 오파린-할데인 가설의 기초가 되었던 원시 대기에 대한 가설, 타르 비슷한 라세미 혼합물 정도를 만들어낸 밀러-유레이 실험이나 프로티노이드에서 미소구체(microsphere)를 만든 폭스 실험 따위는 생명의 기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여느 화학 실험실에서 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실험일 뿐이다. 다윈이 말한 “따뜻하고 작은 연못”(warm little pond) 따위는 순전히 상상의 산물일 뿐 실제 원시지구의 상태나 최초의 생명 출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생명은 생명으로부터만 유래한다는 생명속생설은 성경에서 말하기 전에 과학에서 상식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동안 창조론자들이 오랫동안 줄기차게 지적하고 있는 중간형태의 부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과연 대진화의 증거를 화석으로부터 찾을 수 있는가? 적자(適者)의 자연선택, 혹은 돌연변이의 자연선택, 나아가 유전자 풀의 평형파괴(Punctuated Equilibria Theory)를 통해 대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자연에서나 실험실에서 증명할 수 있는가? 진화론자들은 그 동안 고전적인 중간형태로 제시해 왔던 시조새, 말, 실라칸트 등의 화석에 대한 창조론자들의 비판에 대해 무조건 무시하기보다 성실하게 답변해야 한다.

현대 지질학의 기초가 되고 있는 동일과정설은 어떤가? 과연 지구의 역사를 현재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과정만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보는가? 필자는 창조-진화 논쟁과는 무관하게 지구의 역사를 균일설 혹은 동일과정설로 해석하는 것보다는 격변의 역사, 다시 말해 수많은 격변들의 연속으로 지구의 역사를 해석하는 다중격변모델이 타당하다고 믿는다.

2008년 1월호 <천문학>(Astronomy) 잡지에 의하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179개의 운석공이 발견되었으며,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운석공인 듯이 보이는(probable) 곳이 111개에 이르고 있다(이들은 대부분 지구 표면의 30% 밖에 안 되는 육지에서만 발견된 것들이므로 실제 운석공의 숫자는 이보다는 세 배 이상 더 많다고 봐야 한다). 그 외에 운석공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하고 있는 충돌구조들(impact structures)만도 수백 개에 이르고 있다. 이들 중 한 대륙을 멸종시킬 수 있는 직경 30Km 이상 되는 운석공들만도 28개에 이르며, 전 지구적 멸종을 가져올 수 있는 직경 100Km 이상 되는 운석공도 5개나 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칙술룹(Chicxulub)에서 발견된 직경 180Km에 이르는 대형 운석공이다.

물론 대규모 운석충돌만이 지구에서 일어난 수많은 격변들의 유일한 이유였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규모 화산폭발이나 쓰나미, 지진, 산사태 등 대규모 운석 충돌에 이은 2차적 격변들이나 운석 충돌과 무관한 격변들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근래 백악기 멸종의 주된 원인은 대규모 화산폭발이라는 새로운 주장이 제시되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지난 30여 년 간 중생대를 마감하게 한 대격변, 흔히 K-T 경계멸종이라 부르는 대멸종은 6500만 년 전에 지구와 충돌한 칙술룹 소행성 때문이라는 이론이 지배적이었지만 근래 프린스톤 고생물학자 켈러(Gerta Keller) 등은 이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인도 데칸 지방에서 일어난 일련의 거대한 화산폭발이 K-T 경계멸종의 원인이었다는 새로운 주장을 제시하고 있다. 이 연구에 의하면 대한민국 넓이의 20여배에 달하는 거대 용암 지역 데칸 트랩의 화산폭발의 주요 폭발 단계에서 화산이 분출한 기체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칙술룹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면서 대기권 속으로 방출한 기후 변화 기체의 10배를 분출했다고 한다.

칙술럽 운석공이나 데칸 트랩 등은 지구 역사에서 일어난 격변의 일부 예들일 뿐이다. 이러한 격변의 흔적들이 지구 역사의 중요한 시대 변화와 연대가 일치한다면 우리는 이로부터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지구 역사에서 전 지구적 멸종을 일으킨 여러 차례의 격변이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면 “현재는 과거의 열쇠”라는 동일과정설의 슬로건은 “현재는 과거의 부분적 열쇠일 뿐”이라고 고쳐야 할 것이다.

요약한다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모두 뻥이다”라고 주장하는 창조과학적 자세도 문제지만 “지구가 둥근 것이 사실이듯 진화는 사실이다”라는 식의 진화론자들의 극단적이고 이데올로기적 태도도 진리에 이르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양쪽 모두 인식의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detach) 객관적이고 관조적 태도를 견지하려 했던 선인들의 테오리아(theoria) 이상과는 거리가 먼 태도들이다. ‘내 해석과 주장은 도무지 틀릴 수 없다’는 경직되고 폐쇄적인 태도는 진리를 추구하는 바른 자세가 아니다.

잠정적, 개방적 자세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첫째, 학문이라는 것 자체가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지난 세기 새로운 과학철학자들이 발견한 중요한 쾌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기원 논쟁과 같이 까마득한 과거에 일어난, 그래서 직접적인 실험이나 재현이 어렵고 대부분 간접적인 증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해석자의 세계관이 간접적 증거들의 해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해석이라고 하는 것은 유한한 인간이 미지의 대상을 인식하려고 할 때 불가피하게 부딪히는 문제이다. 사람이 전지전능해서 모든 것을 본질 그대로 알고,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대로 행할 수 있는 존재라면 굳이 해석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 내적 존재인 인간이 유한한 지식과 제한된 자료를 근거로 대상을 인식하려 할 때 해석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존재론적 필요라고 할 수 있다. 창조-진화 논쟁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유한함, 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사용하는 용어나 개념의 불확실함 등으로 인해 앞으로도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둘째,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원 논쟁과 관련하여 잠정적, 개방적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창조-진화 논의는 학문적, 신앙적 논쟁을 가장한 이데올로기적 오염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분야이다. 학문적 논의에 관한 한 어느 누구도 진리의 “전매특허”를 가진 사람은 없으며, 학문적 논의에서 자신의 주장에 대한 경직된 태도를 갖게 되면 “학문적 마녀사냥”이 일어날 수 있다.

자연주의적 진화론이나 성경 문자주의는 둘 다 “종교적” 근본주의의 특성을 갖고 있으며, 학문적 유연성이 없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나는 성경을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믿는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진화가 과학이 아니라면 과학은 없다”라는 식의 경직된 자세는 학문적 발전, 나아가 진리에 이르는 가장 큰 장애가 될 수 있다. 개방적 자세, 특히 자신의 주장과 반대되는, 혹은 자신의 주장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 개방적 자세를 가질 때 오류의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셋째, 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의 형이상학적(혹은 “종교적”) 신념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창조론이 유신론적 전제를 깔고 있듯이 진화론은 무신론이요 모든 초월적인 요소를 배제하려는 자연주의적 신념을 배경에 깔고 있다. 헉슬리가 지적한 바와 같이 “다윈이즘은 이성적 대화 영역에서 생물의 창조주와 같은 하나님의 모든 개념을 제거했다. 다윈은 어떤 초자연적인 설계자도 필요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 자연선택이 알려진 모든 생명체들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진화에서 초자연적인 존재를 위한 여지는 없다.” 이것은 결국 기원에 관한 모든 초월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남는 인간은 앙상한 단백질 덩어리로서의 물질뿐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어떠한 초자연적인 것도 인정하지 않는 자연주의적 진화론은 이데올로기의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진화론이 자연주의와 결합하면서 인간의 지식은 오로지 물질적이고 우주 내적인 지식에 국한되게 되었다. 진화론이 인간의 인식의 지평을 넓힐 것이라는 자연주의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도리어 인간의 지식을 물질세계에만 제한시켰다.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경직되고 이데올로기화 한 기독교 신앙이 지식의 진보를 제한해 왔던 것처럼 진화론과 결합한 각종 이데올로기들이 지식의 지평을 크게 제한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결론적으로 기원 논쟁, 즉 창조-진화의 논쟁은 본질적으로 과학을 매개로 한 두 근본주의 세계관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적 자연주의에 근거한 진화론이나 성경 문자주의에 근거한 창조과학은 둘 다 근본주의적, 이데올로기적 특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서로로부터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 잠정적이고도 개방적 태도를 갖기 보다는 귀를 막고 상대를 타도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므로 성경 문자주의자들은 성경의 용도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고, 자연주의 진화론자들은 인식의 지평을 넓히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비생산적인 파열음보다는 건설적인 논쟁을 통한 지적 지평의 확대 혹은 진리의 포구에 이르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양승훈 교수(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 www.view.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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