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아는가, 푸른 다뉴브강 유역에 자리를 잡고, 알프스의 품 안에 안겨 있는 이 나라를!


자연의 풍요와 그 웅장함으로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땅. 생동감이 철철 넘쳐흐르는 바로크 미술은 이곳을 모태로 태어났다. 근대 음악의 거장들이 작품의 무대로 삼았던 곳, 오스트리아 전 국토의 2/3가 알프스의 산지이고, 그 나머지는 다뉴브강에 몰려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나, 빈 소년소녀 합창단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리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또 얼마나 정감이 넘치던가.

그 새해 내가 서 있었던 곳은 아름다운 땅, 황제의 도시 비엔나. 알프스 동쪽 기슭 산림지대이며 도나우강 우측 하구였다. 도시의 역사는 2천년, 오래 전 도시의 주인이었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외교사절을 대접하기 위하여 연일 이곳에서 무도회를 열었고, 요한 스트라우스 1세와 스트라우스 2세가 작곡한 왈츠로 가장 훌륭한 사교의 장을 제공했다. 이것이 후일 전 유럽에서 무도회를 정착시키는 계기가 된다.

왈츠로 인해 오스트리아의 1월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어느 곳을 가든지 감미로운 왈츠의 선율을 들을 수 있다. 사람들은 왈츠를 추면서 묵은 해를 보내고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왈츠를 들으면서 새해를 맞는다. 우리 잠깐 ‘황제의 무도회’가 열리는 호프부르크궁으로 들어가 보자. 초청장이 없어도 괜찮다. 무도회가 열리는 호프브르크궁의 주인은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지 오래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주인은 요세프 황제와 엘리자베드 왕후로 분장을 한 배우 두 사람이 무도회장으로 통하는 대리석 계단 위에 서서 손님을 맞는다. 손님은 할머니 할아버지에서 중년의 부부, 십대의 커플에 이르기까지 그 계층이 다양하다.

당신도 무도회에 올 수 있다. 남편과 함께, 연인과 함께, 단지 우리 돈으로 사십여만원에 가까운 입장권을 사야하는데, 이미 일년 전에 예약이 끝난다. 무도회를 주관하는 호프부르크궁의 레지나마호 담당관은 황제의 무도회는 오스트리아 국내에서는 물론 유럽 여러 나라에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자랑을 한다. 궁 안에서 가장 큰 페스티벌홀을 비롯, 크고 작은 열 개의 기념홀에는 수천 수만 개의 카네이션과 글라디올러스로 장식이 돼 있다. 밤 10시, 요한 스트라우스의 <황제의 왈츠> 연주를 시작으로 모든 홀은 무도회장으로 변하고, 정장을 한 선남 선녀들이 미끄러지듯 회전하며 물결처럼 춤을 춘다. 사분의 삼박자의 우아한 동작과 도약은 마치 하늘을 나르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는 듯 환상적이다.

원래 왈츠는 오스트리아 농촌의 민속춤이다. 이 춤이 일반 서민들에게 사랑받으며 춤의 문화로 자리를 잡고 전 세계에 확산된 것은 18세기, 그 배후에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세련된 외교 정책이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3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오스트리아를 이끌어 왔는데 외교 정책의 일환으로 연일 무도회를 열고 주변 강대국과 사돈을 맺으면서 대제국을 건설해 갔다. 무도회가 절정에 달할 즈음, 해가 바뀜을 알리는 슈테판 대성당의 종소리가 12번을 울렸다. 종소리에 춤을 멈춘 참석자들은 샴페인을 터트리며 서로 포옹하고 입을 맞춘다. 한 십대 소녀는 황제의 무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댄스 스쿨에서 왈츠를 배웠는데 남자친구와 깊은 사랑에 빠진 해를 기념하기 위해 이 곳에 참석했단다. 그녀는 꿈을 꾸는 듯 취해 있다. 무도회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 전통이 어우러진 기념비적인 행사이다.

새해가 밝아오고 있다. 동방의 나라, 새해맞이 언덕으로 올라가자. 원래 오스트리아란 오스트마르크에서 유래된 말로 동방의 나라라는 뜻이다. 새해는 빈의 뮤지크페라인홀에서 열리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와 함께 시작된다. 음악회는 리카르도 무티의 지휘로 스트라우스의 모터왈츠가 연주됨으로 막을 올렸다. 같은 시간 시청 앞 광장 대형스크린 앞에는 음악회를 시청하려는 사람들이 가득 모였다. 빈의 신년음악회는 2차대전이 일어난 1939년 전쟁의 고통과 불안에 시달리는 오스트리아 국민을 위로하기 위해 시작됐다. 그러나 1959년부터는 TV나 라디오를 통해 전세계에서 위성 중계함으로, 오늘날에는 지구상의 수억 인구로부터 사랑 받는 음악회가 됐다.

때마침 축복처럼 눈이 내려 온 천지를 하얗게 덮었다. 땅은 순진무구로 표현되는 동심의 세계 그대로다. 노란 수선화와 장미로 장식된 콘서트 홀은 섬세하면서도 장중한 음향을 선사해 주고 지휘자 무티는 우아하고 경쾌하게, 때로는 격정적인 몸짓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행진곡이 연주될 때 그는 객석으로 몸을 돌려 박수를 지휘했다. 청중들의 감정은 격앙돼 대부분의 사람들이 온몸으로 박자를 맞추면서 춤을 췄다. 연인들은 길거리에서 두터운 코트와 털 머플러를 두른 채 왈츠를 췄다.

수백년간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도나우 왕국의 자취가 그대로 선명하다. 일세를 풍미하던 그들 영화의 흔적을 곳곳에 안은 채 ‘아름답고 푸르른 도나우’가 연주되면서 음악회가 막을 내렸다. 유리창으로 알프스가 보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새해 새날이었다.

-송영옥 박사는

<한국수필>에서 수필로, <문단>에서 단편소설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국제 PEN클럽 정회원이다. 창작집으로는 <미운 남자>, <하늘 숲>, <해지는 곳에서 해 뜨는 곳까지>, <閃 囚구를 떠돌고 쏀덛>,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와 영한시집 , 그리고 문학이론서 <기독문학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세종대, 미국 텍사스 주립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경북대 대학원에서 헨리 제임스 전공으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75개국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Y's Man International에서 국제여성부장(International Director for Y'Menettes)을 두 차례 역임했고, 신문·잡지의 연재계약으로 전 세계 60여 나라를 여행, 문화 예술 기행을 했다. 현재 대신대에서 기독문학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