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사로 등재된 이화여대 초대총장 김활란 박사. 이화여대 측은 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크리스천투데이DB

지난달 29일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가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면서 개신교계 친일인사로 58명을 포함했다. 그러나 이 명단에는 이화여대 초대 총장인 김활란 박사를 비롯, 성결교 초대 총회장이자 교리적 기초를 확립한 ‘성결의 아버지’ 이명직 목사 등 공(功)이 뚜렷한 인물들도 다수 포함돼 있어 형평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친일 인사 선정에 있어 편찬위원회가 밝힌 기독교계 인물 선정기준은 네 가지로, △일제 종교통제 방침에 협력해 교회 변질을 주도하고 교리를 왜곡시킨 인물 △특히 중일전쟁 이후 변질된 ‘혁신교단’, 통폐합된 일본기독교 조선교단, 교파 단위의 정동연맹·총력연맹·비행기헌납기성회 등 친일단체 간부로 활동한 인물 △기독교신문 등 친일성향 기독교계 신문·잡지 발행인 및 주필·주간 △기고·광고·좌담·강연 등을 통해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미화·선동하는 부일협력행위를 반복적으로 자행한 인물 등이다. 편찬위원회는 “위의 각 사안에 해당하더라도 구체적인 친일 행적이 경미하거나, 그 후에 항일혐의로 체포돼 옥고를 치른 인물은 제외했다”고 밝혔다.

편찬위원회 측은 이후 60일간 관련자들의 유족 또는 기념사업회의 이의제기를 받는 한편 학계 의견을 수렴한 이후 오는 8월 말 이번 발표 인물들을 바탕으로 한 친일인명사전을 출간할 예정이다.

편찬위가 밝힌 개신교계 인사들의 친일 행적

이번 발표에서 친일인사로 포함된 개신교계 인물 중 대표적 인사는 김활란 박사, 이명직 목사 등과 감리교 윤치호 장로, 기장 교단의 초기 인물로 한신대 설립에 기여한 송창근 목사 등이다. 편찬위원회 측은 구체적인 증거들을 열거하며 이들의 친일 사실을 밝혔다.

이화여대를 설립해 여성교육의 선구자로 잘 알려진 김활란 박사는 일제시대 애국금차회 발기인,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 임전보국단 부인대 지도위원, 언론보국회 이사 등을 지냈다. 애국금차회는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귀족 부인들이 일본 침략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금비녀를 뽑아 바치기 위해 조직한 단체로 알려져 있다. 또 창씨개명 이후 태평양전쟁시 일제의 학도병과 징병 등을 연설을 통해 독려하기도 한 것으로 나와 있다.

‘성결의 아버지’ 이명직 목사의 친일 행적은 국민정신총동원조선예수교동양선교회성결교회연맹 이사와 국민총력조선예수교동양선교회성결교회연맹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신사참배와 교단지 ‘활천’에 실렸던 친일논설 등을 근거로 했다.

또 ‘최초의 감리교인’으로 105인 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투옥된 바 있으며, 애국가의 작사자로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윤치호 장로도 일제 말기 ‘내선일체론’에 동조하고 일제의 징병에 찬성했던 자료들을 부일협력 경력으로 제시했다. 이외에 송창근 목사는 1939년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경북노회지맹 이사, 194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경북노회장, 1945년 7월 일본기독교 조선교단 총무국장 등을 맡은 이유로 친일 인사에 등재됐다.

“침략전쟁 협력행위, 하나님 앞에 용서 구해야”

친일인명사전 편찬에서 개신교계 인사들을 담당했던 김승태 목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위원)는 “개신교계 인물 중에서는 잘못보다 공이 많은 분들이 많다”면서도 “그러나 잘못도 감추지 않고 인정하는 것이 올바른 종교인의 도리이며, 사전에는 공·과를 함께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편찬위원장인 윤경로 한성대 총장도 “이 작업은 결코 정치적 목적이나 특정인물을 매도하려는 것이 아닌, 역사화 작업이라는 점을 국민 앞에 천명한다”며 “오욕의 역사를 용기있게 대면하고 사실대로 기록해 후손들의 반면교사로 삼도록 하는 것이 역사학자로서의 사명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개신교 지도자들이 친일행위를 한 원인에 대해 △일제의 정책과 강압 △자신의 기득권 유지 욕망 △개인적 위기의식과 나약성 △역사의식과 민족의식 결핍 등 네 가지를 제시했다. 그는 “적어도 개신교 지도자들이 양심적으로 일제에 협력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해 그렇게 한 경우는 없다고 생각하며, 마지못해 협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렇게 하다보니 점점 더 빠져들어갔던 것”으로 분석했다.

김 목사는 또 “일제에 협력한 것이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결국 그러한 행위가 세속 권력에 영합·추종해 교회의 교회다움을 상실하게 하고, 사회 공신력을 떨어뜨리게 했으며 성도들은 물론 다른 일반인들까지 잘못된 길로 내몰았다”며 “더욱이 그런 행위가 기독교의 이름으로 행한 일제의 침략전쟁 협력행위였다는 점에서 하나님 앞과 우리 민족 앞에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이라고 편찬작업의 당위성에 대해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