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곤 목사의 말은 폭포수 같이 끊이지 않았다. 민족복음화를 위해 인생을 내걸었던 그는 기독교의 사회참여를 위해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 고준호 기자

근황을 묻는 질문 한 마디에 폭포수 같은 대답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조금 전 원로 목회자 모임에서도 열변을 토해냈던 그였다. 그의 말엔 한이 담겨있는 듯했다. 올해로 85세. 무엇이 그를 이토록 뜨겁게 만드는 것일까.


1958년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설립해 청년 복음화의 초석을 놓았던 김준곤 목사는 세계 기독교 역사상 유례 없는 규모의 ‘74 엑스플로 대회’와 ‘80 민족복음화대성회’를 개최하며 민족 복음화의 염원을 불태웠다. 국가조찬기도회를 구축해 위정자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자리를 만들었으며 현재는 성시화운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한국교회 역사의 산 증인이라는 말로 그를 표현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런 그가 이제는 기독당 명예대표고문이라는 멍에를 메고 사회참여를 넘어 기독교의 정치참여에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2004년 한국기독당 출범 때도 후원자를 자처했던 그는 반대자들이 펼치는 10여 가지의 논리도 수없이 들어왔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껏 강조해 온 ‘심장의 비유’, ‘청지기 신앙’, ‘하나님의 전적 통치’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기독교를 세상이 칭찬할 것이라고 보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성자인 척하고 있으면 편하지만 결국 정치 허무주의, 냉소주의를 불러와 또 다른 ‘프랑스 혁명’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이어 들려오는 사회의 어두운 소식에 “우린 링 위에 올라 있다”고 했다.

어찌 보면 이토록 간절한 그의 마음 저편에는 아픈 기억이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아버지와 아내는 6.25 당시 공산당에게 비참하게 살해됐다. 그 역시 “개처럼 끌려 다니다” 살아났다. 그 기억이 좌익의 물결이 유난히 거셌던 지난 10년간 다시 그를 괴롭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강단에서 목소리를 꺾을 수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지도…. 히틀러 암살을 시도하다 죽음을 맞이한 본회퍼의 심정이다.


교회 관리가 목회 전부인 줄 알지만 세상의 법 속에도 들어가야

-기독사랑실천당의 전신인 2004년 한국기독당 창당에 가장 큰 힘을 실어주셨다. 김 목사님 혼자의 생각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4년 전 24명의 중진급 목사들이 모인 시국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다. 하루는 조용기 목사가 통일교가 가정당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기독교도 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모른 척했는데 두세 번 이야기하니까 당위성이 느껴졌다. 통일교 대응의 이유도 있었지만 한국교회가 덩치가 커진 만큼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정당을 만들기 위한 틀을 만들어야 한다며 조 목사가 나에게 부탁했다. 그때 자유주의 시장경제, 북한 상호주의, 한미동맹, 목회자의 직접 정치참여 금지 등을 골자로 한 비망록을 만들었다.”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 문제는 오래된 논쟁이지만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한국사회는 특히 부정적인 견해가 전반적이다.

“정교분리의 정체가 무엇인가 들여다보면 아무 것도 없다. 거의 의식화되어 있을 뿐이다. 신학적인 근거도 없이 ‘정치는 나쁜 것이고 더러운 것이다’라는 인식이 아예 세뇌되어 있다. 기독론이 잘못된 것이다. 기독교인은 사회를 떠나 살 수 없다.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Kingdom of God, Kingdom of heaven. 하나님의 전적 통치다. 그에 의하여, 그를 위하여, 그로 인하여 만물이 창조되었다.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과거, 현재, 미래 모두 그 안에서 움직인다. 알파와 오메가다. 예수님을 떠나서 존재하는 것이 없다. 만물이 구원받길 원한다.

목회자들의 머릿속에는 설교 이외의 교회 밖은 목회자의 일이 아니라는 잠재의식이 있다. 교회 관리하는 일이 목회의 전부인 줄 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자연의 관리인이기도 하다. 세상의 법 속에도 들어가서 관리해야 한다. 사업, 정치도 주님의 것이고 우린 청지기다. 선한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해야 한다. 그 청지기 의식이 없다. 교회 관리는 정말 충성스럽게 하면서 정치는 더러운 것이라고 내버렸다. 그런 방관자들이 또 심판자가 되어 정치에 대해 말만 많이 한다.”

세계는 정치의 역사, 민노당은 소수라도 국보법 폐지 등 추진

-한국교회 전반에 정치참여에 협력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같은 이야기를 꺼내시기란 쉽지 않으셨을텐데.

▲김준곤 목사는 자신과 가족들이 북한군에 수난을 당한 아픔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고준호 기자
“그 동안 좌익의 공격과 이로 인한 ‘개독교’라는 비난, 사학법 재개정 문제, 통일교 가정당 등을 보면서 생각이 변했을 것이다. 10년 후에 큰 교회들을 지켜봐라. 급속도로 줄어든다. 20만여명의 안티기독교가 바로 전교조를 통해 양산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목사들은 교회만 지키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기독교인인 도이 류이치 자민당 의원 한 사람이 6백여명의 의원들을 상대로 싸운다. 6선의원인 그가 입을 열면 영향력이 대단하다. 그것이 진짜 소금이고 빛이다. 그렇게 되면 나쁜 법을 만들 수가 없다.”

-정치를 심장에 비유하시기도 했다.

“세계는 정치의 역사라고 본다. 같은 동남아 국가이지만 싱가폴과 미얀마는 정치의 차이다. 남한과 북한의 역시 정치의 차이다. 정치의 기본은 민주적인 투표다. 그리고 의회정치다. 민주노동당은 몇 명 들어가 있지 않은데도 국가보안법 등을 한칼에 베어 버리기도 한다. 때문에 남한은 지난 10년간 좌익과 싸우느라 전쟁상태였다. 그간 북한은 사상통일을 시도했다. 젊은이들이 반 기독교인이 되어 버렸다.

교회가 많은 사람을 국회에 파송했는데 의원들이 교회를 이용하기만 했지 예수님의 위해 정치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에 비에 통일교는 좌익과 합작해 정정당당하게 국회에 들어오려 한다. 통일교는 승공주의를 내세우며 반공에 앞장섰던 이들인데 아이러니하게 김일성과 형제처럼 친해졌다. ‘가정’과 ‘평화통일’. 그들이 내세우는 가치가 얼마나 보기 좋아 보이나. 이 브랜드가 한국사회에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4년 전부터 준비했다.”

-비망록을 만드시기도 했는데 국회 내에서 기독교인들이 지켜야 할 법칙이 있는가.

“크리스천 140여명이 선교사로 국회에 들어갔는데 국회를 복음화하려는 청지기 의식이 없다. 양심의 가책이 있을 때, 국가 정체성에 위배될 때, 성경에 위배될 때는 정당의 정책에 반하더라도 ‘아니오’ 라고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국가보안법은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한다.”

정치 안하면 세상이 잘한다 할까? 오히려 무책임하다고 할 것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았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가 힘을 모은 만큼 한나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들 이야기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잘할 것이다. 문제는 간첩혐의로 잡혔던 이들이 한나라당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권은 바뀌었고 이를 위해 기독교가 협력했는데 그 열매 속에는 2, 30명의 좌익도 속해 있다. 기독교는 그것을 쳐다만 보고 있는가. 우리에겐 무기가 있다. 바로 투표권이다. 그래서 모세의 지팡이라고 했다. 모세의 지팡이는 출애굽에서 하나님의 능력이요 믿음, 약속의 표상이고 상징이었다. 목사님들이 투표하라고 독려해야 한다. 불이 났는데 구경만 하고 있다.

북한이 쳐들어올 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인민재판을 받았다. 아버지와 내 아내도 그렇게 죽었다. 나도 개처럼 끌려다니다 미처 죽이지 못했다. 만약 지금 그런 상황이 다시 온다면 난 총을 쥐고 북한군이랑 싸우겠다. 그렇지 않으면 전부 북한의 노예가 될 것 아니겠는가. 바로 독일의 디트리히 본회퍼가 그랬다. 히틀러가 독재하면서도 1차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의 자존심을 살리는 것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사탄이었다. 그래서 본회퍼가 암살계획을 세웠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김준곤 목사는 “큰 건물은 없어지지만 씨앗은 없어지지 않는다”며 자신의 노력에 대해 자평했다. ⓒ고준호 기자
-정치 참여에 대한 동의하지만 영적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의 상황 때문에 아직 시기상조라는 이야기가 있다.

“여러 가지 논리를 펼치고 나온다. ‘전도가 안된다’, ‘기독교 위상이 땅바닥에 떨어졌는데 정치하면 더 욕 먹는다’, ‘교회 내 합의가 안됐다’, ‘정교분리 해야 한다’ 등 열 가지 정도 있을 것이다. 그럼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세상이 기독교를 향해 잘하고 있다고 말할까. 아니다. 무책임하다고 이야기한다. 최근 시드니에 동성연애자 5만여명이 한꺼번에 모인 일이 있었다. 그때 호주 기독민주당 당수 프레드 나일 의원이 “한국 교민들이 도와 달라”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그는 외로운 소수였다. 그렇게 되었을 땐 이미 늦는다.”

거룩한 척하고 있으면 편하지만 교회의 책임은 어쩌나

-한국교회 대표적인 목사님들이 앞장서는데도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에 대해 찬성하시는 분들조차 좀처럼 기독당을 지지하지 않는다.

“‘거룩’ 컴플렉스가 있다. 참 종교의 진수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정치에 들어가 욕을 먹어가면서 정치를 고치는 그런 것이지 교회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라면 돈도 벌지 말아야 한다. 성직자인 척하고 있으면 편하다. 자신의 보신을 위해 안으로 들어가 있다. 의도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게 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투표율이 50%에 미치지 않으면 정치 허무주의, 냉소주의에 빠진다. 결국 프랑스, 러시아 혁명과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무정부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테러, 살인, 폭력이 난무하는데 교회의 책임이 있다. 구경하고 있으면 안 된다. 우리는 링 위에 올라가 있다.”

-한국교회에 큰 역할을 감당해오며 존경을 받으셨던 만큼 기독당 참여가 본인의 명예에 누가 되지는 않을지 고민은 없었나.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사람들을 이끌어 가신다. CCC 청년들은 민족복음화의 비전이 있었다. 복음화의 영역이 정치권, 회사, 군대 등 우주적인 구원을 꿈꾸었다. 굉장히 많은 수가 모이게 되니 우리를 ‘통일교’라고 공격했다. 별소리를 다 했다. 눈에 보이게 세력화해선 안되겠다 하는 마음에 모두 해산시키고 교회로 보냈다. 친정집은 이제 잊어버리라고 했다. 그들이 동면에서 깨어나고 있다. 정치혁명을 해야 한다.”

큰 건물은 없어지지만 씨앗은 없어지지 않는다

-한국 교회사에서 두 번의 기독교 정당 모두 김준곤 목사님께서 앞장서셨다. 역사가 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이라고 보는가.

“역사의 평가를 내가 이야기 할 자격은 없지만 씨앗 하나 심었다고 보지 않을까. 큰 건물은 없어지지만 씨앗은 없어지지 않는다. 심어 놓으면 사막에서도 퍼진다. 뜻 있는 사람들이 진작 시작했어야 했지만 지금 현재 진행형이다. 이어가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라 본다. 통일 이후에도 더 필요하다.”

-누구보다 청년에 대한 애정이 크셨고, 사회참여에 대한 열정도 크시다. 이 같은 뜻을 총선이 끝나더라도 계속 이어가실 계획인가.

“당연히 계속할 것이다. 사회운동은 수백, 수천 개의 NGO단체들이 깃발을 들면 생명력이 있다. NGO처럼 정책연대, 정책뱅크, 정책은행, 정책풀, 인재풀이 있어야 한다. 정치 학교도 만들어야 한다. 국회 안건들의 1백여개가 있는데 전부 고민하고 점검하고 국제 포럼도 개최해야 한다.”

-젊은 시절을 청년들을 위해 바치셨는데 지금의 청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시간은 금방 간다는 것을 호소하고 싶다. 있는 힘을 다해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그것은 이미 합의가 됐다. ‘해야 된다’고 하면서도 입은 다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