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석 목사

아프간 사태 이후 한국 교계와 선교계가 앞으로의 대책을 신중하게 내놓았다. 이번 사태에 대한 국민 감정이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민 감정은 단지 이번 사건에 국한된 것이라기보다 한국교회에 쌓였던 부정적 감정이 폭발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지금 교계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등 각자 도덕 재무장 운동을 외치고 있다.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민 감정이 악화된 데에는 매스컴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고 본다. 일방적으로 보도된 부정적인 정보 때문에 국민들도 일종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민소매 바람으로 시장 통을 활보했다는 둥, 예수를 믿으라고 강요했다는 둥 하지도 않은 일을 한 것처럼 보도하는 바람에 봉사단원들은 더욱 비난을 받았다. 한번 고정된 선입견을 바꾸려면 매우 오랜 세월이 걸리는데 한꺼번에 수천만 명에게 이야기하는 매스컴은 더더욱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을 보도하는 데 있어 가장 잘못된 보도라고 지적하고 싶었던 것은 ‘이슬람에서는 여성들을 죽이지 말라는 율법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슬람에서는 여성들을 보호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보기 때문에 이슬람 율법에 철저한 탈레반도 여성은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어느 신문, 방송을 막론하고 이처럼 이슬람을 미화시켜 보도하지 않은 매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의 율법과 코란의 어느 구절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가. 또 어느 탈레반이 여성을 위한다고 했는가. ‘진실’을 보도한다는 사명감으로 직접 코란을 확인한 언론도 있느냔 말이다. 1997년 탈레반이 정권을 잡자마자 모든 여성은 직장에서 강제 해고되고 학교에서 강제 퇴학을 당했다. 생계가 어려워져 매춘으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돌로 맞아 죽은 여인들도 수없이 많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 그저 ‘알라께서 정한 운명’이라고 숨어서 눈물짓는 무슬림 여성들의 한 맺힌 소리를 들어 본 일이 있느냐는 것이다. 탈레반 정권 아래서 여성들이 얼마나 심각한 학대를 당했는지는 온 세계가 다 안다. 이는 인터넷에서도 간단하게 확인할 수가 있다(http://www.rawa.org/rospi.htm).

인터넷 위키백과사전에서 ‘탈레반’을 찾으면 ‘세계에서 남녀 차별이 가장 심한 정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슬람 원리주의라고 하는 탈레반이 여성들을 이렇게 가혹하게 대하는 이유는 바로 ‘코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코란에 보면 여성들은 ‘씨를 뿌리는 밭’으로 묘사되어 있다(코란2:223). 이슬람 국제출판국의 번역을 보면 ‘너의 처들은 네게 밭이니 네가 원하는 때에 네가 원하는 방법으로 너의 밭에 가까이 하며’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여성을 인격이 아닌 생산을 위한 도구, 혹은 쾌락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무슬림 남자들은 두 번까지 이혼할 권리가 있다. 한 남자가 평생 두 번 이혼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한 여자와 두 번까지 이혼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만일 세 번 이혼한 여자와 다시 결합하고 싶다면 그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헤어진 뒤에 데려오면 죄가 되지 않는다(코란2:229~230). 코란은 ‘아내 바꾸기’도 허용한다. 단 조건은 아내에게 이미 주었던 돈은 뺏지 않는 것이다(코란4:20).

이런 구절도 있다. ‘쾌락을 얻은 여인에게 소정의 보수를 주라’(코란4:24) 이 구절은 매춘을 합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이 구절을 근거로 ‘시한부 계약결혼’(Temporary marriage)이 이슬람권의 여러 나라에서 정당화되고 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전쟁 포로나 노예 소녀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도 성적인 도구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코란은 ‘남편이 있는 여자와는 결혼하지 말라. 단 네 오른손이 소유하는 것은 예외니라’(코란4:24), ‘그 이후는 그대가 그 이상의 여성과 결혼함이 허용되지 아니하며 미모의 여성이 그대를 유혹한다 하여도 그녀들을 대체할 수 없으되 그대의 오른손이 소유하는 것은 제외라’(코란33:52), ‘만일 부인을 여러 명 얻고 그들을 공평하게 대할 수 없으면 차라리 한 명만 얻고 그 나머지는 오른손이 소유하는 것으로 하면 불공평하게 될 염려가 없다’(코란4:3)고 언급한다. 이슬람에서는 전쟁 포로, 노예 소녀들을 ‘오른손이 소유하는 것’이라고 부르는데 코란의 이런 구절들은 이들을 성적 노리개로 취급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유산을 넘겨 줄 때 딸은 아들의 절반이며(코란4:11), 증인을 세울 때에도 여성 증인 2명은 남자 증인 1명과 같다(코란2:282). 여성의 인격은 남성의 절반 정도의 수준으로 이해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심지어 남편은 아내를 구타할 권리도 가지고 있다. ‘남편에게 불순종할 우려가 있으면 타이르거나 여러 부인들 중 그 여자만 잠자리에서 제외시키거나 그래도 안 들으면 매를 때리라’고 코란은 가르치고 있다(코란4:34).

이슬람에서 코란에 버금가는 권위를 가진 하디스(예언자 어록)에서는 더욱 적나라한 여성 학대의 근거들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무슬림이 기도할 때 개나 원숭이나 여자가 그 앞을 지나가면 그 기도는 무효라’, ‘여자에게 책임을 맡기면 성공하는 법이 없다’는 말 등이다. 중동에 사는 무슬림 여인 중에 이 하디스의 구절들을 모르는 여인은 없을 것이다.

위에서 예로 든 몇몇 구절들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이슬람에서 여성들을 보호한다는 말은 7세기 아랍인들에게는 맞는 말일지 모르지만 오늘날 21세기에는 잘못된 말이다. 이와 같은 정보를 밝히는 이유는 이슬람에 대해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의 정보로 인해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줄일 수 있기 위해서다.

아무쪼록 매스컴에서는 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할 책임이 있으며, 특히 이슬람에 대해 기사를 작성할 때에는 어느 학자나 개인의 견해가 아닌,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에 근거를 둔 것인지 확인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야 나중에 확인된 후에 실수를 인정하고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만석 목사(한국이란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