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춘 목사(www.dreamel.com 운영자)

우리나라 통계청의 ‘2005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2005년 11월 1일 현재 우리나라의 개신교 교인수는 10년 전에 비해 14만 4,000명 감소한 876만 6,000명에 그쳤다. 같은 기간 중, 천주교는 219만 5,000명 증가한 514만 6,000명에 달했다.


천주교 교세가 대폭 늘어났는데 반해 개신교 교세는 오히려 줄었으니 개신교계가 다시 분발해야 한다는 정도로 문제의 심각성을 호도해서는 안 되겠다. 14만 4,000명이 감소했다는 것은 지난 10년간 ‘6만 교회, 1,200만 성도’를 자랑하던 개신교계의 교만에 대한 주님의 경고로 해석된다.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계7:4). 14만 4,000명은 이스라엘 12지파에다 1만 2,000명을 곱한 수, 즉 12 x 12 x 1,000이다. 그러니까 완전수 12를 2번 곱한 데다 충만수 10을 3번 곱한 수치다.

일부 이단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액면 그대로의 14만 4,000명이 아님은 분명하다. 종국에 주님의 구원을 받게 될 성도수가 완전하고 완전하며 충만하고 충만하고 충만하다는 상징성이 있다. 그런데 개신교 교인수가 그렇게 줄었다는 게 아닌가.

실제로는 14만 4,000명이 줄었지만 주님의 경고에 담긴 상징성은 완전하고 충만하게 줄었다는 것이기도 하겠다. ‘6만 교회, 1,200만 성도, 선교 대국’을 앞세우면서 외양을 과시하던 개신교계의 현실이 이렇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십자가 정신이 상실됐기 때문이다. 무엇이 십자가 정신인가. 아래로 내려가는 하방운동이다. 주님은 땅으로, 변두리로, 가난한 사람들에게로, 심지어 십자가로 내려가셨다. 주님의 하방운동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자유를 얻고(눅4:18-19) 복음을 맛보았다(눅7:22).

주님을 따라 사도들도 하방운동을 벌였다. 사도 바울은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는 아래로의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행20:22-24). 이런 하방운동, 곧 십자가 정신이 로마제국이라는 가루 서 말을 격동시키는 누룩 한 알로 작용했다.

요즘 우리나라는 어떤가. 온통 상방운동이다. 세상 사람들보다 교회가, 목회자가, 교인이 더 그런 것 같다. 주님은 땅으로, 변두리로, 가난한 사람들에게로, 십자가로 하방운동을 하셨는데 주님의 종들과 백성들은 좀 더 나은 곳이라면 염치불문하고 상방운동을 벌인다.

이러고서야 어찌 교회가 사회더러 “똑바로 하라”고 외치겠는가. 십자가 정신이 있었을 때 교회는 사회더러 그렇게 외칠 수 있었다. 이제 십자가 정신이 사라진 교회를 향해 사회가 교회더러 그렇게 충고하는 역전이 일어나고 있다.

“다른 대형교회들이 세습 등의 문제를 야기하면서 죽을 쑤는 틈에 우리교회는 청렴해서 교인수가 3배나 늘었다”며 반사이익을 당연시하는 귀족교회들이 있는 한 개신교계의 미래는 없다. 지금 가장자리가 불타고 있는데 중앙에 있다고 자만하는 꼴이다.

지금은 꼭대기를 향해 날개를 퍼덕이는 이벤트를 벌일 때가 아니다. 조용히 날개를 꺾고 골짜기로 들어가 거기서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고민하고 신음하고 애통해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주님처럼 살점을 찢어 줘야 한다. 십자가 정신의 절정은 자신의 몸을 찢어 나누는 것이다.

다들 박수갈채를 뒤로 하고 날개를 접고 골짜기로 내려가야 한다. 거기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뒹굴며 고민하며 신음하며 애통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처럼 살과 피를 나눠야 한다. 십자가 정신을 깊이 묵상하자. 그리고 그것을 실행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