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길면 70년, 건강해도 80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인생을 하루로 계산하면 특징들을 잘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80살을 하루의 마지막인 24시라고 한다면, 40살은 낮 12시이고, 20살은 아침 6시이다.

그러므로 13-18살에 해당하는 청소년은 하루가 시작되기 바로 전인 새벽에 해당된다. 새벽은 아직도 빛을 보기 전이므로 가장 깜깜한 때이다. 마치 파수군이 아침을 기다리면서 어두움을 잘 견디는 것처럼 청소년들도 비록 미래가 어둡고 확실하지 않아도 새 날을 기다려야 한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 110:3).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니일이라는 소년은 연극을 좋아하는 꿈 많은 고등학생이다. 오직 입시만을 위해 공부 외에는 모든 것을 유보해 주기를 바라는 아버지는 그가 의대로 진학하기를 소원하며 자식과 극한 감정의 대립을 겪는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를 사관학교로 강제로 전학시켰다. 니일은 자기의 꿈과 부모의 바램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죽음이라는 파국적인 결말을 선택하게 된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자신의 정체성을 갖은 사람이 나아가야 할 그 다음의 모습은 꿈을 지니는 것이다. 이는 청소년 시기에 해야 할 2대 사명-'나는 누구인가?'와 더불어 '나는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하는 비젼에 관한 문제이다.

비젼(Vision)이란 예언, 꿈, 환상, 이상, 상상, 전망, 묵시 등으로 해석되는데 이것은 '보이지 않는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 '열망할 수 있는 미래의 그림', '현재의 상상력을 통해서 갈망하는 미래의 상태를 창조해 내는 능력'등의 뜻이다.

역사상의 인물들을 보면 사물을 보는 눈이 달랐다. 비젼을 소중히 하는 사람, 높은 이상을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 꿈을 성취하고야 만다. 큰 강은 작은 개울에서 시작된다. 가장 위대한 업적도 처음에는 작은 꿈에 불과했다. 꿈은 현실의 묘목이다.

그런데 지나가는 청소년을 붙잡고 물어보자. "어떤 꿈이 좋은가?" 흔히들 꿈은 클수록 좋다고 말한다. 꿈이 크다는 것을 아마도 지위가 높거나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거나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래서 일단은 크게 꾸어야 못 이루어도 그 반은 이룰 수 있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말들을 한니다.

그러나 요셉이 꾼 꿈은 엄밀한 의미에서 꾸어진 꿈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의 꿈이 아니었다. 그의 꿈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계시였다. 즉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계획이 담겨진 꿈이었다. 자신만을 위한 이기주의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링컨과 독일의 히틀러는 같은 시대의 인물이었으나 한 사람은 노예해방의 선봉장이 되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세계정복을 꿈꾸며 많은 사람을 죽인 학살자로서의 오명을 남겼다.그러니 꿈이 있느냐 없느냐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과연 어떤 꿈이냐 하는 것이다.

'인도 빈민가의 어머니'로 불리며 1979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마틴 테레사 수녀에게 기자가 인터뷰를 청했다.
"수녀님은 이런 일을 할 특별한 자질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나의 일은 하나님의 일이기에 나는 앞장서지 않았습니다. 나는 단지 하나님의 손에 있는 <珹僊 연伍>에 불과합니다. 그가 사용하시도록 자신을 드리는 것 뿐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내가 더 가난해져서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는 정신으로 살았고 그녀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이 생각에 공감하여 세계 각처에서 모임을 가져 <사랑의 선교회(Mission of Charity)>가 160개국에 세워졌다.

캘커타에서 살면서 테레사 수녀는 길에 버려져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죽을 병에 걸린 식구를 대책이 없으니까 길에다 버리는 것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나서 존귀한데 죽을 때에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그래 데려다가 깨끗이 씻어주기라도 하자." 그래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씻어주는데, 어떤 때는 데려가는 도중에 죽고, 씻어주는 중에 죽고, 씻어 준 후에 죽은데 이따금 살아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죽어가는 사람을 데려다가 씻어 주는 데 옆에서 지켜보던 한 미국인이 말했다.
"수녀님, 저는 누구 100만 달러를 준다고 해도 그 사람을 씻어 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테레사 수녀가 정색을 하며 대답하였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저에게 300만 달러를 준다고 해도 저는 이 사람을 씻어 줄 수 없습니다. 다만 이 사람이 저에게는 예수님이 되기 때문에 씻어 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러셨지요. '누가 내 이름으로 물 한 그릇 주는 것이 내게 한 것이니라"고. 사람들은 저에게 '섬겨야될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을 섬기듯이 이 사람들을 섬길 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자신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 그 사명을 사람을 통해 이루어 가시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가져야 할 꿈은 어떻게 나의 꿈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이냐는 내용을 담은 꿈이어야 한다. 이것이 곧 크고 위대한 꿈이다.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재능이나 사명을 주고 당신의 일을 하시기를 기대하신다.'무엇이 되느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귀중한 것은 '어떠한 꿈을 꿀 것인가, 나에게 주어진 꿈은 무엇인가'에 더욱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적지만 소중한 것은 바로 이런 내용을 담은 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꿈은 기독교 신앙 안에서만 생각할 수 있다. 그러기에 가정에서 교회에서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꿈을 갖도록 지도해야한다.

5월은 청소년을 기억하는 달이다. 가정의 소중함과 함께 미래의 청소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그들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는 노력을 생각해 보자.


손종국 목사 (청소년교육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