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문제점 중에 하나는 바로 중세 로마 카톨릭교회로 복귀하는 현상이다. 모든 교회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오직 말씀만, 오직 은혜만, 오직 예수만 강조했던 종교개혁자들의 정신에서 조금씩 이탈하는 모습을 많은 면에서 볼 수 있다.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논하기 전에 먼저 로마 카톨릭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기독교의 본질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교부시대는 교회의 표지를 감독의 통치하에 있는 외적인 기관으로 인식하였다. 후에 도나투스와 논쟁을 통하여 어거스틴은 교회의 본질을 강조하였다. 특히 예정론의 입장에서 교회를 택함 받은 자들의 단체 곧 하나님의 영을 받음으로 참된 사랑이라는 성품을 갖춘 성도의 무리로 생각하였다.

후에 키프리안은 성례전을 강조하면서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동일시하는 유형적 조직체로서 로마 카톨릭교회의 교회론에 기초석을 놓았다. 중세시대에 교회와 국가는 백성들을 다스리는 두 권세로 보았으며, 교회를 더 상위에 두었다. 후에 로마교회는 성직자들의 권위를 강화시키고 교황의 권위를 더 강화시켰다. 성직자들은 평신도와 분리된 계급에 오르게 되었다. 그들만이 성도들의 구원을 얻는데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교회 안에서 수행하였다. 로마교회는 자신들의 교회가 지상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로 착각하고 조직화된 교회를 강조하였다. 결국 중세 로마카톨릭교회는 구원을 교회와 성직자들에게 큰 역할을 둠으로써 교회와 성직자들의 권위를 강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관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중세시대의 교회는 근본적으로 성직자들의 문제였다. 그들이 교회의 주인으로 권위를 가졌고 말씀의 권위보다는 전통과 기구적인 제도 그리고 외형적인 면을 강조하였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독재적이며 카리스마적인 목회자들이 큰 교회를 맡고 있다. 지나친 카리스마의 남용은 우상적으로 흐르기 쉽다. 그런 지도자들의 권위는 로마 교황의 권세와 견줄 만 하다. 이런 목회자들의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권위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의 권위가 사라지고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은 소멸할 것이다. 한스 큉은 성령은 로마 교회와 사제들에게 제한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점은 타당한 말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권위가 앞세워진 유형교회에서 성령의 생명력 있는 역사는 자리를 잡지 못할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말씀의 권위 즉 복음의 권위를 바르게 시행해야 할 것이다.

권위적이며 독재적인 목회자들은 교회의 내면적이며 영적인 면을 강조하기보다는 외형적인 면과 조직과 행정 등 제도적인 면을 강조한다. 외형적인 강조는 결과적으로 인간적인 행위가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만든다. 교회의 구성원들이 이런 행위와 외형적인 노력에 신경을 더 쓰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 오직 은혜를 강조하며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개혁자들의 정신과는 달리 인간의 외형적 행위에 강조가 심해지는 한국교회의 모습은 중세의 로마 교회를 연상케 한다.

중세에 로마 카톨릭교회가 형식과 인간의 행위를 강조하는 것들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의 개념에서 영향을 받은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의 중심사상인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한다"(gratia non tollit naturam, sed perficit)라는 스콜라 신학의 영향이었다. 세속의 문화와 물질주의에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는 인위적인 교회의 행사와 외형적인 행위의 표출을 벗어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개혁자들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베드로의 후계권을 주장함으로써 비역사적이며 비성경적인 교황권을 강화, 개혁자들에 의해서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대형교회에서 담임 목사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후계 문제는 교회론의 심각한 변질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이런 패턴은 로마 교회가 주장하는 베드로의 후계권과 그 차이점이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중세 로마 카톨릭교회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이제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강조되며, 오직 주님의 권위, 말씀의 권위, 성령님의 권위가 우선적으로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한국교회는 오늘날의 산적해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안명준교수(평택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