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보다 약 한 세기 후인 기원 전 7세기 경, 예루살렘에는 그의 동시대 사람들과 그 다음 세대들에게 매우 의의(意義)있는 활동을 한 한 예언자가 나타났으니 그의 이름은 "야훼께서 관대함을 베푸시다...야훼께서 자궁 문을 여시다" "야훼께서 들어올려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등등의 의미를 갖고 있는 "예레미야"라 이름하는 예언자였다.


그러나 그는 기원 전 8세기의 유다 예루살렘의 예언자인 이사야와는 상당히 대조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비록 이사야처럼 유다 예루살렘에서 예언활동을 하기는 하였으나 예루살렘은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의 영역이므로 예루살렘에 대한 외국(앗수르)의 침입은 절대 불가능하며, 그러므로 야훼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만이 위기에 대처하는 최선의 태도라고 역설한 이사야와는 정반대로 예루살렘이라고 하여도 반(反) 윤리적/ 반(反) 토라적 삶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야훼 하나님과의 첫 사랑의 관계에 대한 유다의 변절은 오히려 더 가혹한 심판을 불러들일 것이며, 따라서 그러한 신성불가침의 교조는 절대 지켜질 수 없다라는 입장을 취하고 더 나아가 신흥 바벨론 제국의 침략을 야훼 하나님의 심판행위로 이해하고 유다의 항복을 신(神)의 뜻으로 받기를 요구하기까지 한 특이한 예언자였던 것이다.

이러한 민족의 위기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였던 예레미야는 예언자로서의 시대적 소명(召命)을 받았을 때 "나이가 어리다"(나이 20세)는 이유와 "말을 할 줄 모른다"(cf. 모세)는 이유를 내세워 소명 받기를 사양하였다. 모세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야훼 하나님은 이 경우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주시며 소명 수행을 강권(强勸)하셨고 예레미야는 이 강권에 밀려 왕조 시대 이래 최대의 비극을 맞을 시대(바벨론의 침공과 예루살렘의 멸망, 그리고 70년 바벨론 포로기라는 가장 비극적인 시대)의 대변인(代辯人)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예언은 참담한 고난 속에서 선포된 탄식(歎息)의 음조(만가[輓歌]조는 아님!)의 지배를 철저히 받았던 것이다.

예레미야의 탄식은 자기의 출생에 대한 탄식(렘 15:10)과 그리고 이웃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일을 삼가하고(렘 15:17) 결혼까지 거부하는 탄식(렘 16:2)으로 시작한다. 그의 고통은 북쪽에서 들려오는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 소리(렘 4:19f), 그리고 전쟁의 소문(렘 6:22-26) 때문에 심장병(렘 8:18)을 앓을 정도다. 번뇌로 머리와 눈은 눈물 근원이 되어 눈물홍수를 이룬다(렘 9:1). 마치 하나님이 젊은 예언자 예레미야를 "속이는 시내처럼 속이며(렘 15:18) 조롱거리로 삼는 것 같다.
허리띠가 썩을 정도로 유다와 예루살렘의 교만이 썩은 냄새를 유다 온 땅에 풍겨 진동시킨다(렘 13:1-11). 유다는 신혼의 신부가 간음하는 자처럼 그 지켜야 할 신의와 진실을 모두 버렸고 더욱이 거짓을 가르치기까지 한다(렘 9:2f). 평화(平和)가 아닌데도 샬롬, 샬롬 하면서 "거짓 평화"를 팔고(렘 9:8f), 거짓 예언자들이 등장하여 헛된 꿈 이야기로(렘 23:13f) 백성들을 바알주의로 미혹한다.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절규하지만 가죽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단행하는 자는 거기 없었다(렘 3:22-4:4).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그러므로 혁명적인 "새" 메시지로 전환된다. 가죽만을 베는 형식적 할례가 아니라 "마음 가죽"(렘 4:4)을 베는 진정한 할례를 요청하였다. 말하자면, 진실"과 "거짓"의 문제가 심각하게 예언자적 변론의 중요 주제로 떠 오른 것이다. 참 평화와 거짓 평화, 참 회개와 거짓 회개,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 참 할례와 거짓 할례, 그리고 옛 계약과 새 계약의 문제가 논쟁의 초점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기원 전 7세기의 유다 예루살렘의 시민들은 한 세기 전에 있었던 이사야의 "예루살렘 신성불가침"의 교조에 사로잡혀서 이사야의 가르침의 참 의미를 크게 오해하고 있었다. 예루살렘의 신성성은 윤리나 토라를 초월하는 초법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것이 야훼의 성전이다! 이것이 야훼의 성전이다!"(렘 7:4)라고만 하면 예루살렘의 평화가 보장된다는 것은 "거짓" 가르침이라고 예레미야는 성전 문앞에 서서 외쳤던 것이다. 그러한 거짓 교조 속에 안주하는 것은 거짓 평화관이요 거짓 안보(安保)논리라는 것이다.

"회개"도 형식적 회개로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예레미야의 판단이었다. 진정한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은 선배 예언자들에게서도 충분히 들어 온 것이기는 하여도 예레미야의 경우는 "가죽" 만을 베는 할례의 형식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이 새롭게 강조되었던 점이다. 가죽을 베는 할례가 아니라 마음 가죽을 베는 할례라야 진정한 의미의 회심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은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욜 2:13) 라는 요엘 예언자의 메시지와도 정확히 상응한다(cf. 갈 6:10).

예레미야의 혁명적 가르침은 무엇 보다 "새 계약에 관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레미야 31장-32장에 걸쳐 전개된 예언자적 언어는 참으로 많은 신비에 싸여 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이 새 계약에 관한 메시지는 이전에는 듣지 못한 은총의 메시지로 구성되어 있음을 전 편에 걸쳐서 느낄 수 있다.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赦)하고 다시는 그 죄(罪)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렘 31:34) "내가 이 백성에게 이 큰 재앙을 내린 것 같이 허락한 모든 복도 그들에게 내리리라"(렘 32:42)라는 메시지는 이스라엘(유다)이 그 받을 죄값을 받을 만큼은 다 받았다(cf. 사 40:2)는 의미가 있음을 암시한다. 이제는 심판의 시대는 가고 은총이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 문맥에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모성적(母性的) 창조성(創造性; cf. 렙 31:22, 35-38)에 대한 강한 암시와 그리고 이스라엘과 유다가 당한 그 고난의 아픔이 겪어야 할 만큼은 충분하게 겪은 것으로 전제하고 있는 점(렘 31:15-22; 32:36-37,42) 등은 은총의 시대가 도래하였다는 놀라운 역사적 각성이 이 예언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준다. 이러한 새 계약 사상은 예수 공동체로 하여금 예레미야의 새 계약에 관한 예언을 기독론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제공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예레미야 예언의 "새로움" 중에서 특히 매우 인상적인 점은 "예언과 예언자의 진정성"에 관한 논쟁을 크게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누가 참 예언자냐는 것이다. 물론, 이 쟁점은 엘리야 시대로부터 항상 전제되어 왔었던 것이지만, 예레미야에게서 그 주제는 좀 더 분명하게 신학적으로 심화되었다 할 수 있다. 포악한 이방 제국인 바벨론 제국의 잔인한 침략행위가 눈앞에 닥쳤는데도 이 바벨론의 침략행위가 하나님의 유다의 죄에 대한 심판행위이고, 그러므로 유다는 이 심판을 하나님의 뜻으로 겸허하게 받아야 한다고 할 때, 그 매국노적인 예언의 진정성(眞正性)과 그 예언자 자신의 진정성은 반드시 쟁점화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예언자의 고난은 이때부터 이미 예고되고 있었던 것이다. 참 예언자는 실로 <평화가 아닌 것은 평화가 아니라고 말하는 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민족주의 신앙이나 잘못된 시온주의 신앙으로 감히 변경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의 주는 하나님 한 분뿐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은 이방제국인 바벨론 제국을 통하여서도 선민(選民) 유다의 성도(聖都)인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 아닌 것은 평화 아니라고 말하는 것, 즉 참은 참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 "참 예언자"이기 때문이다.

김이곤(한신대, 신학전문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