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들의 시대적 사명은 막중하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그들 역사 속에서 줄곧 강대 제국들의 정치적 위협 속에서 살아야 했다. 특히 기원전 8세기의 역사적 상황은 더욱 그러하였고 또한 그 국가적 위기감은 더욱 절박하였다. 북으로는 잔인하고 강대한 제국인 앗수르 제국과 수리아 제국이 호시탐탐 이스라엘과 유다를 삼키려하고 있고 남으로는 애굽 제국이 또한 기회만 있으면 팔레스틴에 자기 세력을 확장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위협은 단순히 정치적인 문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정치-경제적 위협은 곧 야훼신앙에 대한 위협으로 직결되었다. 앗수르 제국이나 애굽 제국은 정치-경제적으로만 침략해 들어 온 것이 아니라, 자기 종교나 자기 이념도 함께 갖고 들어와 그들의 종교적 이념을 강요하였다. 그러므로, 정치적 결단은 곧 종교적 결단이요 종교적 결단은 곧 정치적 결단으로 연결되었다.

예언자 이사야는 기원전 8세기의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위기 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여 우왕좌왕하는 예루살렘 왕도와 그 지도자를 향하여, 그리고 예루살렘 시민들을 향하여 이러한 "위기상황"에 있어서 야훼 신앙인이 취하여야 할 기본 자세가 무엇인지를 매우 분명하게 제시한 예언자였다. 즉 참 안정(true security)과 거짓 안정(false security), 참 평화와 거짓 평화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려 주는 지도자적 역할을 한 예언자였다.

그의 현실대처의 척도는 그러므로 "신앙"(信仰)이었다. 즉 하나님에 대한 절대신뢰의 "신앙"만이 정치-경제-종교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유일(唯一)한 대안(代案)이라고 그는 보았다. 이러한 그의 관점은 그의 소명(召命) 보도를 통하여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즉 이사야는 그의 소명체험(召命體驗)을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체험을 통하여 갖게 되었다. 하나님은 절대 "거룩하신" 분이시고 역사를 지배하시는 절대 "주권자"이시며 인간은 이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는 입술이 부정(不淨)한 죄인(罪人)에 불과하다는 인식(認識)을 통하여 <위기극복의 길이란 전적으로 오직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안에 있는 것, 하나님께 절대 신뢰하는 것>, 그것 만이라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그러므로, 희망은 오직 하나님 만이며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 만이 안정과 평화를 담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 신앙 만이 참 평화와 참 안정과 참 구원을 담보해 줄 수 있다는 이사야의 이러한 예언자적 증언은 바로 이러한 문맥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팔레스틴 전역을 휩쓸고 있는 앗수르 제국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하여 북 이스라엘(에브라임)과 수리아(아람)는 반(反) 앗수르 동맹을 맺고 유다에게 이 동맹에 가담하기를 제의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유다는 앗수르와 애굽 사이에서 "믿음 없는" 우유부단한 자세를 취하였고 이에 대하여 수리아-에브라임(아람-이스라엘) 동맹군은 유다의 비협조를 응징하려고 앗수르를 치기 전에 유다부터 먼저 치겠다고 공격하고 나섰다. 이를 본 유다의 아하스 왕은 그의 백성과 함께 극심한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심히 동요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예리하게 간파한 이사야는 문제의 핵심이 전적으로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 여부(與否)에 있다는 것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이사야는 아하스를 향하여, "너는 삼가며 종용(慫慂)하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가 심히 노할지라도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사 7:8)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사 7:9)라고 외쳤던 것이다.

왜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하는가? 왜 유다 왕 아하스는 동맹군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하는가? 왜 아하스는 앗수르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하고 애굽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 대답은 하나다. 그것은 야훼 하나님이 역사의 유일한 주권자이시기 때문이며 진정으로 두려워 할 분은 오직 야훼 하나님 뿐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칼이나 창이 두려움의 대상이거나 칼이나 창이 안보의 도구이거나 한 것이 아니며(!) 앗수르나 애굽 또는 동맹군이 의지(依支)할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야훼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의 신앙 만이 진정한 의미의 "안보"요 진정한 의미의 "안보의 도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대답은 이스라엘 역사 초기부터 이스라엘 신앙을 주도해 온 "성전(聖戰:holy war) 신앙의 전승" 속에 이미 오래 전부터 뿌리내리고 있었던 신앙전통이었던 것이다. 이사야는 이러한 신앙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지식을 갖고 있었던 사상가(thinker)였고 신학자(theologian)였다. 일종 예루살렘 왕도(王都)에 살고 있었던 지식인층, 상류층 또는 귀족 출신의 예언자였던 것이다. 이사야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성전(聖戰) 전승(傳承) 속에 뿌리 내리고 있는 중심 신앙"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는 일종의 "신학자"(神學者)였던 것이다.

전쟁의 승리(모든 종류의 구원)는 역사의 유일한 주권자이시고 주인(전쟁 용사, cf. 출 15:3)이신 야훼에게만 속한 것이라는 것, 그러므로 칼과 창 그리고 활을 구원의 능력이 있다고 의지(依支)할 것이 아니라 오직 야훼 하나님 만이 구원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고, 의지(依支)하여야 한다는 것, 이것은 "거룩한 전쟁"[聖戰] 전승의 핵심 주제요 핵심 신앙이었다. 이 신앙은 시편 33편 16절과 17절에 잘 정리되어 있다: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구원함에 있어서 말[馬]은 헛것임이여 그 큰 힘으로는 구(救)하지 못하는도다"

그러나, 야훼 하나님의 유일한 주권은 결코 민족주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비록 예언자 이사야는 "예루살렘(시온) 신성불가침"을 말하고는 있지만 그러나 시온주의자는 아니었다. 단지,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오고 야훼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에(!!) 예루살렘(시온)은 신성불가침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단지 이스라엘이라는 그 이유 때문 만으로 "하나님의 백성"인 것은 아니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사야는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사 19:25)라는 신언(神言)을 듣고 또 선포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앗수르는 또한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요 "하나님의 손의 몽둥이"였다고도 그는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는 그러므로 전적으로 하나님 한 분의 손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오직 야훼 하나님 한 뿐이라고 말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야훼 하나님에 대한 배타적이고도 절대적인 의지(依支) 신앙" 만이라는 것이다. 임마누엘 신앙 만이 난국 타개의 유일한 대안(代案)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원전 8세기의 난국을 타개해 갈 유일한 길에 관한 "징조"(徵兆)를 그는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의 자식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것에서 보았던 것이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김이곤 교수(한신대 신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