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변화산 변모사건 때, 예수님께서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하셔서 이스라엘의 대표적 두 지도자인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말씀 나누시는 모습을 보여 주신 바가 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전해 준 율법종교의 시조"로서 알려진 자이며, 엘리야는 "예언종교"를 이스라엘 안에 수립한 예언종교의 시조로서 알려진 자이다. 엘리야는 그런 의미에서 구약 예언종교의 기본 성격이 무엇이며 이스라엘 예언자의 원형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 자라고 볼 수 있다.


"예언자" 또는 "예언" 이라는 말은 성서언어 중에서 가장 오해를 많이 받아 온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오해는 이 "예언자"라는 말의 "예"라는 말이 한자로 豫자를 써서 시간적 "앞"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한데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오해는 영어의 pro-phet의 "프로"( -/pro-)라는 말을 "시간적 앞"으로 이해한데서도 온다. 이렇게 하여 "예언자"라는 말은 시간적으로 앞질러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말하는 자"(fore-teller) 또는 "미래의 운명을 미리 점치는 자"(fortune-teller)라는 의미로 오해되어 왔던 것이다.

사실, 구약의 이스라엘 예언자들은 미래를 앞질러 점치는 자는 아니었다. 이와는 달리, 시간적 의미의 "앞"보다는 공간적 의미의 "앞" 즉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을 향해 말하는 자"가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실제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구약 예언자들에게서부터 일관되게 읽을 수 있는데 "엘리야"는 이러한 예언자의 모습을 가장 분명하고도 모범적으로 보여 준 대표적 인물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모습은 엘리야의 첫 등장에서 이미 확연하게 나타났다.

엘리야는 "길르앗" 출신의 "디셉 사람"으로서 아합 왕 앞에 나타나자마자 "가뭄"을 선포함으로서 그의 첫 예언활동을 개시하였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길르앗" 출신이라는 것은 요단 서편의 땅인 가나안과는 거리를 갖고 있는, 이른 바, <가나안(바알) 종교의 물이 들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와 관련하여 볼 때, "디셉 사람"이라는 말도 단순한 지명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가나안]본토인이 아닌 외부에서 들어와서 거주(居住)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엘리야>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전투적인 성격과 동시에 종교적 배타성을 지닌 그 질투성(嫉妬性)을 고려할 때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엘리야"라는 말은 "나의 하나님은 야[훼]이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너의 하나님이 바알이라면 나의 하나님은 야훼다!"라는 전투적 성격을 가짐과 동시에 "나의 하나님은 야훼 이외의 그 어떠한 신(神)도 아니다. 그러므로, 바알은 결코 나의 하나님이 될 수 없다!"라는 배타적 선언의 의미를 갖고 있어서 "엘리야"는 이미 그의 이름으로부터 바알(가나안) 종교의 비진리를 규탄하고 야훼 종교의 진리성을 밝히려고 투쟁하는 질투심이 충일한 예언자의 성격을 갖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언자 엘리야는 아합 왕 앞에 나타나자마자 그 제일성(第一聲)으로 "가뭄선포"를 외쳤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미래의 개인운명을 미리 알아 맞히는 "점술행위"(占術行爲)는 결코 아니었다. 이것은 "비"를 내리고 안내리고 하는 자연 순환의 질서를 관장하는 신은 "바알"이 아니라 "야훼"라는 것을 알리므로 자연종교인 바알종교의 유혹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적 미망(迷妄)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건져내려는 하나의 종교개혁운동이었다. 구약 예언자의 기능은 바로 이런 성격의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언운동은 우리를 거짓 신과 거짓 종교의 미망(迷妄)으로부터 건져내려는 하나의 종교운동이었다. 그것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스라엘 예언운동은 결코 개인이거나 국가이거나 간에 그 운명의 미래를 미리 점지(點指)하여 알아 맞히는 성격의 점술운동은 아니었다. 엘리야는 그러한 점술종교 운동과는 전혀 그 궤(軌)를 달리 하는 종교운동, 즉 거짓종교의 미혹(迷惑)을 깨드려 주고 개인과 사회에 대한 종교적 책임을 각성시켜 인간으로 하여금 진리에 입각한 삶을 살도록 촉구하는 인간갱신 운동을 하였던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엘리야에게 있어서 "참 종교"란 무엇인가? 엘리야는 호렙산 신현현(神顯現)의 체험을 통하여 참 종교는 산을 가르고 바위를 쪼개는 종교적 위력을 가진 "바람("루아하": "영[靈]"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음)몰이의 종교"도 아니고 인간 삶의 기초인 땅을 뒤흔드는 "지진"의 위력을 가진 "힘의 종교"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하여 모든 종교제단을 모두 불태워버리는 "불"의 마술적 "열광주의 종교"도 아니라는 것, 오직 "세미한 음성"이지만 그 "음성신탁(音聲神託)을 통하여 수리아와 이스라엘, 그리고 수리아-이스라엘의 종교계에 대변혁을 일으키게 하는 추진력을 가진 "말씀의 종교"만이 참 종교라는 것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참 예언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악(惡)이 자행되는 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의 경고로 나타나서 거기에 어떠한 위험이 있다고 하여도 반드시 선포되게 되어 있다. 나봇의 포도밭을 탈취하고 그 주인을 죽인 아합 왕조의 부정한 왕권 비리가 나타나자 엘리야는 곧바로 그 자리에 나타나서 그러한 왕권비리는 멸망을 초래하는 근본원인이라는 것을 선포한 자가 엘리야였는데, 이것이 바로 이러한 구약적 예언활동의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예언자는 시대 시대마다 그 시대에 요청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을 대(代)신하여 선언(言)하는 하나님의 "대언자"(代言者)일 뿐이었다. 엘리야는 바로 이러한 성격의 이스라엘 예언자상(預言者像)과 예언운동을 이스라엘 종교사 속에 뿌리내리게 한 이스라엘 예언종교의 비조(鼻祖)였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선주자(先走者)로서 살다 간 예언자였던 것이다.

김이곤 교수(한신대, 신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