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보다 더 중요한 삶의 가치를 나누고 싶다”는 저자 신순규 씨. ⓒ판미동 제공

“내가 마음을 다스리는 데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역시 신앙이었다. 서울맹학교를 다닐 때 갖게 된,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비롯된 신앙생활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최근 자전 에세이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판미동)>을 펴낸 신순규 씨는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공인재무분석사(CFA)를 취득한 ‘애널리스트(analyst·국내외 주식시장 및 파생상품시장을 분석·예측하여 투자전략을 수립하는 사람)’다.

9세 때 시력을 잃은 후 15세 때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홀홀단신 미국 유학을 떠난 그는 의사와 경영학자, 애널리스트까지 진로를 여러 차례 변경했고, 하버드와 MIT 졸업 후 JP모건을 거쳐 세계의 금융 중심지인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 위치한 미국 내 프라이빗 뱅크 중 가장 큰 규모의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먼에서 21년째 일하고 있다.

책은 저자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 ‘본다는 것’, ‘꿈’, ‘가족’, ‘일’, ‘나눔’ 다섯 가지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있다. 특히 첫 번째 ‘본다는 것’에서는 겉만 보아서는 안 되고, 마음으로도 볼 수 있으며, 편견에 눈이 가려져서도 안 되고, 덜 보아야 ‘소음’에서 ‘신호’를 구별해낼 수 있음을 담담한 필체로 적어 내려가고 있다.

특히 고난과 역경을 힘겹게 헤쳐나가는 ‘입지전적 이야기’를 펼칠 것으로 예상했지만, 저자는 이런 류(類)의 도서들이 가는 ‘쉬운 길’ 대신 ‘다른 길’을 선택했다. 늘 온갖 것들을 보고 사느라 우리가 놓치고 사는 부분들을 되새겨 주고 있는 것.

책 발간 후 방한한 신 씨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주어진 환경과 거기서 겪는 경험이 남달랐기 때문에, 남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으로서 에세이를 쓰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책에서도 “모든 것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만 본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며 “심지어 내가 시력을 잃은 시기도 적절하다고 생각될 정도”라고 전하고 있다.

미국으로 돌아간 신 씨에게 이메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이 마음가짐이 선천적 성격 덕분인지, 가정교육의 영향인지, 아니면 신앙의 힘이나 ‘장애가 준 선물(?)’인지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말씀하신 것 모두’가 답인 것 같아요.”

보통은 ‘없는 것, 결핍된 것’에 불평하거나 좌절하기 쉬운데, ‘감사와 평안의 삶’을 살고 있는 비결이나 방법을 질문했을 때도, “저도 불평 많이 하고 속상해하면서 살아요”라며 겸손함을 내비쳤다.

▲저자는 “You are not handicapped. You are handycpapble(너는 장애인이 아니야. 유능한 사람이지”라는 ‘대드(미국 아버지)’의 말을 통해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한다. ⓒ판미동 제공

“매달 지출이 나열된 엑셀 파일을 보면서 한숨도 쉬고, 아이 학교에서 연락을 받고 속상해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런 일상적인 것들보다 더 큰 것은, 누군가나 하나님이 저와 제 가족을 품속에 간직할 정도로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입니다. 저를 향한 그분의 뜻이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삶이라면, 그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많지 않겠지요.”

이번에는 미국에서 많은 사람들을 겪어보며 한국인들에게 바뀌었으면 하는 고정관념이나 사고방식이 있는지 물었다. “며칠 동안 생각해 봤는데 특별히 생각나지 않네요. 사실 제가 다른 분들이 바뀌었으면 하는 말을 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좀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제가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들이 너무 많다 보니, 다른 이들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이 그렇게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서요.”

책에는 다소 생략된, 인생 곳곳에 ‘신앙’이 끼친 영향에 대해선 “하나님의 인도와 시기가 제 계획이나 소망보다 더 완벽하다는 것을 계속 경험하다 보니, 정말 삶에 대한 작은 것부터 아주 큰 일까지 주님께 맡기는 것이 버릇이 되어 버렸다”고 말했다.

“실명한 시기, 피아노 레슨을 강요받은 것, 유학까지 연결된 일들, 영어나 문화 적응에 도움이 되었던 서울맹학교에서의 1년, 더 큰 세상으로 가기 위한 준비와 훈련을 할 수 있었던 (미국) 일반 고등학교에서의 4년, 영주권과 명문대학의 관련성 등등…. 제 마음대로 제가 원하는 시기에 무엇 무엇이 되지 않는다고 불평했던 것들이 모두 더 좋은 일로 돌변하는 현실을 살다 보면, 누구나 이런 신앙의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에게 ‘신앙’이란 무엇일까. “신앙은 제게 ‘빼놓기 힘든 핵심적인 그것’이 아니라, 삶의 근본이자 목적이 ‘저와 하나님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들도 그렇지만, 제 존재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고 그분의 목적에 따라 일어난 일이므로, 과연 (오늘, 이번 주, 올해, 평생) 그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그 목적을 향해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제가 살 수 있는 최고의 삶이라고 믿습니다.”

저자는 “이런 삶에는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목적, 즉 무엇무엇이 된다거나 무슨 일을 해내는 것도 있지만, 어떻게 사는가, 즉 삶의 방법이나 과정 등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더 많다”고 덧붙였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회사에 있는 저자의 자리에는 ‘모니터’가 없다. 대신 키보드 아래 점자 디스플레이를 사용해, 점자와 이어폰으로 들리는 말소리를 통해 정보를 읽는다. ⓒ판미동 제공

책에서 저자는 “쏟아지는 정보를 가려 보는 일은 나에게 아주 중요하다. 찾아서 읽을 수 있는 정보는 그리 제한되어 있지 않지만, 스크린에 나오는 정보를 한눈에 다 보는 사람들보다는 아무래도 정보를 흡수하는 속도가 더디기 때문에, 꼭 필요한 정보만을 읽고 검토하는 능력을 쌓아야 했다”고 말한다.

정보도 정보지만, 수백만 달러를 움직여야 하는 과정에서 ‘불안이나 공포’는 없을까.

“고객의 자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임무를 우선으로 알고 있는 우리들은, 액수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100만 달러나 1억 달러나 똑같이 최선을 다해 보호하고 가치를 더해 주어야 하니까요.”

이런 일을 오래 하다 보면 돈의 액수가 그저 스포츠의 점수 같은 것이 된다고도 했다. “절대 내어 주면(돈을 잃으면) 안 되고, 꼭 점수를 더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마지막으로 액수는 아주 크지만 우리가 직접 현찰을 만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분석에 자신을 갖기 때문에, 일상적인 일에 대한 걱정 외에는 그렇게 두려워하면서 일하지 않습니다.”

신순규 씨는 책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줬던 세 권의 책을 소개한다. “사람에게서 듣기 어려운 것을 알고자 할 때, 나는 자주 책에서 답을 찾았다. 어떻게 해야 올바른 신앙을 갖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으며 예수님의 은혜와 자비로 다른 이들을 대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었던 나는, 이와 관련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가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책은 멀린 캐로더스 목사의 <감옥생활에서 찬송생활로(Prison to praise)>, 리처드 포스터 작가의 <영적 훈련과 성장(Celebration of Discipline)>, 그리고 필립 얀시 작가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What's So Amazing about Grace?)>이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한국 크리스천 젊은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신앙도서를 추가로 물었더니, 또 다시 필립 얀시의 책 ‘Philip Yancey’s Soul survivor(한국 제목 그들이 나를 살렸네)’를 권했다. “교회 때문에 상처받은 이들을 위해 쓴 이 책은, 신앙 덕분에 남다르게 살았던 13명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이 세상을 남다르게 살아야 하는 우리들에게 가이드와 같은 역할을 해 줍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