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에서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독서의 위기’를 말하는 오늘, ‘함께 읽기’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책 읽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찾아가 본다. -편집자 주

지난 11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당산동에 위치한 새물결 아카데미 강의실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둘러앉기 시작했다. 남자만 15명, 2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한 이들은 시간이 되자 ‘한 권의 책’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SNS를 통해 알음알음 모인 이들은, 이번 강독회를 통해 ‘오프라인’에서 처음 만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학도가 대부분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한때 ‘한국의 바빙크’, ‘한국의 칼 바르트’를 꿈꿨던 직장인들도 있고, 그저 ‘교회 오빠’인 청년들도 있다. 신학생들도 총신대나 합동신대부터 아신대, 한신대까지 신학적 성향이나 각자의 개성이 뚜렷했다.

하지만 참석한 이들은 각자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꺼내놓기도 하고, 질문도 해 가면서 치열하게 ‘공부’해 나갔다. 계속된 토론에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이들은 2시간여가 지나고 밤이 깊어져서야 다음 주 모임을 기약하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이들은 최근 나온 책 <개혁파 교의학(새물결플러스)>을 함께 읽기 위해 모인 이들이다. 이날 모인 이들은 15명이지만 회원 수는 20명이고, SNS의 ‘헤르만 바빙크 공부방’에는 이들을 포함해 총 30여 명이 함께하고 있다. 거리가 멀거나 사정상 참석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이 ‘온라인 공부방’에서는 자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임은 보통 비슷한 연령대끼리 모이게 되지만, <개혁파 교의학> 강독 모임에는 많은 경험을 가진 50대 3명이 함께하면서 묵직함을 더하고 있다. 이제까지 경험한 한국교회의 ‘콘텍스트’와 책의 ‘텍스트’를 적절히 섞는 이들의 한 마디 한 마디는 20-30대 회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로써 자연스럽게 세대를 아울러 한국교회나 한국 사회의 위기와 대안을 나누는 모임으로 발전하고 있다.

▲모임을 마치고 <개혁파 교의학>을 들고 함께한 구성원들. ⓒ이대웅 기자

이러한 ‘강독 모임’은 올해 초부터 시작됐다. 신학을 전공한 새물결플러스 이승용 팀장은 올해 <슬로 처치>와 <새 하늘과 새 땅>의 강독 모임을 주도했다. 그는 ‘함께 읽기’의 매력으로 “강독 모임을 통해 얻는 가장 큰 유익이라면,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구성원들 모두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것”이라며 “함께 같은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하거나 위로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신학 도서들을 주로 읽고 서로 나누다 보니, 학문으로서의 신학을 구체적인 현실과 일상에서 살아낼 수 있게 된다”며 “각자 살아내는 현실을 공유하면서 다양한 층위로 담론을 고민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일회성 모임이 아니다 보니 지속적으로 삶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관계가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모임은 총 8주간 이어진다.

강독회 3주째를 맞은 이날 모임에서는 <개혁파 교의학> 제1부 교의신학 서론에 해당하는 4장 ‘계시’와 5장 ‘성경’ 부분을 함께 읽었다. 맡은 이들이 해당 분량을 간략히 요약해 온 내용을 낭독하고, 서로의 생각과 고민들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4장 ‘계시’ 요약을 맡은 이승용 팀장은 “바빙크를 읽다 보면, ‘개혁파 신학자’ 하면 드는 느낌과 다소 다르게 보편성을 계속 이야기하고 관용적이면서 열린 자세를 취하고 있다”며 “그는 성경적 변증을 하면서도 독자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집중시키고, 성령과 교회를 강조하면서 차분하고 여유 있는 태도로 감동을 전해 준다”고 전했다.

처음엔 다소 어색한 공기도 흘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구성원들은 각자의 의견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5장 ‘성경’을 요약한 이웅석 전도사는 “바빙크는 성경의 ‘유기적 영감설’을 이야기하지만, 성경이 연대기적·역사적·지리적 부분에 있어 오류가 없다는 정통적 입장에 서 있는 듯하다”며 “그러나 초점과 목적은 그것보다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보게 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는 의견을 냈다.

▲헤르만 바빙크. ⓒ크리스천투데이 DB

참석자들은 “바빙크를 읽어 보니, ‘매개’나 ‘발화’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데서 보듯 포스트모던의 씨앗 같은 존재라는 생각도 든다”, “바빙크가 살았던 19세기 근대에 대한 시대적 이해가 없다 보니 그의 사상을 부분적으로 습득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바빙크가 성경에 대해 말하면서 정경의 형성 등을 말하지 않은 부분은 아쉽다” 등 한 마디씩 느낌과 생각을 펼쳤다.

고민은 자연스럽게 한국교회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바빙크가 보편성을 추구했다지만, 그저 성격 탓으로 자신의 의견을 적극 주장하기보다 소심하게 잽을 날리는 정도에 그치는 것 같다”는 한 참석자의 의견에, 다른 참석자는 “학자라면 누구나 결국은 자기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아닐까”라며 “바빙크가 다른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다른 점은 바로 자기 이야기를 하기 전의 과정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참석자는 “이 시대 한국교회에서 안타까운 점은 기독교 자체나 특정 교단들이 게토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라며 “요즘 일반 사람들은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대화 상대로조차 여기질 않고 있는데, 바빙크는 이와 달리 대화를 열어 주고 있는 점이 평가할 만하다”고 답했다. 그는 “요즘 기독교인들은 주장만 있고 근거가 없어 안타깝다”고도 했다.

이 같은 대화를 이끌어 낸 책의 저자는 네덜란드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이다. 아브라함 카이퍼와 벤자민 B. 워필드와 함께 세계 3대 칼빈주의 신학자로 불리는 그는 캄펀신학교(1883-1902)에서 가르치다 카이퍼의 뒤를 이어 자유대학교(1902-1921)에서 교의학을 가르쳤으며, 자유주의 신학이 득세하던 시기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 변증에 힘썼다.

바빙크는 <변증학>으로 잘 알려진 코넬리우스 반 틸(Cornelius Van Til), <조직신학>의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 등 많은 개혁주의 신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목회자이자 기독교 철학자이기도 했고, 정치가로서도 활동했다. 전 4권의 <개혁교의학>이 대표 저서이며, 국내에는 <하나님의 큰 일>, <개혁주의 신론(이상 CLC)> 등이 번역돼 있다.

상세정보 

마침 이날 출간된 <개혁파 교의학>은 전 4권인 헤르만 바빙크의 <개혁교의학(부흥과개혁사)>을 영어로 번역하며 한 권으로 요약한 美 칼빈신학대학원 존 볼트(John Bolt) 교수의 편집본을 한글로 번역·출간한 것이다. 4권 분량을 한 권으로 축약했지만, 분량이 1,412쪽에 달하는 ‘벽돌책’이다.

<개혁파 교의학>은 이들이 공부 중인 제1부 교의신학 서론을 비롯해, 제2부 삼위일체 하나님과 창조, 제3부 인간과 죄, 제4부 구속자 그리스도, 제5부 성령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 제6부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하시는 성령, 제7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 등 총 7부 25장으로 구성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