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했다

김형익 | 생명의말씀사 | 280쪽 | 13,000원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했다>는 ‘선하신 하나님’이라는 대명제를 토대로 다시 써내려간 ‘4영리’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성경에 등장하는 개념일 뿐, 우리의 실제 삶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이 ‘오해’임을 저자는 증거하고 있다.

저자는 이 오해의 문제를 첫 문장부터 파고든다. “하나님께서 오해를 받고 계신다. 그것도 심각하게.” 이러한 오해는 성경과 교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기독교는 어려워선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어, 성도들은 상향도 하향도 아닌 ‘사향(死向)’평준화되고 있다. 성경과 교리에 대한 무지는 ‘구원’을 너무나 쉽고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고, 결국 ‘복음’에 대한 무지와 무감각으로 이어져 오늘날 교회의 타락으로 이어졌다.

기독교를 ‘온갖 의무의 목록’ 쯤으로 여기는 오해는 더욱 심각하다. 지옥에 갈까 두려워 하나님과 교회를 떠나지 못하는 신앙생활엔 자유함도 기쁨도 없기 때문. 그리고 예배나 헌금, 헌신과 봉사 등으로 ‘하나님을 감동시켜야 한다’는 부담만 늘어난다. 이런 신앙생활은 정상적이지도 않고, 하나님의 뜻과도 무관하다. 저자는 이렇게 오해되고 축소된 하나님이야말로 ‘만들어진 신’이자 ‘우상’이라고 질타한다.

그렇다면 오해를 벗어나,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를 찾을 때이다. 수많은 성도들이 계속되는 고통과 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선하심’ 사이에서 신앙의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데, 이 둘은 어느 지점에서 만날 수 있는가? 저자는 해결을 위해 우리의 출발점인 ‘천지창조’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세 전, 성부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서로를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계셨다(요 17:1·5, 잠 8:30-31). 그 완벽한 교제를 통해 하나님은 충만한 기쁨과 행복을 누리고 계셨다는 것.

세상을 창조하신 이유도 여기서 찾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환경과 조건을 완벽히 조성하신 후, 6일째 ‘창조의 꽃’인 인간을 마지막에 만들어 동산에 거하게 하셨다. ‘에덴’은 그 이름부터 ‘기쁨·환희’를 뜻했다. 그리고 최초의 인간 아담이 외로움을 미처 느끼기도 전에 배필을 허락하셨다. 결국 하나님은 인간에게 ‘기쁨’을 주시고, 인간이 기쁨으로 드리는 찬송과 예배를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

천지창조의 목적은 결국 교리와 신조에 나온대로 ‘하나님의 영광’이지만, 이 영광은 당신만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쁨을 통해 현실화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최고 사명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기쁨으로 선을 베푸시는 것이 된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면’ 된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의 선하심이고, 이처럼 선하신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닫고 사는 일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처사가 된다.

그렇게 은혜와 사랑을 입은 사람들이라면, 결코 이 ‘선하신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죄’에 대한 정의가 나온다. 즉 하나님의 각종 명령을 범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언제나 자신에게 최상의 것을 공급해 주신다는 것을 의심하는 것이다. 결국 죄는 ‘불신’이고 ‘영적 독립선언’이다. ‘나에게 언제나 최상의 것만을 공급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최고로 모독하는 적극적 행위가 된다.

그래도 우리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다.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믿어도 ‘선하심’은 믿지 못하는 것 아닌가? 저자는 여기서 ‘십자가’를 꺼낸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분이시나,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화목제물로 희생하심으로써 모든 죄를 심판하셨다는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사랑하심이 성취됐다. 하나님은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택한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심을 십자가를 통해 확증하셨다.

십자가에서 죄를 씻음 받았어도, 우리의 ‘고난’은 여전히 실재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런 고난조차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영광”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하나님을 믿으면 더 이상 고난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도리어 기독교 신앙의 역설은 ‘고난이 주는 복’이라고 말한다. 욥과 아브라함, 요셉과 다윗, 예수님과 바울처럼 성경 인물들도 많은 고난을 당했다. 그러나 무의미하지 않았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기쁨은 대부분 고난을 통한 복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을 행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받는 고난을 결코 낭비하시지 않는다. 당신이 만일 그리스도인으로서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고난과 관련해 생각해야 할 문제일지 모른다. 이런 깨달음은 대개 모든 고난이 지난 후 알게 된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믿음을 믿어주시는 영광스러운 일이자 특권이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일어나는 모든 고난은 영광스럽다.

이후 저자는 믿음이란 무엇인지,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장차 올 하나님 나라를 향한 우리의 소명은 무엇인지 등을 풀어놓았다. 선교단체와 해외 선교지 사역 후 미국에서 한인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저자는 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도움을 받았음을 숨기지 않는다. 책에서 소개하는 참고도서 목록도 찾아 읽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