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칼럼]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입력 : 2017.05.10 17:20

권혁승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오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 39:7)

본문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갖추어야 할 참 신앙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말씀이다. 신앙의 바른 자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고백하는 것이다. 그것은 거듭남(중생)으로 얻어지는 결과인데, 그런 거듭남(중생)은 회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회개는 우리의 지식이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의 감동과 깨우침으로 가능하다(슥 4:6). 그래서 거듭남(중생)의 어원적 의미는 '위로부터 태어남'이다(요 3:3). 회개와 그 결과로 얻어지는 중생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인 것도 그 때문이다. 회개에는 그동안 잘못한 구체적인 죄를 고백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깨우치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크고 근본적인 죄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이다. 아담이 지은 죄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인 우리들이 고백할 바른 자세이다. 유한한 인간인 자신에게 소망을 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시편 저자는 같은 시편에서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시 39:4)라고 기도한다. 그는 자신의 날이 마치 '한 뼘 길이'같다고 하면서(시 39:5) 사람이 그림자 같이 다니며 헛된 일로 소란하다고 지적한다(시 39:6). 그만큼 인간은 유한하고 하는 일이 헛된 것일 뿐이다. 더구나 그는 내적으로는 자신의 죄 문제로 고민하면서 외부의 대적들에게 억압을 당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모든 죄에서 건져주실 것과 우매한 자에게 욕을 당하지 않게 지켜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시 39:8). 하나님만이 인간이 지닌 유한성과 무의미성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며 희망이다.

소망을 하나님께 둔다는 것은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둔다는 것이며, 그것은 그분을 앙망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과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것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앙망'과 '희망' 모두 같은 히브리어 동사 '카바'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희망'을 뜻하는 히브리어 '티크바'는 '선'(line)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카브'와 어원이 같다. '선'은 점과 점이 직선으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희망은 유한한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앙망함으로 그분과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것에서 생겨난다. 하나님을 앙망하며 그분에게 전적으로 집중하는 것을 가리켜 '하나님 경외'라고 한다.

권혁승 교수(서울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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