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5일 ‘서울국제사랑영화제(이하 SIAFF)’의 마지막 행사로 포럼과 폐막식이 열렸다.

SIAFF는 이번 제14회 영화제를 통해 30여 편의 영화들을 소개했고, 이날 폐막식에선 영화 <오두막>이 상영됐다. <오두막>은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을 휩쓸었고, 미국 박스오피스 5천만 불 이상의 흥행을 달성한 기독교 영화다. 동명의 원작 소설 <오두막>은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부문 1위를 기록했다.

오두막
▲맨 왼쪽부터 예수님, 주인공 맥, 하나님, 성령 사라유. ⓒ영화 <오두막> 스틸컷
하지만 영화 속에서 하나님을 ‘파파’라는 이름의 여성으로 묘사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물론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영화 속 하나님이 ‘파파’라는 이름의 여성으로 등장한 이유는 주인공이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상처 때문이다. 영화 중간에 ‘파파’는 남성으로도 등장하며, 인간의 성별에 갇히지 않는다.

뉴욕 맨해튼 리디머장로교회의 팀 켈러 목사도 <오두막>에 대해 비판적인 리뷰를 남겼다. 영화가 하나님께서 왜 고통을 허용하시는지에 대한 이해가 있는 반면, 율법, 거룩의 하나님, 진노의 하나님의 균형을 유지하지 못해 교리적으로 문제가 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팀 켈러는 성경을 읽을 때 만나게 될 훨씬 다차원적이고 복잡한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에 대해 염려했다.

이날 진행된 ‘종교개혁 500주년과 한국 기독교 영화’ 포럼에서는 위와 같은 담론과, 기독교 영화와 한국사회의 과거 및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하기 위한 토론이 진행됐다.

토론에는 백광훈 문화선교연구원장과 장신대 성석환 교수, 권용국 영화감독, 빅퍼즐문화연구소 영화클럽 강도영 대표가 참여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SIAFF)
▲‘서울국제사랑영화제(SIAFF)’가 25일 필름포럼에서 ‘종교개혁 500주년과 한국 기독교’ 포럼을 진행했다.

먼저 강도영 대표가 “저는 학자가 아니지만, 영화계에 종사하고 있다. 조금 더 일반인의 관점에서 허심탄회하게 질문을 하고, 이야기를 발전시켜 나가보자는 취지에 저를 불렀다고 생각한다”며 질문을 시작했다. 아래는 토론의 내용.

강도영 대표: 첫 번째 발제에서 한국 기독교 영화가 다큐멘터리 중심으로 제작됐고, 긍정적인 노력을 시도했다고 제시해주셨는데, 긍정적이란 면이 공감이 잘 안 된다. 또 다른 계열의 영화 <쿼바디스>는 영화 <순종>, <소명>, <용서>와 다르다고 생각한다.

성석환 교수: 같은 입장이다. 기독교 영화계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지만, 공감도 부족했고 소통도 안됐고 미학적 수준도 떨어졌다는 부정적 입장이 더 크다. 또 <쿼바디스>가 저항적 내용을 담았지만, ‘영화는 영화답게’ 미학수준도 뒷받침 돼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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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쿼바디스>, <순종>, <소명>, <용서> 포스터
강도영 대표: 현장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한국 영화계는 기독교 시장이 작고, 돈이 되는 보수적 주제의 다큐멘터리가 있다. 하지만 종교개혁의 저항적 정신을 담으면 망할 뿐 아니라, 교회에서 교인들과 함께 상영하지 말라는 압박을 가한다. 대화의 국면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성석환 교수: 우리 안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외부의 입장에서 이런 얘기를 해주시는 것이 감사하다. 영화가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면, 신학적 상상력이란 것은 언제나 당대 가장 고통스럽고 갈등이 있고 모순적인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초월할 때 의미가 있다. 그런데 오히려 체제 순응적 발상을 하고 있다. 가장 아픈 현실을 얘기하지 않고 다른 얘기를 하는 것이다. 이건 기독교적으로 있을 수 없다. 침묵하고 지나간다면, 그런 상태에서 기독교적 영화읽기와 공론의 장을 형성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임을 지속적으로 얘기해왔다.

강도영 대표: 부산영화제 배급사에서 일할 당시, <다이빙벨>을 틀었단 이유로 핍박을 받았다. 이런 리스크를 감당할 정도로 영화적으로 포기하지 말아야할 것은 포기하지 않는다. 신학적 논란이 있다할지라도 기독교적 해석과 담론을 만들기 위해 아방가르드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가?

성석환 교수: 이 영화제가 명실상부한 공론의 장이 되기 위해선 기독교적 영화읽기가 한국 사회에 비전을 제시하고,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들에 상상력을 자극 시켜야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영화매체를 담당하는 사람은 모두 공감하는 이야기다.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영화제에 참여한 감독들이 있었는데, 영화제에 남지 못했다. 영화제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상상력과 새 시각을 논의하는 의미 있는 영화제로 성장하길 바란다.

백광훈 문화선교연구원장: 다양한 시선들이 존재하고 <쿼바디스> 같은 영화들도 중요한 의미를 준다고 생각한다. 여러 논점들이 있는 것 같다. 때로는 기독교, 비기독교, 반기독교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너무 강화한다. 해석을 확장하고 상상력을 발휘할 기본기가 부족하단 생각이다. 기독교적 문법만 가지고 바라보면 그 영화를 적극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없다. 저희도 해결할 부분이 많다는 걸 느낀다.

강도영 대표: 두 번째 발제에서 ‘주제’를 가지고 기독교영화와 기독교적 영화를 구분할 때에 메인이든 서브든, 이 구분도 문자주의적 해석의 결과가 아닌가. 스토리텔링에서 이미지텔링으로 가는 것보다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접근하듯, 영화를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는 게 더 문제라는 생각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중 멜 깁슨 감독이 만든 <핵소고지>라는 영화가 기독교적 내용을 많이 포함함에도 주인공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로 나와 한국교회에선 홍보하지 않았다. 인상 깊었던 것이 영화 속 주인공도 하나님을 아주 철저히 문자주의적으로 믿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전쟁에서 ‘도대체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하고 질문을 던지는 절묘한 타이밍에 다친 전우가 주인공의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주인공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또 영화 <사일런스>의 마틴 스콜세지감독이 인터뷰에서 던진 내용이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에게 순교를 원하실까? 내 생각엔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교를, 피 흘림을 원하지 않으실 것 같다”였다. 답이 어떠하였던지 간에 충분히 해석을 할 수 있지만, 한국교회는 문자주의적 교육으로 왔기에 그 이상의 상상력을 발휘할 구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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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일런스>, <오두막>, <핵소고지> 포스터.
권용국 감독: 문자주의라고 하기보다 로고스주의에서 언급했던 것이다. 언어의 문제에서 이미지텔링이라고 해서 이미지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이미지로도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다. 아직까지 영화현장에서는 국문학과를 나오면 시나리오를 잘 쓴다는 생각이 있다. 영화를 만들 땐 글로 쓸 뿐 아니라 콘티도 짜야한단 생각이다.

박광훈 문화선교연구원장: 결국 종교개혁과 한국기독교영화에 대한 과제를 얘기하는데, 나눌 수 있는 장이 우리에게 펼쳐졌으면 좋겠다. 픽션이라고 하는 상상력을 발휘해 기독교적 가치를 함께 나눌 기독교적 근육이 부족한지 고민하게 된다. 평론가들이 기독교적 가치가 조금만 이상하면 이단 시비를 한다. 오늘 폐막작인 <오두막>도 저는 감동적으로 봤는데, 이 영화도 논쟁이 됐다. 하나님이 여자로 나온다는 것 때문이다. 여자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남성으로도 나온다. 영화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심적으로 힘들게 하는 문제다. 격려는 커녕 논쟁들이 영화인들을 힘들게 한다. 종교개혁이란 과제에 비춰볼 때 우리의 과제가 너무 많다.

강도영 대표: 제 지인들 중에는 저에게 ‘술을 안 마시면 뭐하니’라고 질문을 한다. 그 외에 다른 콘텐츠가 없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 교회 콘텐츠가 부족해서 영화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콘텐츠의 부제를 어떻게 극복되어질 것인가 생각을 했다. 문자주의와 영상주의에 반대한단 입장은 아니었다. 철학자 중에 알랭 바디우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사도 바울>이란 책을 썼다. 그는 ‘진리를 위해 어떤 사건을 경험해야하고, 사건을 통해 새 주체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지속되기 위해선 충실성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기독교에서 소재를 가지고 왔다. 이것을 기독교적 언어로 생각하면, 어떤 사건은 ‘예수님과의 만남’, 만들어지게 된 새 주체는 ‘그리스도인’, 지속되는 충실성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볼 수도 있다. 제작자가 기독교인이 아닌데 기독교적 용어로 자기의 개념을 설명하듯, 역으로 기독교적이지 않은 소재로도 우리의 개념을 설명할 수 있어야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 교회는 우리 언어 안에만 갇혀있고, 지키려고만 한다는 생각이다. 겉으로 기독교적 콘텐츠가 아니어도 기독교적으로 해석해낼 수 있고, 우리의 것을 설명하는 것도 기독교 밖의 언어로 자유롭게 설명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권용국 감독: 좋은 말씀 감사드린다. 저는 신학교를 갈 때 ‘소비’면에서 숙제가 있었다. 무신론자들을 위한 기독교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신학을 공부하게 됐는데, 일반적인 언어로 기독교의 세계관과,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지. 그리고 교회를 안다니는 사람들이 이러한 영화를 보고 어떻게 간접적으로 기독교를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다. 많은 숙제들이 있는데, 말씀해주신 것처럼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또 교육해 많은 사람들을 길러내겠다.

성석환 교수: 문화를 통해 복음을 증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화라는 매체가 매력적이고, 현대 사회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하나님의 세계,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담아 보여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 우리는 언제나 고통스럽고 힘겨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기독교적 영화 읽기와 콘텐츠들로 기독교적 가치를 담아,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동과 위로를 받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이길 힘을 받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인간의 삶과 공적 영역으로 하나님의 일이 확장되길 바란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매우 반사회적인 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는데, 대중문화를 통해 기독교가 가진 아주 독특한 매력, 세상과 다른 새로운 상상력들이 표현되고 증언되길 바라고, 많은 사람이 참여하길 원한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는가. 복음이 우릴 변화시켰단 증언이 있는데, 그 증언을 전달하는데 임펙트 있는 영화란 매체에 주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백광훈 문화선교연구원장: 아름다움을 말씀해주셨는데,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ii)의 명언 중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구원하라’는 것이 있다. 아름다움에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아픔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 보지 못한 세상, 모든 것은 사실 복음의 정신이다. 복음의 정신은 결국 종교개혁을 이끌어냈고, 오늘날 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정신이라 생각한다. ‘종교개혁 500주년과 한국 기독교 영화’란 주제로 포럼을 진행했는데, 대안은 여전히 진행의 과정에 있다. 한 번의 토론을 통해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이 자리 자체만으로 중요한 시간이었다. 감사드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