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와 2세들, 광복 후 미군정에서 어떤 역할 했나?

이대웅 기자 입력 : 2017.03.29 18:55

제21회 서울신대 영익기념강좌 ‘해방공간과 기독교’

21회 영익기념강좌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 박명수 교수) 주최 제21회 영익기념강좌가 '해방공간과 기독교'라는 주제로 29일 부천 서울신학대학교(총장 노세영 교수) 우석기념관에서 개최됐다.

이날 기념강좌에서는 박창훈 교수(부소장) 사회로 이은선 교수(안양대)가 '대한독립촉성국민회와 기독교 지도자들', 김동선 교수(연구교수)가 '미군정기 미국 선교사 2세와 한국 정치세력의 형성: 윌리엄스와 윔스를 중심으로'를 각각 발표했으며, 오영섭 교수(연세대 이승만연구원)와 김정회 교수(서울장신대)가 논찬했다.

이은선 교수는 건국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우파 조직이었던 대한독립촉성국민회(독촉국민회)에 속 기독교인들의 참여상을 분석했다.

독촉국민회는 이승만이 귀국 후 조직했던 독립촉성중앙위원회(독촉중협) 산하 선전총본부와 김구가 반탁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조직된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반탁총동위)가 통합돼 1946년 2월 8일 조직된 것으로, 1948년 5월 10일 총선거 실시 때까지 6번의 중앙조직 개편 과정을 겪으면서 1947년 후반부터는 이승만 지지 세력을 중심으로 단독선거 추진기구 역할을 했다.

이은선 교수는 "이승만과 김구가 기독교인이었고 기독교인들 역시 해방 정국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독촉국민회에 많이 참여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독촉국민회 1차 조직에 참여한 기독교인 중 고문은 5명 중 함태영과 오하영, 조만식 등 3명이었고, 부장은 12명 중 재정부장 오건영 목사, 산업부장 유재기 목사, 후생부장 최성장, 부녀부장 황기성 YWCA 초대 회장 등 4명이 기독교인이었다.

오하영은 3.1운동에서 33인 대표로 참여하는 등 기독교민족주의 사상으로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었다. 함태영도 3.1운동에 참여했고,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후 목회를 했으며 일제 말에는 사회복음주의를 표방하며 적극신앙단에 가담했다. 조만식은 북한에 있었기에 직접 참여할 수는 없었다. 그는 "초기에 참여한 기독교인들은 일제 말기 적극신앙단에 가담한 인물들과 해방 후 신한민족당에 가담한 인사들이 주류였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러한 독촉국민회 중앙조직에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이 참여했으나, 이들이 동일노선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며 "초기에는 오하영이 이승만과 김구 사이의 중간 역할을 하면서 부위원장을 했고, 김구의 노선을 따라 참여한 인물들도 있었다"며 "중앙에서 이승만을 적극 지지한 인물로는 배은희·이관운 목사, 이승만의 직계였던 송필만·임영신, 북한에서 월남한 이종영과 국민운동 교육기관 책임자로 일했던 최태용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승만을 끝까지 지지했던 이관운·배은희·남천우·김창근을 보면 대부분 3.1운동 참여 경력이 있었고, 해방 정국에서 인민위원회 활동에 반대하고 독촉국민회의 국민운동을 통한 건국운동에 공감해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관운은 1920-1930년대 청년회 조직을 통해 애국계몽에 적극 참여했고, 배은희는 전주 신간회 대표였으며 신사참배를 반대했던 목회자였다. 남천우는 1930년대 십자가당을 조직해 독립운동을 하다 1940년대에는 일제와 협력하며 목회활동을 했고, 김창근은 재림사상을 주장하다 투옥된 경력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이은선 교수는 "기독교의 이러한 독촉국민회 가담은 반탁운동이 전개되고 우익-좌익의 대항전선이 명확해지면서, 원래 공산주의에 반대해 반공사상으로 무장했던 기독교인들과 월남 기독교인들이 적극 우익 진영에 참가하면서 가능해졌다"며 "목사들과 고등교육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당시 사회에서 지역사회 유지의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독촉의 지도부에서 활동하며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의 초석 역할을 했다"고 요약했다.

21회 영익기념강좌
▲이은선 교수(가운데)가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김동선 교수는 미군정기 국내 정치세력을 미군정에 소개하고 추천한 선교사 2세들의 활동에 주목하면서, 해방 직후 국내 정치세력 형성 과정과 미군정과의 관계를 탐구했다.

김 교수는 "해방 후 한반도를 점령하고 군정을 실시하게 된 미국은 한반도에 대해 지식을 가진 자국 인사들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으므로, 선교사 혹은 선교사 자제들을 점령정치의 중요한 협력자로 중용했다"며 "한국어와 한국 사정에 밝은 선교사 및 그의 자녀들은 미 군정이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인력들이었고, 실제 그들은 미군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한국 사회의 형성과 정부 수립에 깊이 관여했다"고 평가했다.

미군정 내에서 점령통치에 조언을 하고 도움을 준 선교사와 자녀들 중 대표적 인물로는 미 감리회 선교사 윌리엄스(Frank Williams, 禹利岩)와 그의 아들 조지 윌리엄스, 송도고보 교장을 지낸 클라렌스 윔스(Clarence N. Weems)의 아들인 클라렌스 윔스 주니어와 벤자민 윔스(Benjamin Burch Weems), H. H. 언더우드와 원일한(元一漢)으로 불린 H. G.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가 있었다.

이들 중 언더우드를 제외하고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한 인물은 조지 윌리엄스와 클라렌스 윔스로, 이들은 美 제24군단에 배속돼 한국에서 직접 활동했다. 그는 "미군정이 이들을 중용했던 것은, 이들이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한국 문화와 한국어에 능숙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들 선교사 2세들은 미군정에서 활동하면서 미군정 하 정치세력 형성에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했다"며 "이들은 국내 정치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이들이 남긴 정치세력은 이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하에서 상당한 족적을 남겼다"고 설명했다.

김동선 교수는 "이들은 한국과 접촉이 없었던 미군정 관료나 미 국무성 한국담당 인사들과 다른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라며 "이들은 관료였기 때문에 미국의 국익을 가장 우선시했지만, '제2의 고향'인 조선의 독립을 염원했고 독립운동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한 목소리를 낸 것은 아니었다. 조지 윌리엄스는 정치적으로 매우 보수적이었고, 해방 후 남한 사회를 급진주의자 대 민주주의자의 대결로 묘사했다. 윌리엄스는 반공에 대한 이념이 뚜렷했고,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정부 수립에 우호적이었다. 그에 비해 클라렌스 윔스는 임시정부에 우호적이었고 광복군을 훈련시켰던 경험도 있었으며, 김규식과 여운형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좌우 충돌에 대해서도 큰 우려를 하지 않았기에 중간파를 지원하고 그들을 후원했다.

김 교수는 "윌리엄스와 윔스의 행보는 미군정 내 선교사 2세들의 배경이나 정치세력에 대한 인식이 다양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며 "좌익 세력을 제외하고 이들이 지원한 정치 세력은 해방 이전 이들과 인맥상 연결돼 있을 수밖에 없었고, 이때 형성된 정치 세력들은 정부 수립 후에도 남아, 각각 성격이 다른 세력으로 성장했다"고 정리했다.

21회 영익기념강좌
▲김동선 교수(가운데)가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사회 박창훈 교수, 발표 이은선·김 교수, 논찬 오영섭·김정회 교수. ⓒ이대웅 기자
앞선 예배에서는 박명수 교수 사회로 전병일 목사(서울신대 이사장, 정읍성결교회)가 '성경 인물에서 배운다(시 90:14)'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전 목사는 "연구소의 영익기념강좌가 신앙도 있고 신학도 있는 강좌로서, 학교의 자랑이 되고 우리의 신앙도 신학도 확고해져 하나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은혜가 충만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축사한 조갑진 교수(부총장)는 "영익기념강좌는 웨슬리언 성결운동과 복음주의 전통에 많은 기여를 하면서 성결교회의 정체성 확립에 기여하고 있다"며 "뿐만 아니라 학제간 연구를 지향하면서 한국교회사 연구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구소 설립기금 기증자인 故 김영익 집사의 아들 김승환 집사는 유족 인사를 통해 "매년 귀한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린다"며 "연구소와 서울신대가 발전하고 은혜롭게 성장하기를 기도하고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소장 박명수 교수는 "故 김영익 집사님의 뜻을 잘 받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받은 기금을 하나도 손상시키지 않고 오히려 더 발전시키고 있다"며 "저희 연구소는 작년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인문과학 분야로는 유일하게 대학 중점 연구소로 지정받았는데,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와 기독교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한국사와 한국정치사, 한국기독교사 등 3개 분야에 걸쳐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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