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사회’를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입력 : 2017.03.19 20:45

[크리스찬북뉴스 서평] 하나님의 교회만큼은 참된 안식을…

야근하는 당신에게
야근하는 당신에게

이정규 | 좋은씨앗 | 232쪽 | 11,000원

한국 사회는 산업화를 거치면서 세계가 놀랄 정도로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하여 공장은 밤에도 쉬지 않고 돌아갔으며, 근로자들은 혹사당하면서 일에 몰두하였다. 그 결과 극심한 빈곤에서는 벗어났고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을 거치는 동안 사람의 몸만 병든 게 아니라,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이 병들었다. 더 심각한 것은 사회 전체가 비인격적인 구조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영향은 눈부신 과학 발전을 이루고 있는 이 시대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한 인격과 생명의 소중함보다, 기업과 단체의 이익이 여전히 우선시된다. 노동자와 직장인들에게 쉼과 여유를 주어 개인에게 기쁨과 가정에게 행복을 주는 것을 이 사회는 용납하지 않는 것 같다. 무조건 더 많이 일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부를 더 쌓는게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이 사회는 강요된 노동을 가르쳐준다.

그러다 보니 모두가 인간을 사회의 부속물처럼 여기는 주종 구조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다. 밤늦게까지 일을 손에 잡고 더 벌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문제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이런 찌든 마음과 무거운 스트레스를 풀 수 없다는 것이다. 그저 일하고 또 일하고 또 밤늦도록 일하고, 그래야 돈을 주는 기계 구조에 나를 포기해야, 그나마 좀 편해진다. 개인의 삶도 감당하기 이런 힘든 구조 속에서, 결혼과 자녀와 미래는 꿈을 꿀 수도 없다.

책의 저자는 지금 한 교회를 개척해서 섬기고 있는 목회자다. 그가 교회 성도들의 아픔과 고민을 듣고 이 사회 구조에 대한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들을 위로하고자 전했던 메시지가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저자는 목회적인 사랑과 정성을 담아 책을 저술했을 뿐 아니라,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못하고 수단과 방법으로만 여기는 이 사회의 병폐와 모순의 원인을 알리기 위해 펜을 들었다.

그렇다고 저자는 책을 통해 불합리한 구조와 사회악을 완전히 개선하고 뿌리뽑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고, 우리에게도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이런 비인격적인 제도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위로받고 승리할 수 있는지 그 진리를 가르쳐 준다. 그래서 책은 개혁적인 책도 아니며 진취적이고 도전적이지도 않다. 책 제목은 우리에게 이미 만연한 사회의 모순과 역설을 해결해 가도록 동기를 부여할 것 같은데, 오히려 인생의 궁극적인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필자는 저자의 이런 해결이 그 어떤 해결보다 마음에 들었다. 저자는 인간의 가치를 무시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다른 방법론을 말하지 않는다. 시편 등 성경의 여러 말씀들을 인용하며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고,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 되시니 우리 인생을 책임져 주신다는 확신의 메시지를 준다. 이게 무슨 답이 되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이것만이 하나님의 백성이 고백하는 고난 가운데 사는 믿음이 아니겠는가!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우리가 처한 비참함'이라는 제목으로 4개의 파트로 나누어진다. 여기서는 현재 우리나라의 야근 실태와 그것으로 인해 고통받는 개인과 가정의 문제를 다룬다. 그리고 이런 병든 가치관은 기업뿐 아니라 영적 기관인 교회에도 전염되어, 사역자가 제대로 말씀을 준비하지 못하고 건강한 가정을 세워나가지 못하는 문제까지 포함된다.

그렇다고 저자의 관심이 교회로만 향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러한 잘못된 구조가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명령을 순종하지 못한 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그는 이 심각한 야근의 문제를 십계명에 적용해 제6계명인 '살인하지 말라'와 연관시키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에 노동은 소중한 것이라 설명한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인간에게 살인을 금지하셨는데, 인류는 지금까지 착취와 학대와 차별과 무시와 혐오 등의 죽이는 역사로 사회를 파괴해 왔다.

특별히 저자는 여기서 자신의 침체 원인이 자신이 지은 죄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이 당한 죄 때문일 수도 있다는 점을 비춰준다. 우리가 회개해야 하는 죄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피해자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향해 압박하는 세상에서 그 자책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 가볍게 해 준다. 또한 피해자가 되게 만드는 구조 속에서 그 누구도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 없으니, 오직 그리스도만이 여기서 우리를 건질 수 있는 분임을 드러낸다.

2부도 '안식'이라는 제목으로 4개의 파트로 구성된다. 인간에게 주어진 '일'은 본래 창조성과 즐거움으로 구성되었는데, 죄로 인해 고통스러운 것으로 변질되었다. 게다가 인간의 노동이 이용당하고 착취당한다. 이런 무너진 원리 속에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런 죄의 저주를 끊었으니, 신자에게는 하나님이 돌보아 주신다는 믿음을 확신시키고 있다.

또한 생명을 우습게 여기고 여러 형태의 '야근'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오직 하나님으로만 만족과 기쁨을 삼으라고 한다. 시편 기자처럼 아침에 눈 떴을 때 천만 인이 적으로 둘러 진 치고 있는 상황이라도, 낙심하지 말고 저녁에 잠들 때도 하나님의 손길을 구하며 사는 길을 제시한다. 물론 한두 번 기도한다고 단번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때마다 기도함으로 위로부터 주시는 능력을 받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에 참 안식을 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구별된 주일에 우리가 안식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출애굽 역사보다 비교할 수 없는 자유와 해방이 주어진 날인데, 언제부터 구속과 부담이 더 큰 날이 된 것에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그래도 교회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영적으로 굶기신 적이 없었고, 세례와 성찬을 통해서도 살려 왔다고 한다.

또한 저자는 자기주도형 안식은 목마른 물이니 하나님 주도형의 안식으로의 전환을 제시하며,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주일이 우리를 지켜가는 것이라고 한다.

3부는 '그러나 너는!'이라는 제목으로 두 파트로 구성된다. 여기서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으로 안식하게 하라는 사명을 준다. 어떤 위대한 일을 이루어 내라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며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펼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무시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람을 섬기는 그리스도인 외에는 소망이 없기에 저자는 우리에게 사랑하기를 부탁한다.

또한 쉴 줄 모르고 누군가를 쉬게 할 줄도 모르며 쉬는 것을 죄스럽게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에게 안식이 되고 모든 이에게 선을 행할 것을 권면한다. 그리고 저자는 우리가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아갈 때 세상으로부터 고난이 당연히 올 것이라 한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다르게 살라'는 것과 왜 그래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손을 꼭 잡아 이 길을 걸으라고 하는데, 그러면 하늘에서 위로와 상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덮으며 필자는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를 구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아담의 타락 이후 매우 다양한 형태의 '야근'이 지속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보호로 승리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되었고, 내 주위에 쉼을 잃어버리고 지쳐 있는 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의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구하게 되었다. 또한 안식이 안 보이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교회만큼은 참된 안식이 제공되는 피난처가 되게 해 달라고,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께서 주인이 되어달라고 호소하였다.

저자는 우리에게 불의한 세상과 살인적인 구조에서 구조를 개선해 갈 것을 말하기보다 악의 문제를 봐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초청하고, 참된 안식이 그분에게만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필자의 마음 또한 그렇다. 누군가는 그게 무슨 대안이냐고 항변하겠지만,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은 오직 말씀 앞에 엎드릴 때 주어지는 것이고, 강요와 억압이 여전히 있지만 그래도 조금씩 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은 그분이 주시는 힘 때문이다.

너무 바쁜 세상, 말씀 앞에 머무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세상, 10분의 기도조차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구조가 타락했다고 핑계 되며 주저앉아 있을 수 없고 구조를 바꾼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비성경적인지 충분히 보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믿음으로 견뎌가는 것이고, 다양한 '야근'을 만드는 죄와 싸워나가는 것이다. 그 하나님과 함께 할 때 큰 위로와 기쁨이 있을 것이고 죄와 싸워나갈 때 안식이 주어지게 될 것이다.

방영민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열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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