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를 찾다가 예수를 만나다
알라를 찾다가 예수를 만나다

나빌 쿠레쉬 | 박명준 역 | 새물결플러스 | 564쪽 | 19,900원

교리교육의 역사
정두성 | 세움북스 | 295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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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은 불가항력적 은혜로 주어지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바른 신앙과 깊이 있는 영성은 허락하신 은혜의 방편을 잘 활용함으로 이루어집니다.

20년 가까이 교회에서 신앙을 지도하면서 몇 가지 공통적 특성을 발견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성도는 종종 있는데, 의외로 기독교 교리에 무지했습니다. 심지어 구약과 신약을 구분하지 못하는 집사들도 종종 있었고, 아브라함과 모세의 시대를 이해 못해 모세를 아브라함보다 먼저 살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교회생활을 10년 넘게 해 온 분들이었습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는데, 10년이 넘도록 기독교 교리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자원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는 교회 구조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많이 아쉬웠습니다. 오늘은 두 권의 책을 통해 어떻게 바른 신앙에 이르고 깊은 영성의 살아갈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무슬림에서 기독교인이 된 나빌 쿠레쉬의 자전적 소설인 <알라를 찾다가 예수를 만나다>를 보면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는가를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혼돈의 시대 속에서 세례자와 교인들을 교육한 이야기를 다룬 정두성의 <교리교육의 역사>와 비교해 가며, 교회교육의 문제를 접근해 보겠습니다. 나빌 쿠레쉬의 <알라를 찾다가 예수를 만나다>를 기본 토대로 삼고, 교육 자료들을 정두성의 <교리교육의 역사>에서 첨부해 나가는 방식으로 읽겠습니다. 나빌 쿠레쉬를 불신자나 초신자로 생각하고, 교회가 그들을 어떻게 접근하고 신앙교육을 할 것인가 생각해 봅시다.

1. 불신자들 속으로 들어가기

의도하든 하지 않든, 교회를 10여 년쯤 다니고 나면 불신자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둔감해집니다. 특히 신앙에 열심인 교인들은 3년만 지나도 '세상 친구'는 거의 사라지고 맙니다. 그래서 더욱 교회 생활에 얽매이게 되고, 불신자들의 삶과 괴리감은 커져갑니다. 아이를 낳고 수 년만 지나도 어린아이 키우는 방법을 잊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불신자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 구조, 삶의 방식들을 먼저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나빌 쿠레쉬는 책의 서두에서 자신이 생활하는 이슬람 세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필자가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슬림들의 일상 용어였습니다.

이슬람의 일상용어는 매우 종교적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이름을 알기 전부터 '사즈다'라고 하는 기도문을 아랍어로 하루도 빠짐없이 123번씩 외웁니다. 일상 인사도 아랍어를 사용합니다. "수브하나 랍비 알-알라(높으신 나의 주여, 영광을 받으소서)"를 기도 마무리에 외칩니다. 테러할 때 IS 요원들이 자주 사용하는 "알라-후-아크바르(하나님은 위대하시다)"도 중요한 신앙고백의 토대입니다. 이러한 일상 용어들은 무슬림들의 사고와 생활 방식을 지배합니다.

하루에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생활방식과, 다른 종교를 갖게 되면 고립과 죽음까지도 불사해야 하는 이슬람 공동체의 특성도 있습니다. 내부자 고발 형식으로 소개되는 이슬람의 생활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사뭇 다릅니다. 비록 왜곡된 신앙 방식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들도 역시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사회인이며, 삶의 질곡과 아픔을 가지고 있고, 서로 사랑하며 위로하는 공동체입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들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입니다. 나빌 쿠레쉬는 마지막에 이렇게 당부합니다.

"사람들이 무슬림과 친구가 되기 전에 갖춰야 할 것은 이슬람에 대한 전문 지식이 아니라 무슬림 친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기꺼이 알고자 하는 마음이며, 관계가 진전될수록 시간을 들여 이런 문제를 배우고 토론하려는 열정이다(467쪽)."

가장 먼저 할 일은 불신자들의 삶을 열린 마음으로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 그들이 마음을 열도록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마음이 열려야 복음도 들어가고, 쉽게 말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관심은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며, 알고 나면 사랑하는 마음도 더불어 커져갑니다.

2. 삶을 나누며 동행하기

나빌 쿠레쉬는 섬뜩한 말을 합니다. "내가 거리 전도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이 내게 관심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 그들이 나를 자기 목적의 대상인 양 대했기 때문이다(187쪽)." 타인의 삶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귀찮은 듯 떠안기는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전해오는 복음의 메시지는 그들을 변화 시킬 수 없습니다.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은 이유는 자신에게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그리스도인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188쪽)'입니다. 나빌이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선회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데이비드라는 기독교인 친구 때문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솔직한 고민을 하고, 논쟁하고, 묻고 따지는 가운데 결국 기독교가 옳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교리교육의 역사
정두성은 초대교회의 교리교육 역사를 살피면서 '세례 후보자 학교' 과정을 언급합니다. 이곳은 '세례를 준비하는 자들에게 기독교의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59쪽)' 설립된 곳입니다. 기본적인 구약 지식이 없는 이방인들이 교회로 몰려오면서, 그들을 가르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그 과정이 일대일 양육이었으며,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의 주입식과 상당히 다른 양상입니다. 더욱이 교육의 목적은 '교리적 지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변화된 삶(61쪽)'이었습니다. 교사는 예비 세례자들의 지식뿐 아니라 삶을 살폈습니다. 지식과 삶이 함께 동반된 가르침이었습니다.

나빌은 기독교인이 되도록 도왔던 데이비스에 대해 이렇게 평가합니다. "데이비드는 이전 5년 동안 성경을 연구하며 예수를 따르고자 애쓴, 강한 확신을 가진 그리스도인이었던 것이다. 그의 열정은 복음에 있었지만 그는 폭탄을 퍼붓듯이 자신의 신앙을 내게 퍼붓지는 않았다. 복음에 대한 논의는 우리가 친구가 된 후 함께하는 생활의 맥락 속에서 훨씬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193쪽)."

여기서 중요한 구절은 '생활의 맥락'입니다. 일상 속에서 묻고 답하며, 끊임없이 진리를 향해서 조금씩 전진했던 탓에 결국 진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3. 스스로 읽기와 생각하기

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공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일반인들이 직접 성경을 읽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슬람은 암송과 권위적 지식에 의존합니다. 즉 스스로 살피거나 공부하지 않고, 권위 있는 스승들이 알려준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기만 합니다. 나빌은 데이비드와 다른 학자들 간의 대화와 논쟁을 통해 꾸란을 직접 읽고, 모순된 점을 발견해 나갑니다. 또한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알았던 지식들과 배치(背馳)되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꾸란을 이해하기 위해 스승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맥도웰의 책과 함께 성경을 읽어 나가면서, 나는 복음서의 서술이 각각의 문맥 속에서 의미가 통하는 일관되며 논리정연한 이야기임을 깨달았다. 복음서를 이해하기 위해 여타의 주석을 볼 필요가 없었다. 누구든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279쪽)."

교리교육서는 성경의 교리를 요약해 놓은 것입니다. 성경에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교리들을 정리해 모아 놓은 것이지요. 하지만 교리교육은 성경을 직접 읽음으로 명확해집니다. 정두성의 책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조선 후기 기독교 전래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은 스스로 공부했던 학자들이었습니다. 특히 초대 복음전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우리는 '권서인'이라고 부릅니다. 권서인들에 대해 정두성은 이렇게 평가합니다.

"한국교회 초기에 한국과 만주 지역의 한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리를 가르친 특별한 평신도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권서인들이다. ... 첫째, 한국 선교사들이 들어와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이들이 한국에 성경과 교리교육서를 보급했고, 심지어 가르치기까지 했다. 둘째, 선교사의 사역이 한국에서 허용된 후에도 선교사들이 방문하지 못하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신앙서적을 퍼뜨렸다.

셋째, 한국어가 약한 선교사들을 대신해 복음을 쉽게 전달했다. 넷째, 이들의 사역은 한국에서 선교사가 사역을 하기 전에 이미 많은 곳에서 회심자들이 나오고,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며, 선교사의 파송을 요청하는 수준에 이르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후 몇몇 선교사들은 한국에 대해 복음의 씨는 권서들을 통해 뿌려졌고,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한 일은 익은 열매를 다는 추수꾼의 역할뿐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236쪽)."

초기 한국교회가 교리적으로 탄탄했고, 선교사들의 활동이 탄력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권서인들의 영향이 지대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권서인들이 책을 팔며 책을 읽게 했고, 이로 인해 일반인들이 스스로 믿음을 갖게 됐다는 점입니다. 존 로스가 권서인으로 임명했던 김청송의 경우, 만주 28개 지역 한인촌에서 복음서와 신앙 소책자를 수천 권 팔면서 교리를 설명해 주었다고 합니다. 기독교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던 시절, 권서인들의 책 읽기 권유를 통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앙을 갖게 된 것입니다. 스스로 책을 읽고 사유하는 훈련이 한국교회 부흥의 초석이 되었다면 무리일까요? 제가 보기엔 영향력이 적지 않다고 봅니다.

Nabeel Qureshi
▲<알라를 찾다가 예수를 만나다> 저자 나빌 쿠레쉬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4. 가르치기

나빌 쿠레쉬가 예수를 영접하고 나서 처음 했던 일은, 놀랍게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조셉 쥬베르는 "가르친다는 것은 두 번 배우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열을 준비해야 합니다. 가르칠 때 자신이 정말 알고 있는 가를 가늠하게 됩니다. 배우기만 하면 수동적 존재가 되어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가르침은 다시 배우게 하고, 더 많이 배우게 합니다. 자신의 신앙과 깊은 영성을 위해서는 가르치는 사역이 필수입니다.

정두성은 초기 한국교회 부흥의 초석을 권서인들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정당하고 믿습니다. 해외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 과정, 그리고 후에도 그들은 기독교 서적을 팔고 가르쳤습니다. 가르쳐야 오래 갑니다. 가르쳐야 확신에 이릅니다.

나가면서

나빌 쿠레쉬의 <알라를 찾다가 예수를 만나다>를 읽으면서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인격적으로 불신자를 대해야하는 것과 교리교육에 철저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권면하기는 한국교회가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피동적으로 듣기만 하고 잊어버리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실천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삶으로 증명해 내야 합니다.

깊은 영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수동적 자세로 머물러서도 안 됩니다. 종교개혁자들이 피를 흘리며 쟁취했던 것은 바로 '성경'이었습니다. 사제들에게 빼앗긴 성경을 다시 일반 성도들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었습니다. 진정 종교개혁자들의 후손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다시 성경과 기독교 서적을 손에 들고 읽어야 합니다. 진리는 배우고자 하는 자들에게 열리게 돼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정현욱 목사(서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