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영 박사.
▲조덕영 박사.
시간의 주관자 하나님

시간은 타종교가 말하는 것처럼 우연히, 영원하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말씀의 첫 마디를 태초(히브리어의 베레시트)라는 시간의 단어로 시작하셨다. 시간은 당연히 사람보다 먼저 창조되었고 존재하였다. 이것으로 하나님은 시간에 대해 사람이 개입할 여지를 없애셨다. 시간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이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간의 어떤 부분에 대해 사람들의 접근을 늘 막아 놓고 계신다는 것은 성경을 통해 우리들이 쉽게 발견을 할 수 있다.

누가 장남인 것인가?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셈과 함과 야벳의 서열이 불분명하다. 한글 성경에는 셈이 장남인 듯 하나 영어 흠정역(KJV)을 보면 야벳은 셈의 형으로 소개된다. 연대기적으로 보면 야벳이 서열상 우위인 것이 좀 더 성경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우리 성경(개역 한글, 공동 번역, 개역개정판)은 셈을 야벳의 위로(형으로) 소개하고 있다(창 10:21). 하나님께서는 사본(寫本)들의 인간적 실수를 통해 서열을 의도적으로 숨기신 면이 있다고 보여 진다. 인간은 서열을 중시하므로 인간의 족보에는 사실 이런 실수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런 경우가 생겼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 경우를 찾을 수 있다. 우리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장남인 듯 표현되고 있다(창 11:26, 31). 사본과 성경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는 난관이 있다. 물론 성경의 원본이 존재한다면 그 서열은 명확히 드러날 것이다. 아브라함의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숨기신 것으로 여겨진다. 서열을 중시하는 인간 사회에서 하나님은 육적 서열이나 육적 장남보다 영적 장남을 찾고 계신 듯하다. 이렇듯 하나님은 인간이 이 부분에 접근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막고 계신 것을 알 수 있다.

창조의 시기에 대해서도 침묵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모든 삶은 시간과 늘 공유되어 있다. 탄생과 죽음, 삶의 역정이 그러하고 진보와 서열의 구분이 모두 시간으로부터 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을 궁금해 한다. 창조의 연대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창조의 시기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성경이나 과학을 통해 명확하게 알려 주실 듯도 한데 전혀 그렇지를 아니하다. 성경과 과학은 이 부분에 대해 모두 침묵한다. 하나님은 인간보다 물질보다 공간보다 시간을 먼저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세상을 그렇게 설정하여 부질없이 인간들이 벌이는 논쟁의 결말을 막아 놓으셨다.

성경이 좀 더 짧은 연대를 지지하는 듯하기는 하다. 그렇다고 우리들이 언제쯤이라고 확정할만한 근거는 주지 않는다. 창세기 11장과 누가복음 3장에는 셈과 아담까지 이르는 계보가 기록되어 있다. 그중 누가복음에는 창세기의 계보에서 볼 수 없는 아르박삿과 셀라 사이에 가이난이라는 인물을 첨가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를 혼란에 빠뜨린다. 창세기에 보면 분명 아르박삿은 셀라를 삼십오 세에 낳았다고 하였는데 셀라의 위에는 아르박삿이 아니라 가이난이라니!

그렇다면 창세기 11장에 나타난 셈의 후예들의 나이는 다른 의미란 말인가? 혹시 연대기를 말한단 말인가? 가이난 단 한 사람으로 인하여 큰 혼돈이 일어난다. 그래서 보수적인 학자들까지도 가이난은 필사자들의 실수로 첨가되었을 거라고 주장할 정도이다. 사본적 실수이든 원본에 기록된 인물이든 이 한 사람의 첨가로 인해 연대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게 되어버렸다.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숨기신 것이다.

늘 바뀌는 자연과학이 보는 세상과 지구의 시작점

과학은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창조의 연대에 있어 오직 침묵한다. 창조의 시기에 있어 짧은 창조와 긴 창조 어디에도 과학은 문을 열어 놓고 있는 것이다. 위대한 크리스천 과학자 캘빈 당시(19 세기 중반)만 해도 2천만년(1862)에서 4천만년(1897)에 머물던 지구의 나이는 홀름즈(1956) 이후 45억년까지 연장되었고 빅뱅주의자들이 추정하는 빅뱅의 폭발 시기는 늘 바뀌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1억년이 연장되어 138억년이 되었다. 이 연대는 또 얼마나 바뀌어 갈지 아무도 모른다. 늘 바뀌었으니. 최근에는 달의 나이에 대해서도 수정이 가해지고 있다. 이렇게 과학이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은 늘 유동적이고 제한적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6천 년 설을 고집하고, 어떤 이들은 1만-10만 년 설을 고집하고 어떤 이들은 진화론적 연대를 고집하며 그것을 가지고 서로를 불신하기도 하니 참으로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다 부질없는 일이다.
 
예수님 탄생까지 숨기신 시간의 주관자

시간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의도는 예수님의 탄생까지도 숨기셨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당연히 AD(Anno Domini-'주의 해에서'라는 뜻) 1년에 탄생하셨다고 간주하나 그렇지 아니하다. 하나님은 생애를 태양력(BC와 AD=주전 및 주후)으로 표시하였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숨기시려는 의도를 엿보게 한다.

마태에 의하면 예수는 헤롯왕 때에 유대 베들레헴에서(마 2:1) 태어났다. 역사의 명확한 기록은 헤롯이 BC 4년에 사망하였으므로 예수님의 탄생은 분명히 그 이전이 된다. 최소한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태양력은 이미 4년 이상 비껴나 있다는 결론이 된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탄생이 기원 전 4년이라는 확신도 없다. 마태복음 2장에는 동방의 박사들을 인도한 베들레헴으로 향한 별에 대한 기록이 나와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별이 역사적으로 어떤 별이었는지 기록으로 확인이 불가능하다. 금성이었는지, 시리우스별이 움직였는지, 대유성이 떨어졌는지, 갑자기 혜성이 나타났는지, 신성(新星) 혹은 초신성(超新星)이 출현했던 것인지, 행성(목성과 토성)의 접근으로 인한 소동이었는지 불분명하다.

아마 이런 천문학적 현상 중에 하나가 베들레헴의 별이었다면 역사적 기록과 함께 생각할 때 BC 7년으로부터 4년 경 사이가 아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해일 것이다. 물론 12월 25일이 성탄일이라는 확신도 없다. 하나님은 이 귀중한 날까지 숨기셨다. 하나님은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게 해 놓으셨다(벧후 3:8).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수 없도록 해 놓으신 하나님의 섭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벧후 1:20).

2017년에도 변함없이 소행성 충돌 지구멸망설이 떠돌고 있다. 2012년 종말설의 리바이벌이다. 하나님이 주인이신 시간을 가지고 함부로 논하는 자들은 시간의 주인을 모독하는 자들이다. 따라서 아무리 탁월한 그리스도인(목사, 신학자, 신자)이 주장하드라도 시한부 종말론과 시한부종말론자는 분명 이단이다. 그리스도인은 종말의 날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하루하루를 늘 주님이 주신 소중한 시간으로 알고 마음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며 살면 된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글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퍼온 것이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