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풍인 히브리서
▲이 목사는 히브리서 읽기를 위한 추천도서로 “목사님들의 경우 윌리엄 레인의 ‘WBC 주석’이 자세하게 잘 다루고 있고, 최근 나온 토머스 슈라이너의 책도 추천사를 썼는데 도움이 많이 되실 것”이라며 “성도님들에게는 IVP에서 나온 레이먼드 브라운의 <히브리서 강해: 만유 위의 그리스도>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대웅 기자
구약엔 레위기, 신약엔 히브리서가 있다. 성경통독을 막는 '통독의 벽' 말이다. 그러나 최근 <히브리서 강해: 은혜와 책임>을 펴낸 이풍인 목사(개포동교회)는 히브리서에 대해 "한 마디로 매력적인 책"이라고 말한다. "처음엔 다소 어려운 감이 없지 않으나, 관심을 갖고 공부하면 깊은 우물에서 퍼 올린 생수를 마시는 시원함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에 대해 신약성경의 어떤 책보다 더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고, 왜 구약 제사가 아닌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필요한지를 속 시원하게 풀이하는 책"이라고 한다.

책은 우리말 성경과 헬라어 본문을 비교하면서 헬라어 본문을 참고했을 때 의미가 더 명확해지거나 우리말 번역이 헬라어와 다른 경우를 설명하고, 각 장마다 설교나 성경공부를 위해 본문 내용과 관련이 있는 묵상을 위한 도움 글을 수록하고 있다. 마지막에는 '핵심 포인트'를 간단히 제시해 중심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히브리서 전체를 총 34차례에 나눠 설명하고 있으며, 평신도들도 읽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풍인 목사는 총신대 신대원 목회학석사와 美 하버드대 신학석사(MTS), 영국 옥스퍼드대 신학박사(DPhil) 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히브리서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국내외 학회와 저널에 히브리서 관련 글을 꾸준히 기고하고 있다. 유학을 마치고 2008년 개포동교회에 부임한 후 강해설교를 통해 교회를 부흥시키고 있다. 다음은 이 목사와의 인터뷰.

-요즘 <토머스 슈라이너 히브리서 주석(복있는사람)>, <히브리서: 그리스도인을 위한 통독 주석(홍성사)>, <히브리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성서유니온)>, <히브리서의 기독론(CLC)> 등 히브리서 관련 서적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신약학계의 관심이 히브리서 쪽으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불과 5-10년 사이의 변화입니다. 2010년부터 4년간의 영국 유학 시절만 해도, 해외 학회에 나가 보면 히브리서에 관심 있는 학자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저도 성서학회 등에서 발표했지만, 많은 학자들이 모이진 않았습니다. 학자들 연구가 역사적 예수와 바울에서 히브리서 쪽으로 이동하는 중입니다."

-많은 분들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합니다.

"저는 바울이 썼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2장 3절에 보면,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들은 자들이 있고, 그들이 히브리서 저자를 포함한 '우리'에게 전해 줬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바울은 주님께 직접 말씀을 들었다고 편지에서 여러 차례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헬라어 원문으로 봐도 바울서신과 히브리서는 표현이나 문법들이 많이 다릅니다.

성도님들도 바울이 썼느냐 안 썼느냐에 관심이 많습니다. 히브리서 전공자들도 바울은 아니지만 누군지는 모른다고 합니다. 유력한 후보로 여러 사람이 거론되는데요, 수사학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아볼로라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고, 아주 초기에는 최초의 교부인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을 쓴 누가가 거론되기도 합니다.

저자에 대한 명확한 증거는 없는 상황입니다. 히브리서 마지막에 디모데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걸로 보아 바울일 수도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교회사 초기에는 바울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요즘은 그렇진 않습니다."

-히브리서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으신지요.

"원래는 바울서신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습니다. 유학을 가면서 히브리서로 전공을 바꿨는데,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국내에 너무 전공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저를 포함해 3명에 불과합니다. 다음으로 신약과 구약을 연결해 주는 참 좋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공자가 없으니 신학교에도 히브리서 강좌가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회에서도 히브리서 말씀이 체계적으로 잘 설교되는 경우도 드뭅니다. 안 배운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어렵고, 실제로도 쉽지는 않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신-구약을 잘 연결해 주는 책인데 학교나 교회에서 잘 다뤄지지 않으니, 이걸 공부해 봐야겠다는 목회적이고 학문적인 동기로 출발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목회를 위해서였지요."

-많은 성도들이 구약의 레위기처럼 히브리서 읽기를 어려워하는데요.

"그렇습니다. 히브리서가 어려운 것은 구약 중에도 다른 율법의 삶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 제사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말하고 있는 제사를 한 번도 드려본 적이 없기에 굉장히 어렵고, 머리로만 상상해야 하는 한계가 분명 있습니다.

물론 히브리서의 1차 독자들은 유대 기독교인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더 친숙한 언어나 표현, 개념을 사용했을 테고, 우리와는 실제로 거리가 먼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님들이 혼자 쭉 읽어 나가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목사님들도 어려움을 느끼시니까요(웃음).

제가 책을 쓴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히브리서와 함께 읽으며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히브리서에 나오는 주요 개념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쓰면서 고민했던 것 중 하나가, 어떤 형태로 쓸 것인가였습니다. 주석으로 쓰면 꼼꼼히 다룰 순 있지만 개념 잡기가 어렵고, 그렇다고 너무 쉽게 쓰면 주요 내용들을 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중간 정도 수준으로, 성도님들이 오해하고 모르는 개념을 설명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히브리서와 가까워지려면 열심히 노력하고 읽는 일이 필요하겠지만, 신약의 다른 복음서나 바울서신보다는 어렵기 때문에 개념 정리가 잘 돼 있는 책들과 함께 읽는 시도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섬기시는 교회에서 히브리서 강해를 하셨을텐데, 성도님들 반응이 어땠는지요.

"처음에는 좀 어려워 하셨습니다. 부임 후 강해설교를 계속 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히브리서를 하진 않았습니다. 다른 책 강해설교를 4년 정도 하고 히브리서를 했기에, 어려운 내용임에도 잘 따라오셨습니다.

저는 목사님들께도 히브리서 강해설교를 하실 경우 다른 책들을 갖고 여러 번 하신 분들은 동일한 청중에게 해도 좋지만, 바로 히브리서를 연속 강해설교로 하는 건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복음서 쪽을 먼저 추천합니다. 사건 중심의 마가복음도 좋고, 요한복음도 깊게 들어가면 어렵겠지만 그냥 느끼기에는 좋습니다."

이풍인 히브리서
▲자신의 저서를 들고 포즈를 취한 이풍인 목사. ⓒ이대웅 기자
-히브리서에서 우리가 주로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을까요.

"제가 중요하게 보는 구절은 11장 39-40절입니다. 유명한 장인데,우리는 보통 이 '믿음장'을 이야기하면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삭의 믿음을 본받자' 이런 식으로 갑니다. 그런데 39-40절을 보면 우리 생각이 완전히 뒤집힙니다. 대체로 11장을 읽으면서 마지막 39-40절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데, 이 구절이 열쇠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구약의 사람들,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살았던 사람들보다 우리가 믿음으로 더 잘 살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생각을 확 뒤집는 것은, 그들이 우리를 통해 온전해진다는 것입니다. 새 언약 백성,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하나님 백성의 특성을 잘 부각시켜 줍니다.

4장 2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우리말 번역과 원문이 너무 다릅니다. 원문은 마지막에 '그들이 들은 자들과 믿음으로 결부시키지 아니하였다' 라고 합니다. 저는 이 '들은 자들'을 새 언약 백성으로 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새 언약 백성인 우리와 결부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히브리서 저자는 굉장히 흥미롭게 우리와 옛 언약 백성의 연관성을 계속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잘 설명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특권'에 대한 부분을, 히브리서가 말하는 것만큼 오늘날 성도들이나 목회자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7장 15절도 봅시다.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7장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과 멜기세덱의 관계가 무엇입니까? 대제사장으로 있었으니, 조상과 같은 계보입니까? 그렇게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절대 아닙니다. 멜기세덱이 레위 지파에 속하지 않았지만 레위 지파 제사장보다 우월했던 것처럼, 예수님도 유다 지파이지만 레위 지파 제사장보다 우월하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는 족보에 대해 생각보다 여러 차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7장 6절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 14절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8장 4절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이렇게 족보 이야기를 3번이나 하는 것이 위에 나타난 이유 때문입니다. 이런 개념들은 그냥 읽어서는 잘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면, 히브리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히브리서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의 거룩한 대화,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대화 등이 중요한 장치로 등장합니다. 1장에서는 '너는 내 아들이라(5절)',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8절)',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11절)',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13절)' 등 구약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이 아들이신 예수님을 향해 말씀하시는 듯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2장 12절도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를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예수님께서 철저하게 순종하는 방식으로 말씀합니다. 3장에서는 시편 95절을 쭉 인용하면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7절)' 하면서 성령을 통해 계속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4장에 가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12절(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은 굉장히 유명한 구절인데, 문맥 없이 읽어선 안 됩니다. 앞 구절들과 연결해서, 이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95편이 말하는 '순종'을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13절(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에서 '결산'으로 번역된 단어의 헬라어 원문을 보면, 12절의 '말씀'과 같은 단어입니다. 하나님과 자기 백성 사이의 거룩한 대화를 그려본다면, 우리의 '결산'이 아니라 우리의 '말'을 받으실 분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게 보면 성령을 통해 말씀하시고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으로 반응하는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도 굉장히 오해하는 구절 중 하나입니다.

이 외에도 개념 정리가 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은데, 이를 잘 수정해 가면 나오게 되는 결론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정말 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끝나선 안 되고, 하나님의 은혜에 걸맞는 더 큰 책임을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는 '경고'에 대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은혜를 받은 만큼, 책임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책 제목이 '은혜와 책임'입니다. 처음에는 '더 큰 은혜, 더 큰 책임'으로 할까도 생각했습니다(웃음)."

-은혜와 책임을 말씀하셨는데, 요즘 '칭의와 성화'가 특히 신약학계에서 논란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해외에서도 전통적 입장을 수용하는 학자들과 율법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통해 다른 입장을 가진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4-6절)'라는 히브리서 6장 구절이 교회사 속에 정말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칼빈주의 입장을 따르는 분들은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지 않느냐고 하시고, 아르미니우스주의 입장을 따르는 분들은 굉장히 자신들을 지지하는 듯한 구절로 여겼지요. 10장에도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3절)' 하는 표현들이 나옵니다.

저는 이런 표현에 대해, 히브리서의 구성을 어떻게 놓고 보느냐에 따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히브리서는 유대인들 중 기독교인이 됐다가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이들이 막 생겨나는 가운데, 절대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상황을 설정해 놓고 봐야 합니다. 우리가 이단에 빠져 들어가는 사람을 만나 상담할 때도 '절대로 저쪽에 가면 안 된다. 구원이 없다. 탈락된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히브리서는 이런 독특한 상황을 놓고 봐야지, 바울서신 쪽에서 일어나는 칭의와 성화 논쟁으로 봐선 안 될 것입니다.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사람, 배교하려는 사람들에게 '절대로 가면 안 된다. (구원에서) 떨어진다'는 목회적 권면으로 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이신칭의나 성화의 부분을 끌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바울은 서신서에서 그런 부분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삶으로 풀어가는데, 히브리서에서는 조금 더 현장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풍인 히브리서
▲킹덤북스의 <히브리서 강해: 은혜와 책임(400쪽)>.
-'은혜와 책임'에 대한 설명을 좀 더 부탁드립니다.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원의 큰 은혜 부분을 설명할 때, 구약과 신약에서 옛 언약과 새 언약의 가장 큰 차이는 '내면'입니다. 옛 언약은 제사도 그렇지만 외적으로 뭔가를 지키는 것에 치중하는데, 그 한계는 겉으로만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시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완전한 하나님 앞에서의 제사-새 언약-를 통해 변화를 준 곳이 '마음과 생각', 내면임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예레미야 31장에서 새 언약을 주시며 하신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33절)' 라는 말씀과 잘 연결됩니다.

더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의 핵심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심령으로 잘 반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됐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히브리서 말씀이 성도들의 삶과 직결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은 백성으로 살면서도, 여전히 외적 변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신경을 쓰다 보면 내면을 살피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형식주의와 외식적 신앙으로 갈 가능성이 큰데, 히브리서는 끊임없이 그 부분을 지적하면서 '우리 안에 일어난 변화의 자리를 잘 살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순종과 헌신들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함을 너무 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새 언약 백성'으로 사는 것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날마다 자기 마음을 살피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마음의 모습들이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준비하시는 책이 있으신가요.

"두 권을 구상 중입니다. 먼저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역사적 예수의 한계를 지적해 보고 싶습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를 했던 많은 학자들이 그려낸 예수님 상(像)은 성경의 이야기와 너무 동떨어져 있고, 그 예수를 통해서는 구원에 이를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굉장히 쟁쟁한 학자들이 많이 가담해서 이야기하다 보니, 이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위축돼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전제가 무엇이 틀렸는지 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는 믿음의 부분을 다루면서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노력보다 '하나님께서 믿어지게 하시는 은혜가 크다'는 쪽으로 접근하고자 합니다.

다른 책은 '자기주도적 신앙생활'에 대해, 아주 대중적으로 쓰고 싶습니다. CTS TV에서 이 주제로 4차례 강의한 적이 있습니다. 성도님들이 너무 목회자에게 의존하는 부분들을 바라보면서, 자기주도적 신앙생활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성도님들마다 형편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시간 사용부터 재능과 물질 활용 등을 모두 자기주도적으로 해야 합니다. 때로는 교회의 도움을 받겠지만, 자기주도적 신앙생활을 할 때 더 깊어지고 효율적으로 삶을 드릴 수 있습니다.

목회 현장에 있어 보면, 사회에서는 내로라 하시는 분들도 교회에 오시면 너무 수동적으로 바뀌십니다. 밖에서 신앙적인 활동을 많이 하시는 분들은 교회 일을 못하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시기도 합니다. 저는 미안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영역에서 신앙생활을 잘 감당하시면 됩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성도님들이 해당 영역에서 신앙생활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너무 안으로만 힘을 모으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에는 프로그램이 별로 없습니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각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목사를 믿지 마시라'고 많이 이야기합니다(웃음). 제가 좋은 모델은 돼야겠지만, 담임목사만 인정하면 끝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도님들이 의외로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미가 별로 없습니다. 직장 상사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고, 동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보여지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새해를 맞아 히브리서 읽기에 도전하려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히브리서는 읽으면서 '어렵다'는 생각을 하기 쉽지만, 정말 꼼꼼히 잘 읽으면 '내가 받은 구원이 정말 감사한 것이구나'를 어떤 책보다 분명히 이야기해 주는 말씀입니다. 도전해 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