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
▲김명혁 목사. 올해 80세가 된 그는 여전히 국내·외 교회와 단체 등을 두루 다니며 설교하는 등, 평일과 주일을 가리지 않고 바쁜 사역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주님께서 원하시면, 이제 제 마지막 생이 주님께 바쳐지는 제물이 됐으면 한다”며 “그래서 이를 통해 제 죗값을 조금이라고 갚기를 원한다”고 했다. ⓒ김진영 기자
신앙의 자유를 찾아 고향인 북한을 떠나 남한으로 향했던 어린이는 어느덧 자라 고등학생이 되고, 책방에서 '사랑의 원자탄'을 손에 쥔다. 매일 새벽기도가 끝나면 올랐던 남산 어느 숲속의 기도처. 그곳에서 故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를 눈물로 읽어내려 간, 그 젊었던 날의 기억, 그리고 다시 한 번 신앙의 전환기를 맞았던 그 날의 감동을 김명혁 목사(80)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니, 평생 지울 수 없으리라.

우리는 가끔 잊고 사는 지도 모른다. 오늘날 마음껏 신앙을 누리게 된 것이,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들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을 따라, 그렇게 기꺼이 신앙의 피를 흘렸다. 그래서 김명혁 목사는 이들을 놓아버릴 수 없다. 점점 희미해져가는 그들의 그 순수했던 신앙의 흔적을 치열하게 가슴에 아로새기고 있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 인생의 석양 앞에 선 그에게 찬란했던 그 '처음'을 물었다.

세속화와 인간화, 그리고 의인 의식

-다사다난했던 2016년이 가고 2017년이 밝았습니다. 독자들에게 덕담 부탁드립니다.

"새해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위로와 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새해에는 새롭고 희망찬 일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교회나 사회가 너무 비정상으로 치닫고 있는데, 하루빨리 정상을 되찾고 본질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회는 어떤 점에서 비정상인가요?

"우선은 세속화입니다. 세상의 유행에 쉽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무엇을 먼저 바라보아야 합니까. 세상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예수를 닮고자 몸부림쳤던 신앙의 선배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바로 그런 믿음의 선진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12장에서 '예수를 바라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바라본다는 것은 곧 우리보다 먼저 그 분을 따라간 신앙의 선배들을 좇는 것입니다. 故 길선주·이기풍·주기철·손양원·한경직 목사 등 보화와 같은 이들이 한국교회에 얼마나 많았습니까. 전 지금도 그 분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경직 목사를, 박윤선 목사를 모른다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인간화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것은 모두 배설물처럼 여기고, 오직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만 간직하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같습니다. 때론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일지라도 주님만, 그리고 오직 그 분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는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부르짖고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듣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 '사울아 사울아'라고 부르셨던 그 음성이 지금도 제 귓가에 맴도는 듯합니다.

끝으로 의인 의식을 꼽고 싶습니다. 내가 옳다는 것, 내 교회, 내 교단이 제일이라는 의식 말입니다. 우리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런 의식이 깊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처럼 분열된 것도 따지고 보면 다 이런 의인 의식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 의원이 쓸데없다고 하신 것도 그래서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면 실제 예수님께서 부르셨고 제자로 삼으신 이들은 막달라 마리아처럼 거의 대부분 죄인들이었지요. 의인 의식 대신 죄인 의식을 지니는 것이 아주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화해와 평화는 우리가 서로 죄를 고백할 때 가능해집니다."

복음 3道… 약함, 착함, 주변성

-이런 것에서 벗어나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부터 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을 던지자 김명혁 목사는 한 눈에 봐도 오래돼 보이는 자신의 성경을 펼쳐, 그 속에 끼워둔 메모들을 꺼내 읽었다. 평소 고민했던 신앙의 지침과 때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무엇보다 "처절했던 신앙의 선배들이 했던 회개의 고백"을 적어둔 것들이었다. 성경에도 붉은 색 밑줄이 가득했다. 그는 대담 중 자주 기억을 더듬어 구절들을 찾았다. 그 때마다 넘어가던 성경은 장마다 손때가 묻어 있었고, 종이는 나풀거렸다. 그의 치열하고 성실했던 신앙의 단면이었다.-편집자)  

"신앙이 결코 관념적인 것이 되어선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구체적인 신앙의 모습을 가까이 적어두고 늘 되새깁니다. 그런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복음 3도(道)'입니다. 복음이 과연 무엇인지, 그 핵심적인 정신 3가지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약함'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매우 약했던 자였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약할 때 강함'되시는 주님을 발견했습니다. 주님 또한 마찬가지였지요. 스스로 어린 양이 되어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보다 더 약한 모습이 또 있을까요? 그러나 그 분은 부활하셨습니다. 이게 바로 복음의 역설입니다.

둘째는 '착함'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의 유익과 기쁨을 기꺼이 포기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다른 이의 유익과 기쁨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사도들 역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 분을 따랐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할 것입니다.

셋째는 '주변성'입니다. 기독교는 민족주의를 넘어섭니다. 유대 민족이나 이스라엘, 대한민국에 국한된 것으로 기독교를 축소시켜선 안 되는 것입니다. 과거 3.1운동을 주도했던 이승훈·조만식 선생도 스스로 민족주의자이길 거부하셨습니다. 손양원·한경직 목사님도 민족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주변성이란 이렇게 자기 민족과 국가를 넘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정신입니다. 사도행전이 또한 그와 같은 주님의 명령(1장 8절)으로 시작하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보다 넓은 마음으로 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김명혁 목사
▲대담 중 김명혁 목사는 한 눈에 봐도 오래돼 보이는 자신의 성경을 펼쳐, 그 속에 끼워둔 메모들을 자주 꺼내 읽곤 했다. 평소 고민했던 신앙의 지침과 때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무엇보다 “처절했던 신앙의 선배들이 했던 회개의 고백”을 적어둔 것들이었다. 성경에도 붉은 색 밑줄이 가득했다. ⓒ김진영 기자
“오호로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는 탄식이…

-지금 이 나라도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정말 극단의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저는 그 근본 원인이 교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제 구실을 했다면..., 길선주·이기풍·주기철·손양원·한경직 목사님과 같은 분들이 대여섯 명만 있었어도 지금과 같은 혼란은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정치인들도 제 멋대로 할 수 없었을 거예요. 3%의 소금이 바다를 썩지 않게 하듯, 그런 분들로 인해 교회가, 그리고 이 나라가 정화 되었을 겁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교회가 평안을 누렸던 기간은 대개 40년, 길어야 80년 정도였습니다. 그 다음엔 항상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 라는 말처럼 평안 속에서 죄의 싹이 움트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죄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편안할 때 죄를 짓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럴 때마다 채찍을 드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잠에서 깨우셨고, 죄에서 돌이키게 하셨습니다. 그 만큼 우리를, 이 땅의 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꼭 그와 같아 보입니다. 지금이야 말로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더 큰 채찍을 드시기 전에 말입니다. 회개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처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그런데 일부 교회 지도자들 안에 '이미 회개했는데 또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도 바울도, 어거스틴도 칼빈도 하나같이 자신의 죄를 주님 앞에 평생 고백했던 사람들입니다. 하물며 우리는 더 그래야하지 않겠습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오늘날 교회에 이런 탄식이 과연 얼마나 있습니까? 회개가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신앙이 아닙니다."

새벽기도, 주일성수, 그리고 순교신앙

-목사님은 어떤 신앙의 길을 걸어오셨나요?

"초등학생 때까지는 북한에 살았지요. 그 때 교회에 가면 주일학교 교사들이 새벽기도와 주일성수, 그리고 순교신앙 이 세 가지를 항상 가르쳤습니다. 저도 그걸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무엇보다 그 땐 고난과 순교라는 단어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목사였던 제 아버지도 감옥에 가셨으니까요. 그 때 북한의 초등학교에선 주일에도 등교를 시켰습니다. 하지만 전 주일을 지켜야 해서 학교에 갈 수 없었지요. 그래서 월요일마다 벌을 섰고 때로는 정학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지금 제 신앙의 기초가 됐습니다.

북한에선 신앙을 지키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1948년, 홀로 남한으로 왔습니다. 6.25를 겪으면서도 새벽기도는 빠지지 않고 드렸습니다. 주일성수는 두 말할 것도 없었지요. 강변교회를 목회했던 28년 동안, 주일 낮에 집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저녁예배를 다 드릴 때까지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 한국교회가 이 자랑스러웠던 전통들을 잊어가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습니다. 특히 한국교회에서 주일 저녁예배가 사라지고 있는데, 이것은 정말이지 큰 잘못입니다.

한때 남한에서도 주일성수를 어렵게 하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12년 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니, 당시 군사정부가 주일에 합동 군사훈련을 하게 하거나 국가시험을 치르게 하는 등 기독교인들을 힘들게 만드는 정책을 시행하더군요. 그래서 앞장서서 그것을 반대했습니다. 그러다 남산에 끌려갔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나라에 잘못 보이면 어떤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끌려가 다음날 새벽까지 극심한 심문을 받았지만 한 번도 겁을 내거나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일성수를 방해하는 것이야 말로 큰 죄라고 소리쳤지요. 교회를 목회할 때도 주일예배를 빠지는 교인들은 호되게 나무라며 징계까지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율법주의라거나 근본주의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걸 잘 압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좀 지나치다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정도로 철저한 모습이 우리의 신앙에서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목사님을 비롯해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소중히 지켜온 신앙을 어떻게 다음세대로 전할 수 있을까요?

"크고 거창한 어떤 것을 하기보다, 그런 신앙인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을 읽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저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고등학생 시절 故 손양원 목사님의 일대기를 그린 책 '사랑의 원자탄'을 읽고 제 신앙이 바뀌었으니까요. 그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손양원 목사님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신앙의 선배가 되었습니다."

-앞서 세속화를 말씀하셨는데, 다원화 되고 절대적 가치를 부정하는 지금과 같은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신앙을 지키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세상은 언제나 반기독교적이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심하면 심할수록 우리는 세상을 부인하고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순수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서야 하는 것입니다. 때론 시끄러운 음악과 화려한 프로그램 등도 잠시 걷어내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만 집중하는 순수한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때 우리가 종종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진정성에 대한 것입니다. 회개를 예로 들면,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죄를 깨달은 자는 그것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게 됩니다. 매우 자연스럽고, 한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죄에 대한 깨달음 없이 의식적으로 또는 감정적으로 쏟는 눈물과 내뱉는 통곡은 그저 인위적인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회개를 부르짖고 복음을 강조하지만 이런 외식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이것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최근 신학계에선 '인간이 어떻게 의롭게 되는가'의 문제로 논쟁이 뜨겁습니다.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판단은 보류하겠습니다. 다만 '믿기만 하면 회개할 필요도, 선을 행할 의무도 없다'는 생각은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정말 마음 깊이 느끼면 느낄수록 나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순수한 믿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 만큼 주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 없었지만 그는 늘 자신의 죄적 모습을 발견했고, 그래서 그것을 가슴을 치며 회개했던 사도였습니다. '죄인 중의 괴수'라고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은혜 속에서, 그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인 자신을 자각했고, 그러면서 그 은혜가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것인지 그는 뼛속 깊이 느꼈던 것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그의 말은, 바로 그런 고백적 표현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일부러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입니까? 결단코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선행을 더욱 강조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앞서 언급했듯이, 잘못된 의인 의식은 신앙에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차라리 죄인 의식이 더 안전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신학적 논리에만 너무 사로잡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김명혁 목사
▲김명혁 목사는 “지금의 여러 상황이 비록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휼과 용서, 자비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김진영 기자
“남은 生, 주님께 바쳐지는 제물 됐으면…”

-혹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셨나요? 두렵다든지...

"두렵다니요(웃음).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겐 천국 소망이 있는데 어찌 두려울 수 있겠습니까. '천국 소망' 이것이 신앙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요즘 저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내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어떤 모습일까? 기뻐 뛸까, 아니면 흐느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릴까… 아마 후자일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죄송하고 부끄러운데, 그런 저를 받아주신 주님께 너무 감사해서..., 한 평생 주님 위해 산다고 떠들었지만 사실은 교만과 위선으로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주님은 그런 나를 사용하셨을까..., 이런 생각에 흐느껴 울 것 같습니다. 마치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신 여인처럼 말입니다. 그렇기에, 그럴 자격이 없는 자이지만 주님께서 원하시면, 이제 남은 제 마지막 생이 주님께 바쳐지는 제물이 됐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를 통해 제 죗값을 조금이라고 갚기를 원합니다. 신앙의 선배들이 걸었던 그 길을 따라서."

-끝으로,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지금의 여러 상황이 비록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휼과 용서, 자비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어둡지만,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빛 되시는 주님과 십자가를 바라보며 평안과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분의 평안과 기쁨을 가지고 행복하게 2017년 새해를 사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김명혁 목사는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를 졸업(1961)하고 미국 훼이스신학교를 거쳐 웨스트민스터신학교(1966, Th.M.)와 예일대학교신학원(1967, S.T.M), 아퀴나스신학원(1973, Ph.D.)을 졸업했다. 이후 풀러신학교 선교신학원과 튀빙겐대학교, 빌리그레함센터에서도 공부했다. 후암교회 교육목사(1974~78), 총신대 강사·조교수·부교수(1975~80), 영안교회 담임목사(1978~79), 강변교회 담임목사(1980~2008.1)를 역임했고 현재 강변교회 원로 및 선교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이 밖에 합동신학교 부교수·교수·교장(1980~1993)을 지냈으며,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와 겸임교수를 거쳐 지금은 명예교수로도 섬기고 있다. 또 소련선교회 부이사장(1992~2014),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공동부회장(2002~2003)과 공동회장(2004~2005)을 역임했고,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2002~)과 한국세계선교협의회 공동회장(1993~)을 맡고 있다.

1937년생인 그는 지금도 국내·외 교회와 단체 등을 두루 다니며 설교하는 등, 평일과 주일을 가리지 않고 바쁜 사역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