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찬양’ 이평찬 목사, ‘기독교계의 송해’ 되고 싶어

이지희 기자 입력 : 2016.12.23 07:13

[만나고 싶은 사람]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평찬 목사(下)

이평찬 목사
▲하나님을 찬양하는 순간순간 너무 감사하다는 이평찬 목사는 ‘찬양치유집회’로 많은 사람의 영혼을 치유하고 있다. 늘 자신을 ‘평생 찬양 이평찬’이라고 소개하는 그는 이제 ‘기독교계의 송해’가 되어 평생 방송 사역을 하는 또 하나의 꿈을 꾸고 있다. ⓒ이평찬 목사

'찬양사역자' '기독교방송 진행자' '목사' 등 그를 지칭하는 수식어는 많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는 늘 "'평생 찬양' 이평찬입니다"라고 말한다는 그는 세 가지 사역 중에서 '담임목사'가 제일 어렵다고 말했다. 방송은 천직이다. "저는 방송이 너무 좋습니다. 90세가 넘은 송해 선생님처럼 저도 '기독교계의 송해'가 되어 오랫동안 교회를 탐방하고 방송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몸은 너무 피곤해도 방송이 좋으니까 즐겁습니다." 다음은 이평찬 목사와의 일문일답.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녔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또 목회자로서 소명을 받으신 때는 언제였나요.

"군대에서 병장 때 최전방인 경기도 연천 백학에서 근무했습니다. 주일마다 제가 소대에서 찬양하고 메시지도 전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뜨거워졌습니다. 하루는 산기도를 하러 들어가서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제대한 후에는 다 잊어버렸지요. 한참 지나 지금 섬기고 있는 우리교회 좋은교회에 방문했을 때 당시 담임목사이던 이규영 목사님께서 저를 딱 보더니 '서원하셨죠?'라고 물으셨어요. 그래서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 목사님 교회에서 담임목회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께서 미리 계획하신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체험한 것이지요."

이평찬 목사
▲‘가수’인 그는 군대에서 가서도 가발을 쓰고 공연을 다니는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병장 때 예배를 인도하면서 뜨거워졌고, 하나님께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기도를 한다. 오른쪽이 이평찬 목사. ⓒ이평찬 목사

-인생길을 걸어오면서 가장 큰 시련은 언제 겪으셨습니까.

"세상을 포기할 때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위해 계속 기도하셨지만, 사실 노래하는 사람이니 '스타'가 되고 싶었고, 젊은 나이에 밤무대로 수입도 많았으니 정말 성공하고 싶었죠. 사실 제가 사업체를 하나 차렸습니다. 다니던 밤무대를 인수해서 직접 운영한 거예요. 28세 때 사장이 됐는데 완전히 쫄딱 망했습니다. 그동안 벌어놓았던 돈이 다 날아갔습니다. 세상 돈에 더 큰 욕심을 내다가 2년 만에 다 털려서 완전히 바닥까지 갔습니다. 그때 어머니의 기도가, 그리고 아내의 기도가 저를 변화시켰어요. 더 이상 세상 노래, 세상 돈에 욕심내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순탄하게 바로 교계로 넘어온 게 아니라, 그동안 모았던 전 재산을 다 날리고 '이쪽(세상)은 쳐다도 안 보겠다'며 오산리기도원에서 기도하며 찬양사역을 시작한 거예요. 밤마다 노래하던 것을 그만두니 나중엔 직장도 그만두고 온전히 사역자로만 활동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신 것입니다. 그때의 실패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게 된 계기가 되었지요. 그래도 어릴 적 신앙의 심지가 있었던지, 순순히 '내가 갈 길이 이게 아니구나'라고 깨닫고 주님을 찬양하며 세상 욕심을 내려놓았죠."

-주님을 믿기 때문에 경험하신 환란과 핍박은 없었습니까.

"신앙 생활을 꾸준히 해왔는데 특별히 기억은 없습니다. 다만 크리스천으로서 세상 욕심을 냈던 게 제게는 오히려 불이익이었어요.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갔어야 했는데, 술집을 차렸으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분노하실 일이었죠. 쫄딱 망하고 크리스천인 줄 아는 주변 가까운 사람들에게 창피와 조롱도 당했어요. 아예 그들과 같은 편이었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크리스천으로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을 사람들이 속으로 더 조롱했을 것이고.... 제 양심에도 어긋난 행동이었죠. 그리고 그 일이 잘됐으면 제가 지금 이 세상에 있었을까 싶어요"

-21년째 찬양사역자로 사역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신 때는 언제였나요.

"하나님을 찬양하는 순간순간 너무 감사한데, '찬양치유집회'로 여니까 많은 분이 영육간 치유되고 관계성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고 더욱 기쁩니다. 한번은 2006년 목회 안수를 받자마자 필라델피아의 한 한인교회에서 부흥회 인도 요청이 들어왔었습니다. 집회 전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거의 용에 가까운 큰 구렁이가 교회에서 활보하고 다니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고 하며 딱 잡았더니 먼지처럼 사라져버렸어요. 2박 3일간 찬양치유집회를 하는 마지막 날, 저를 안내한 한 집사님이 '사실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대립이 있어 목사님이 쫓겨날 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찬양치유집회를 하면서 모두가 회개하고 다 회복됐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교회가 화목하게 잘 성장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보람이 있었습니다."

이평찬 목사
▲2006년 목사안수를 받던 당시(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이평찬 목사). 이 목사의 좌측은 ‘눈동자’ ‘아득히 먼 곳’을 부른 이승재 목사, 우측은 캄보디아 시소폰대학 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영옥 목사. ⓒ이평찬 목사

-찬양사역을 하기 때문에 컨디션 관리가 중요한데, 평소 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찬양을 잘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성악가한테 개인지도도 받습니다. 특히 요즘은 프로추어시대라고 하잖아요. 프로도 노력 안 하면 금방 아마추어가 되니 시대이니, 끊임없이 나를 성찰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어쨌든 앞에 서서 이끌어가는 리더가 되고 프로페셔널한 사역자가 되려면 남과 같아서는 안 되니, 계속 자기 개발을 하고 훌륭한 분이 있으면 찾아가서 배웁니다. 연세대 성악 최고위과정에서도 배우고 호흡, 발성 등 내가 할 수 있는 한 배우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건강해야 노래도 잘하니까 시간 되면 헬스장에 가서 헬스도 하고, 은사가 있는 분께 가서 기도도 받습니다. 그리고 저는 새벽기도를 무조건 드립니다. 새벽기도를 인도하는 것이 제게 주어진 사명이기도 하지만, 저 또한 기도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또 집회 전에 신경을 쓰는 것은 핸드폰으로 멘트와 찬양을 여러 번 녹음해서 점검하는 것입니다. 항상 부르는 찬양이라도 연습을 안 하면 음이 떨어지고 내 습성대로 불러서 듣는 분들에게도, 저 스스로에게도 은혜가 안 될 수 있어요. 목소리 크기와 톤도 조절하고 연습 횟수와 관계없이 최상의 것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계속 점검합니다. 집회가 오후 3시에 있으면, 아침부터 출근길 차 안에서도 연습하고 점검하는데 그러다 보면 '이렇게 해야겠다'는 감이 옵니다. 여자가 거울을 안 보고 다니면 흉해 보일 수 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자기를 계속 점검하고 개발해서 프로페셔널한 상태로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렇게 하니까 저도 나이가 먹어도 소리가 뒤처지지 않게 나온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평찬 목사
▲매년 300~500명이 영국을 방문, 영국교회의 현실을 보고 한국과 한국교회의 미래를 놓고 기도하는 ‘영국기도선교대’에 참여한 선교대원들과 이평찬 목사. 내년에는 2017년 6월 17일부터 7월 6일까지 진행한다. ⓒ이평찬 목사

-방송사역에서 느끼시는 보람과 어려움이 있나요.

"방송을 통해 교회를 살리고 목사님과 성도들에게 자긍심을 높여주는 것이 너무 기쁘고 보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방송이 무료로만 되지 않고 제작비가 들어가고 후원이 필요해서 교회에 부담을 줄 때 미안하고 말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최소의 경비로 해주려고 애를 쓰는데, 이것은 늘 부딪히는 일상의 짐이죠."

-직접 목회하고, 또 전국의 목회 현장을 탐방하면서 최근 피부로 느끼시는 한국교회 상황은 어떤가요.

"유럽, 미국 등 선진국에서 교회가 침체되는 현상이 우리나라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특별 찬양집회, 교회 부흥회, 방송 촬영을 해도 감동이 적고 다들 바빠서 그런지 사모함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성도들이 참여를 잘 안 하니 교회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제한되고 악순환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예를 들어 주일 오후에 교회탐방 방송을 촬영할 때 옛날에는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남아있는 분위기였는데 요즘은 출연자만 남고.... 교회 예배가 점점 줄어들고, 하나님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맞춰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어 침체된 유럽국가들을 답습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교회를 다녀보면 여전히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열심히 일하는 목회자분들이 있어서 우리나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방송으로 더 많이 알리고 싶고, 하나님께서도 한국교회가 쓰러지지 않고 세계적인 선교국가가 되도록 세워가실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전도가 어려운 한국교회를 위해 '추수전도법'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제가 지난 20년간 수많은 교회를 다니며 전도법의 특징을 보고, 그중에서 발견하여 우리 교회에 도입한 전도법인데 반응이 좋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겉은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데 많이 곤고합니다. 담임목회자부터 나가서 무작위로 "혹시 교회 다니세요"라고 노방전도를 하면, 반은 긍정적인 반응이 옵니다. 그중 또 절반은 영접기도를 받습니다. 이후 계속 그와 가정을 위해 기도해주며 후속관리하여 교회로 나오게 합니다. 그렇게 한 시간 전도하면 10명은 교회에 오거나 영접하는데, 요즘 제가 다른 교회에 초청받아 나가면 직접 목회자, 장로, 성도들과 노방전도를 나가 시범을 보여줍니다. '익은 곡식 거둘 자가 없는 이때에, 누가 가서 거둘까'라는 찬송가 가사처럼 가서 전하니까 전도가 되는 때입니다. 저는 이 추수전도법이 전국 교회로 확산되면 좋겠습니다."

이평찬 목사
▲이평찬 목사는 “‘익은 곡식 거둘 자가 없는 이때에, 누가 가서 거둘까’라는 찬송가 가사처럼 가서 전하니까 전도가 되는 때”라며 추수전도법이 전국 교회로 확산되길 기대했다. ⓒ이지희 기자

-다음세대와 신앙의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하나님의 자녀가 영원한 천국의 백성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명제이니 어른들뿐 아니라, 유아나 초중고등학생 모두 이 단순한 명제 아래 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른들은 세상의 유익과 출세, 명예도 있지만, 정말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천국에 갈 수 있고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명제를 다음세대에 분명하게 전수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세상적 조건이나 유익을 바라고 교회에 오지 않습니다.

교회도 복음이 아닌 다른 아무리 좋은 것을 주려고 한다면, 세상이 주는 것을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세상 프로그램을 자꾸 도입하거나 세상의 것과 견주지 말고, 주일에 예배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는 것이라는 등 아주 근본적인 신앙과 말씀을 가르치고 깨우쳐주어 다음세대가 그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찬양사역자' '기독교방송 진행자' '목사' 등 다방면에서 누구보다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앞으로의 꿈이 무엇입니까."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는 늘 "'평생 찬양' 이평찬입니다!"라고 말한다는 그는 세 가지 사역 중에서 '담임목사'가 제일 어렵다고 말했다. 방송은 천직이다. "저는 방송이 너무 좋습니다. 90세가 넘은 송해 선생님처럼 저도 '기독교계의 송해'가 되어 오랫동안 교회를 탐방하고 방송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몸은 너무 피곤해도 방송이 좋으니까 즐겁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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