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 19:3)

레위기 19장은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 준다. 그런 점은 이 장이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로 시작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에서 명확하게 밝혀져 있다. 레위기 19장은 내용상 여러 면에서 십계명과 닮아 있다. 그러나 레위기 19장은 십계명을 보다 확대시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법조문의 틀을 벗어나서 실제적이고 일상적 삶에 적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십계명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구체적인 지침서인 레위기 19장은 제일 먼저 '부모 경외'를 앞세우고 있다. 물론 레위기 19장은 하나님과 이웃과의 정상적인 관계 유지도 강조하고 있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레 19:18)는 율법의 대강령도 여기에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 경외'를 앞세우고 있는 것은 그것이 거룩한 백성이 되는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과는 달리 레위기 19장은 '부모를 경외하라'고 되어 있다. '공경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킵베드'는 어원적으로 '무겁다'는 뜻에서 파생한 동사로서 가볍게 여기지 않는 '존경'을 의미한다. 그에 비하여 '경외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야레'는 '두려워하다'는 뜻으로서 주로 여호와께 적용되는 동사이다. 그런 '야레'를 부모에게도 적용시켜 사용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로 부모를 공경해야 함을 보여준다. 그만큼 부모의 권위를 전적으로 인정하며 최선을 다하여 부모를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의 우리말 본문에서는 '부모'로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원문은 '어머니와 아버지'로 되어 있다. 부모를 표현할 때 일반적인 어순은 '아버지와 어머니'인데도 레위기가 '어머니'를 '아버지' 앞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가부장적 사회였던 당시에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약자로서 소홀하게 취급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어머니를 앞세우고 있는 오늘의 본문은 그만큼 차별 없이 부모를 공경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의 본문은 부모 경외와 여호와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평행구절로 제시하고 있다. 평행관계를 이루고 있는 이 두 명령은 십계명의 요약이기도 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균형을 강조하는 것이다. 곧 이 두 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첫 걸음을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지를 규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 사랑'의 기본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안식일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지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안식일은 단순히 일을 쉬는 날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을 예배하는 거룩한 시간이다. 그 날을 기억하고 거룩히 지키는 것이 곧 예배의 기본이며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첫 걸음이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시간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것으로서 안식일 이외의 다른 시간도 하나님의 것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를 경외하며 공경하는 것일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본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거룩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라면, 부모를 경외하는 기본자세 역시 부모의 소중한 시간을 기억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 부모를 향한 사랑과 경외가 시간이라는 그릇 속에 담기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자녀가 부모를 진심으로 공경하려면 늘 부모를 향하여 마음을 집중시켜야 한다. 그러나 결혼하여 독립적으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자녀들이 부모를 향하여 그런 자세로 살아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 경외의 기본으로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처럼, 부모의 중요한 시간을 기억하고 정성껏 그 시간을 존중히 여기는 것은 부모 공경의 기본이 될 수 있다. 부모의 중요한 시간으로는 두 분 부모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들 수 있다. 전자가 부모 자신들의 생명이 탄생한 날이라면, 후자는 자녀들이 이 땅에 태어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중요한 날이다. 그 날들은 양적인 시간인 '크로노스' 속에서 담겨있는 질적인 시간인 '카이로스'라고도 할 수 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내리사랑이기 때문에 자녀들이 스스로 알아서 부모를 공경해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낭만적인 환상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것처럼, 가정에서 부모들도 자녀들에게 하나님 경외와 함께 부모 공경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것은 또한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받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 첫 발걸음을 부모의 소중한 시간인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귀하게 여기는 작은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

비록 작은 것이지만 그것은 앞으로 더 큰 큰 것을 담을 수 있는 기본이다. 그런 기본을 근거로 가족공동체의 보다 견고한 결속과 화합, 그리고 행복한 가족 분위기를 점차적으로 더욱 확대시켜 나갈 수 있다. 주말을 이용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출가하여 독립적인 가정을 이루고 있는 가족을 포함하여 전체가 함께 모여 가정예배를 드릴 수 있다면 더 없이 큰 축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목적으로 '날마다 말씀 따라 새롭게'라는 제목의 글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 이 칼럼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해당 블로그에서 퍼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