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종교개혁사
▲특강 종교개혁사, 황희상, 흑곰북스, 400쪽, 25,000원. ⓒ흑곰북스 제공
황희상, <특강 종교개혁사: 종교개혁의 정점, 웨스트민스터 총회 편(안산: 흑곰북스, 10월 31일)>

2016년 10월 31일. 1517년 10월 31일에 독일 신학자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에서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한 날로부터 정확히 499년이 지난 이 날에, 무덤에 잠들어 있던 루터의 눈이 번쩍 뜨이게 할 만한 책 한 권이 (루터는 그 존재를 몰랐을) 한국 땅에서 출간되었다.

4년 전인 2012년 이미 <특강 소요리문답>을 펴내면서,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이 유통되던 교계와 출판계 판도를 뒤흔들었던 저자는 4년 뒤 한층 더 창의적이고, 한편으로는 한층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지난 책에 비해 두드러지게 자기를 낮추고, 독자를 배려하는 겸손한 글쓰기가 눈에 띈다.

특강 종교개혁사
▲ⓒ흑곰북스 제공
이 책이 탄생하는 여러 역사적 순간 중 하나를 함께 했던 내게 그 감회는 남다르다. 지난 2012년 초가을 어간에 저자인 황희상 작가, 아내이자 보스인 정설 흑곰북스 대표, 그리고 이 부부의 본가 및 시댁 부모인 황장규 장로, 박광임 권사 일행이 3박 4일 일정으로 당시 내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다녀갔다. 이 짧은 시간에 나는 가이드로서 이들을 에든버러와 세인트앤드루스에 소재한 스코틀랜드 교회사의 현장 몇 군데로 안내했다.

귀국 후, 그리고 이제 와서 책을 읽는 중에 알게 된 것은, 이들에게, 특히 저자에게 나는 그리 훌륭한 가이드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관심사가 서로 조금 달랐기에, 저자가 보고 알고자 했던 것과 내가 가이드로서 알려주고 전해주고 싶었던 것에 편차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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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그 짧은 기간의 답사 기간에, 저자는 가이드가 직접 안내한 곳은 물론, 소개하지도 않았던 현장과 건물, 문헌, 유적들의 의미를 재빠르게 잡아내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며, 이제 이들을 모두 이 경이로운 한 권의 책에 녹여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4년간 저자는 영국 이외에도, 다른 유럽대륙 국가, 즉 스위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을 누비며 역사의 현장을 재발견하고, 유산을 재발굴하고, 온·오프라인의 문헌들을 뒤졌다. 또한 그토록 힘들게 찾아낸 이 내용들을 책으로 정리해 내기 전에 수많은 강연을 통해 16-17세기 종교개혁, 특히 장로교회 신앙유산의 탄생과 발전 과정을 자기 방식으로 재창조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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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 점에서 오직 한 길을 걸어간 순례자의 수고의 열매이자, 수년간 한 분야에 모든 수고를 바친 장인이 만들어낸 최고의 예술작품이다. 내가 이 책의 장점으로 꼽으려 하는 내용은 이미 이 책에 실린 탁월한 두 편의 추천사, 저자 스스로 밝힌 독서 가이드, 출간 후 단시간 안에 여러 온라인 서점과 SNS 등에 실린 서평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밝힌 내용과 사실상 대동소이하다. 그만큼 특징과 장점이 선명한 책이다.

무엇보다, 400-500년 전 서유럽으로 독자인 여행자를 이끄는 이 가이드는 친절하다. 이미 이 시대에 대한 선지식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확인하고 확신하도록 이끌고, 주제와 내용이 생경한 독자에게는 반복과 점검이라는 장치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암기하고 기억하게 만든다.

특강 종교개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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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는 노련하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혀로 맛보고, 손으로 만지고, 코로 냄새를 맡고, 뇌로 상상하는 등, 여섯 가지 감각을 독자가 다 동원하도록 이끈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육감을 다 사용한 독자는 읽는 것을 이미 깨달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놀란다. 에티오피아 내시 간다게에게 "읽는 것을 깨닫느냐?"하고 물었던 빌립의 물음에 간다게는 부정적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지만, <특강 종교개혁사>를 읽은 독자는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다. 간다게와는 달리, "지도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사도행전 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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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는 치밀하다. 답사에 참여한 여행자가 어디서 지루해할지, 어디서 고개를 갸우뚱할지, 어디서 한숨을 내쉴지 모두 알고 있다. 그런 곳에는 어김없이 쉬어가기 페이지가 있다. 사진으로, 그림으로, 그래프로, 퀴즈로, 때로는 호소력 있는 설교로 여행자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부릅뜨고, 공감하게 만든다.

가이드는 집요하다. 그의 목표는 분명하다. 작가는 웨스트민스터 총회와 그 총회가 만들어낸 문서들이 종교개혁의 최고봉이라는 자신의 믿음에 독자들이 공감하기를 의도하고 바란다. 그렇기에 '특강 종교개혁사'라는 제목과는 달리, 사실상 내용은 '특강 장로교회사'이며, 더 구체적으로 '특강 웨스트민스터 총회 역사'다. 그러나 이것이 작가의 의도다. 여기에 설득된 여행자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 총회의 유산인 장로교회의 신앙과 실천을 '역사상 가장 잘 개혁된 교회의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이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기를 소망한다.

특강 종교개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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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가이드는 세심하다. 그 누구보다도 장로교회 정치 및 개혁신학의 가치를 확신하는 가이드이자 작가이지만, 그는 자신의 확신을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물론 그는 친절하고 치밀하고 노련하고 집요하기에, 자신의 이 확신을 독자와 여행자도 물 흐르듯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장치를 곳곳에 마련해 놓았다. 그럼에도, 그는 이 확신이 세뇌, 혹은 강요의 방식으로 수용되기를 원치 않는다. 무엇보다 역사를 잘 아는 그는 이런 방식의 수용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을 잘 안다.

따라서 저자는 스스로의 정체성이 장로교인인 개신교인에게는 자기 정체성을 재점검하고 확신케 하는 수단으로 이 책을 활용하라고, 다른 교단과 전통에 속한 개신교인에게는 장로교인이 믿는 바가 무엇인지를 들여다본 후에 공감 어린 상호대화와 소통을 여는 도구로 이 책을 활용해 달라고 권한다. 어느 전통에 속했든, 독자는 저자의 이 세심한 권유에 마음이 끌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강 종교개혁사
▲ⓒ흑곰북스 제공
<특강 종교개혁사> 출간은 그렇게 2016년 한국에서 499주년 종교개혁 기념일의 정점이 되었다.

이재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광교산울교회 목사, <세계 복음주의 지형도(복있는사람, 2015)>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