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칼럼] 회복해야 할 신혼의 사랑(7)

입력 : 2016.11.30 18:32

권혁승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도다" (계 19:7-8)

역사의 종말에 있게 될 마지막 사건은 '어린 양 혼인잔치'이다. 이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다른 어느 것보다 큰 복을 받은 자들이다(계 19:9). 신혼의 사랑으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게' 된다. 신약성경에서 '즐거워하다'(카이레인)과 '기뻐하다'(아갈리안)가 함께 사용된 곳은 이곳과 팔복의 마지막 복 두 곳뿐이다. 여덟 번째 복에서 예수께서는 핍박을 당하는 자들에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마 5:12)고 약속하셨다. 이는 이 땅에서 핍박을 당하는 자들에게는 마지막 날에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와의 혼인잔치에 신부로서 참여하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린 양 혼인잔치는 영원한 신혼으로 들어가는 거룩한 예식으로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최종적이기도 완전한 결합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마지막 날의 어린 양 혼인잔치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구속한 교회와 절대 나누어질 수 없는 한 몸으로서의 친밀한 삶을 상징한다. 그 안에는 사랑과 신뢰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완벽한 즐거움과 교제가 포함되어 있다.

성경시대의 결혼은 약혼과 결혼이라는 두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오늘날에도 결혼 전에 약혼식을 갖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성서시대의 약혼은 결혼을 위한 약속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실제 결혼으로서의 법적 효력을 지녔다. 두 남녀 부부가 한 집에서 동거하는 것은 결혼식을 치룬 이후이지만, 약혼식을 거친 두 남녀 역시 결혼에 해당되는 법적 구속력과 더불어 남편과 아내로서의 의무감을 지녔다. 예를 들어, 약혼기간 중에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파혼하게 될 경우, 그 역시 정식 이혼에 해당되는 것으로서(마 1:19) 남자는 여자에게 이혼증서를 건네주어야 했다. 그래서 성경은 약혼한 두 남녀를 공식적으로 '남편과 아내'라고 지칭했다(창 29:21; 마 1:19, 20). 다만 약혼은 한 집에 살거나 잠자리를 같이 해야 한다는 점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 결혼과 다른 점이다.

성경에서 '약혼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아라스'이다(출 22:16; 신 20:7; 22:23-25, 27, 28; 28:30; 삼하 3:14; 호 2:19, 20). 이 동사의 어원적 의미는 '값을 지불하고 소유권을 얻다'는 뜻인데, 약혼식에서 신랑이 신부에게 건네주는 선물과 관련이 있다 할 수 있다. 그에 비하여 '결혼'에 해당되는 특별한 용어는 히브리어에서 따로 없고, 다만 '데려오다'를 의미하는 동사 '라카흐'가 사용된다. 이것은 결혼의 중요성이 약혼에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이기도 하다. 약혼 후 대략 1년 정도의 기간이 지난 뒤 남편은 아내를 집으로 데려와 본격적인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것은 남자에게 새로 맞이할 아내와 함께 지낼 생활공간으로서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한 시간적 배려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여자는 이 기간 동안 아내로서의 정절을 지키면서 남편을 기다려야 한다.

오늘의 본문에서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다'고 한 것은 약혼기간이 끝나고 남편 되시는 어린 양 그리스도께서 교회인 신부를 데리러 올 약속시간이 다가왔음을 뜻한다. 그리고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으로 단장한 신부는 약혼기간 동안 정절을 지켰음을 의미하는데, 그것이 곧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살아온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다.

예수께서 떠나가실 것을 예고하자 제자들은 더 없이 큰 근심에 빠졌다. 이에 예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제자들을 위로하셨다. 그때 예수께서 떠나가야 할 이유를 설명하신 것은 약혼과 결혼의 이미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았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여기에서 '거처를 예비하다'는 곧 약혼한 남편이 결혼 이후에 아내와 함께 살아갈 집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의 승천하심이 하늘나라에서 그리스도의 신부인 우리들의 거처를 마련하시기 위함이며, 그것이 준비가 되면 다시 이 땅에 재림하여 신혼의 영원한 안식으로 우리를 인도한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 이 땅에서 우리들은 어린 양의 약혼한 신부로서 살아간다. 약혼한 신부는 오르지 신랑이 자신을 데리려 다시 올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성도들의 옳은 행실의 기본이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홀로 존재하는 신부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로서의 신부라는 점이다. 그 중심에는 신혼의 사랑을 나누는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을 이루며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며 함께 서 있다.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목적으로 '날마다 말씀 따라 새롭게'라는 제목의 글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 이 칼럼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해당 블로그에서 퍼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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