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세상이 아파하고 있습니다

입력 : 2016.11.28 16:53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장'이라고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약속을 신뢰하고 믿음과 인내로 지낼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믿음'은 본질을 말하는 것이며, '실상'이란 확신하는 것을 뜻하며, 그리고 '증거'란 확실히 아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평소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대답은 이해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 17:6)".

사도들의 '믿음을 더하여 달라'는 간절한 부탁에 "겨자씨 한 알"로 대답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이라는 것이 너희가 생각하듯 더할 수 있다거나 크기와 부피, 그리고 무게로 달아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라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씀으로 들려집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사는 종은, 자신이 해야 할 사명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사는 종은 늘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감당하였을 뿐입니다"라고 겸손히 대답합니다. 종은 주인이 되고 싶은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는 언제부터인가 주님의 뜻과 무관하게 변질되고 있어, 안타깝게 여길 뿐입니다. 은은히 들려오는 교회당 종소리는 사라지고, 그렇게 아름답게 들려지던 차임벨 찬송소리조차 소음으로 전락되어,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부터 교회는 위기를 자초하였음을 누구나 공감하고 있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은 사람들의 복장과 사회적 신분, 경제적 능력 등 외모에 근거하여 그를 판단하거나 편애, 차별대우가 만연한 가운데 교회로서의 사명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모두가 교회의 위기라고 말합니다. 그 위기의 원인은 명예와 물질만능주의, 쾌락주의, 성공지상주의, 교회가 본질과 그 사명에서 벗어나 정체성을 잃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는, 그 결과로 교회의 성장은 중단됐으며,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는 실정입니다.

주님의 몸된 제단인 교회의 위상을 추락시키고 복음의 문이 닫혀져 가는데, 한국교회와 이 땅에 모범이 되어야 할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의 성추문, 성폭행 등 여자 문제, 금전 문제, 그리고 자신을 알리기 위한 신문과 TV에 자주 등장함으로 주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형교회 지도자들은 개척교회나 작은교회를 마치 자신의 하위 기관처럼 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형교회 목사는 교역자들을 마치 부하직원 대하듯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도 그러한 시절을 보냈음에도,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교역자들을 더 사랑하고 품어야 할 분인데 말입니다.

총회 때마다 당선되시는 분들은 변해야 한다고 저마다 외치지만, 한 해가 지나고 또 다시 총회가 열리면 늘 반복되는 메아리가 될 뿐입니다. 교회 주일학교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고 교회 안에서는 입으로 떠들지만, 노총각·노처녀들을 구제할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통해 믿음 안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인연을 맺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장로가 되면 열심히 주님을, 그리고 성도들을 섬기겠다고 해서 기름 부어 세웠지만, 막상 지도자가 되면 오히려 군림하려 하거나 교회 발전에 걸림돌 역할만 하고 있습니다. 마치 명예를 얻거나 목적을 달성한 것처럼, 주님과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거나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총회장을 비롯해 노회 임원에 이르기까지 사명을 맡았으면 그 사명에 대한 열정적인 기도와 행함이 있어야 하는데, 투표를 하기 전까지는 표를 의식해 열심히 하겠노라 하지만 막상 당선이 되고 나면 예전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지금 세상은 아픔에 젖어 의원을 요구하는데 교회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실로 주님 뵙기가 부끄러울 뿐입니다. 한편에서는 지진이 나고 태풍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데, 주님의 제자들은 안일하게 태평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답답하기도 합니다.

자연재해로 고통스러워하는 이웃을 보면서도 긍휼히 여기지 않고 자신의 돈벌이에만 열중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형제들이 어려운 일을 만나고 있음에도 방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채우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노후 준비에 혈안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권력이나 명예를 위해서는 요란합니다.

총회는 마치 큰 교회와 부를 가진 자들의 잔치인 것 같기도 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바친 헌금을 총회와 노회는 물 쓰듯 합니다. 총회는 분명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그리고 작은교회든 대형교회든 교회를 위해 사용돼야 합니다.

특히 성도들이 기쁘고 즐겁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걸림돌이 된 법들을 개정하고, 주님처럼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과 과부와 고아, 병든 자들을 긍휼히 여기며 친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치 큰 기관이 된 듯 군림하다 보니 교인은 점점 줄어가고 있는데, 수수방관만 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라도 가던 길을 멈추시고, 하나님 앞에 고요히 무릎을 꿇읍시다. 이제부터는 작은 일이라도 믿음 안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나눔과 배려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세상은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데, 오히려 교인들은 외면을 당하며 만나기를 싫어합니다.

깊어가는 가을입니다. 주님 주신 이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아파하는 세상을 위해 주님의 십자가 사랑의 향기를 뿜어야 하겠습니다. 기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무거운 짐진 자들을 위해, 기꺼이 주를 위해 나를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파하고 신음하는 그들의 곁으로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이효준 장로(부산 덕천교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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