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윤리학회 16차
▲이효재 목사(가운데)가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회장 김동춘 박사. ⓒ이대웅 기자
제16차 한국복음주의윤리학회(회장 김동춘 교수) 정기논문발표회가 26일 서울 합정동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에서 '복음과 지역윤리'를 주제로 개최됐다.

논문발표회에서는 직장인 출신의 이효재 목사(숭실대 박사과정)가 '갈등하는 그리스도인 직장인들을 위한 목회상담 방법론으로서 헬무트 틸리케의 타협 윤리'에 대해 발표했다.

이효재 목사는 "일터 목회 현장에서 만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 직장인들은 자신의 신앙과 직장의 현실 속에 갈등을 겪고 있다"며 "이들이 경험하는 갈등은 일반 직장인들이 가진 갈등 외에도 신앙이 추구하는 가치관과 직장이 요구하는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이러한 갈등은 곧바로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연결되기 때문에 더욱 근본적 문제로 다가온다"며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로부터 이러한 갈등과 관련해 목회적으로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직장에서 홀로 영적인 싸움을 치르느라 이중으로 힘든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때문에 그들은 매일 부딪치는 윤리적 문제들 속에서 때로는 적당히 비신앙적인 자세로 임하거나 근본주의적인 신념을 고수하기도 한"며 "전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소명을 실현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을 경험하고, 후자는 직장에서 왕따 혹은 부적응 문제로 고통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양쪽 모두 이러한 경험들이 누적될수록 직장생활과 신앙생활이 이원론적으로 분리되거나, 직장에서 고립 또는 소극적 자세를 취하는 등 '소명으로서의 직장생활'에 방해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이러한 문제들은 그들이 직장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분명한 소명의식을 갖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표현하거나 부정하는 행동을 초래하기도 한다. 일부는 직장생활에 무관심한 교회에 소극적으로 참여하다 아예 교회를 등지는 경우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리스도인의 직장에서의 윤리적 소명'에 대해선 "그리스도인에게 직장생활은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고, 이는 노동자 자신에게 성취감을 주고 공동체에게 유익을 주며,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라며 "그러나 현실 직장 세계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을 위한 봉사로서의 일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복음주의윤리학회 16차
▲학회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이효재 목사는 "그리스도인 직장인들에게 직장이란, 오직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사랑을 실천하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웃을 만나는 곳"이라며 "우선 동료와 소비자, 거래처 직원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의 노동으로 그들을 사랑함으로써 그들의 풍성한 삶을 위해 봉사하는 곳"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현실 경제에서 대부분의 기업들은 '최대한의 이윤을 내는 것'을 조직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고, 그 속에서 모든 기업 구성원들은 효율성이라는 목표를 위해 조직화돼 '종교적 헌신'의 영역은 철저히 배제된다. 그는 "그리스도인은 '객관 문화'인 직장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주관 문화'의 가치관을 실천하는 책임을 부여받았지만, 직장은 신앙을 표현하고 실천하는 것에 호의적이지 않다"며 "종교적 신앙은 개인의 영역이라는 이유로, 직장에서는 종교적 언어의 사용이나 가치가 직접 반영되는 것을 꺼리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특히 이러한 현실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효율성 극대화를 위해 비윤리적 업무를 지시받거나 자신의 효율성 향상을 위해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조직의 생존이라는 명목으로 뇌물성 향응을 제공하거나 편법적 방법을 동원하며, 자의 혹은 타의로 주일 근무에 동원돼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거나 거래처 사람들과의 잦은 술자리 회식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신실한 그리스도인 직장인들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신앙의 길을 추구하지만, 방황하고 갈등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며 "신앙과 직장이 각각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효재 목사는 이러한 갈등 상황의 대안적 신앙 지침으로 독일 신학자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cke)의 '타협의 윤리'를 제시했다. 그는 "그리스도인 직장인들은 생각보다 자주 윤리적 판단과 선택을 해야 한다"며 "이러한 선택의 순간, 그들은 신앙적으로 분명한 판단과 선택의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틸리케의 '타협의 윤리'를 하나의 원리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틸리케는 아무리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도, 타락한 세계의 직장에서 일할 때 항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랑을 실천하기란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다"며 "틸리케는 노동을 그 원형인 '창조 질서'가 아니라 완전한 윤리적 실천이 불가능한 '보존 질서'로 보고, 노동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멸망하지 않고 보존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진술한다"고 했다.

그는 "틸리케가 제시하는 '타협'은 선과 악, 진리와 거짓, 세계와 교회 등의 중간 지점에서 윤리적이고 항구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어떤 원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현실 속에서 완전하게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실존적 한계 때문에 하게 되는 것"이라며 "대신 틸리케의 '타협의 윤리'는 어떤 사건 혹은 사물에 대한 객관적 진술인 '사실'과 그 객관적 사실의 의미와 목적에 달린 '진실'의 구별에 근거한다"고 설명했다.

또 "궁극적 진실은 오직 하나님 안에 있고,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가 하나님께 향하고 그분께 복종할 때에만 얻어지는 것으로, 진실은 항상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으로 판단돼야 한다"며 "그러므로 우리의 타협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때 진실이 된다. 틸리케는 이러한 '타협 윤리'의 모델을 하나님이 죄악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세상과 타협한 것에서 유추한다"고 했다.

복음주의윤리학회 16차
▲기민석 박사(가운데)가 두 번째 발표를 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이 목사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과 타협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 속의 이웃들을 사랑하기 위해 타협할 수 있도록 허락하시고, 그것이 타협이 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목적에 봉사할 수 있어야 한다"며 "때문에 인간의 타협은 하나님의 용서 안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타협이 불가피한 우리의 현실은 하나님 말씀이 왜곡 없이 완전히 실천되던 창조 질서를 그리워하는 가운데, 타락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소멸되지 않고 유지되도록 하는 비상 질서 안에 있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이러한 틸리케의 타협의 윤리는 현실 속에서 오용 혹은 악용될 위험이 있고, 때문에 틸리케는 타협의 윤리를 객관화하거나 일반적 원리로 삼는 것은 거부한다. 타협은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아야 할 행위이기 때문"이라며 "타협의 윤리는 이윤이라는 효율성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직장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의 생존을 지키면서도 궁극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정리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현실 직장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은 직장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있는 그대로 실천할 수 없다는 자신의 무능함을 고백하고, 현실적 제약 속에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타협의 길을 찾기 위해 기도할 수 있다"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직접 경쟁이라는 현실을 만들지 않으셨지만, 인간이 만든 죄악된 경쟁의 현실을 이용해 선을 이루실 것"이라고 기대했다.

나아가 "교회는 직장에서 갈등하는 성도들을 이해하고, 이들에게 목회적 돌봄과 상담 사역을 확대해야 한다"며 "이들이 직장에서 지속되는 갈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현실주의나 극단적 종교주의라는 양 극단에 빠지지 않고 최대한 직장 안에서 삶을 지속하면서도 궁극적 목표인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들에게 실천할 수 있도록 돕고, 하나님의 사랑을 직장인들이 가진 한계 안에서 최대한 표현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마지막으로 이효재 목사는 "타협은 적당한 선에서 양쪽 당사자가 만족하는 '화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실천할 수 없다는 무능력에 대한 고백에서 시작해, 죄악된 직장 현실 속에 있는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드러낸다"며 "틸리케는 성도가 율법의 궁극적 목적인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합법적이고 거룩한 방법을 (구조적이거나 개인적 이유로) 현실에서 찾을 수 없을 때, 차선책을 통해 우회적으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성도들에게 율법주의와 현실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매일 영적-현실적 긴장을 유지하면서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고 밝혔다.

이후 기민석 박사(침신대)가 '성서에 나타난 생계형 직업과 신분, 그리고 소명에 대한 의의', 김승호 박사(영남신대)가 '목회자 이중직에 대한 목회윤리적 고찰', 박성철 박사(경희대)가 '막스 베버의 소명 의식과 직업윤리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를 각각 발표했다. 개회예배에서는 회장 김동춘 박사(국제신대)가 설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