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종택
▲천종택 목사(대구로고스장로교회 담임)
베드로전서 1:3~5

지난주에 우리 영혼의 구원을 상고해 보았다. 오직 구원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존재와 삶과 인생은 가치와 의미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구원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반드시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드리라는 권면의 말씀으로 그의 많은 서신을 시작하고 있다. 오늘 본문의 사도베드로의 말씀도 구원을 노래하며 하나님의 칭송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지난주 본문 엡 2:10에서 바울사도는 구원을 얻는 목적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준비한대로 우리의 삶을 구원을 위한 선한 일(good) 속에 걷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러한 good 속의 걸음을 걸으면 도달하는 종점은 무엇인가를 베드로사도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Ⅰ. 우리는 새로운 탄생을 한다


본문 3절에서 우리의 새 탄생을 선언하였다. 본문을 뜻으로 번역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찬송하리로다 우리에게 주신 그의 풍부하신 자비에 따라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생명의 소망에 대하여 다시 탄생하게 하였다."는 말씀이다. 우리의 첫 탄생은 육체를 영혼이 얻는 것이었다. 이제는 소망으로 걷는 길을 예수님의 부활로 얻게 되었고 이 길은 생명의 길이고 생명을 얻는 길이다. 이 길은 그야말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소망으로 걷는 생명의 길이다. 베드로 사도는 이것을 새 탄생(new birth)이라고 하였다. 사람이 새로운 탄생으로 새 길인 생명의 길을 걷는다는 기쁘고 희망찬 개념은 구약의 예언자들도 힌트로 보여주었으나 하나님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통하여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 주었다. 이 예수님의 사역을 직접 경험한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생생한 경험으로 새 탄생에 대하여 지금 말씀하고 있다. 베드로의 새 탄생 경험을 통하여 들어보면 이 새 탄생은 하나님의 풍성하신 긍휼로 마련된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장점으로 온 것이 아니며, 율법에 우리가 복종함에서 온 것도 아니며, 교회의 종교의식을 우리가 철저히 실행함에서 온 것도 아니다. 오히려 베드로 사도의 말대로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로 온 것이다. 긍휼이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mercy)와 동정(compassion) 이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죄와 죽음의 불완전함에서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측은한 마음이 우리의 새 탄생을 낳은 동기이다.

또한 새로운 탄생은 경험이다. 베드로 사도가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낳았다고 할 때의 동사는 우리의 삶에서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는 명확히 태어난 경험을 말한다. 이 말은 하나님이 시작하였으나 우리 자신이 새로운 탄생을 스스로 경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시편기자도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나님의 포고를  시2:7에서 전한다.  

Ⅱ. 우리는 새로운 소망을 갖는다.


본문 3절은 예수님의 부활에 의하여 생명의 소망으로 우리가 다시 태어난다고 하였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었을 때 사도들은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을 것이다. 그들은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빗장을 잠근 방안에서 겁에 질려 있었다. 그러나 부활절 아침이 그들에게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무엇이 그들을 변화시켰고 무엇이 그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주었을까? 베드로 사도가 선언하기를 그것은 죽음으로부터 예수님의 부활이었다. 예수님의 부활을 본 제자들은 새로운 소망을 확신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소망이 그들을 변화시켰으며, 변화된 그들은 변화된 사람에게서 나오는 용기와 담대함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의 확실한 증거가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하며, 신념은 사람을 바꾸게 한다. 바뀌어져서 새 사람이 되어 나오는 용기와 담대함이 진정한 변화와 용기이며, 그렇지 못하면 감정의 이입으로 일어나는 만용이 된다.

Ⅲ. 우리는 새로운 기업(Heritage)을 갖는다.


우리의 새로운 기업의 성질은 본문 4절이 분명하게 가르친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으며 쇠하지 않는 하늘에 당신을 위하여 간직한 것이 우리의 기업이다. 베드로가 말하는 것은 구원이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하늘의 집, 즉 우리의 거룩한 기업과 상속이며 다음과 같은 성질의 것이다.

1)썩지 않아(incorruptible) 사라지지(perish) 않는 것을 말한다. 예수께서 사라질 것은 금과 은 그리고 세상의 소유라고 경고하였다. 세상의 모든 것은 그 속성이 모두 세월에 따라 변화되어 사라진다. 그러나 하늘의 것은 그 속성이 영원히 항상 같은 것이다.

2)더럽지(spoiled) 않는 것을 말한다. 더럽지 않는다는 것은 완전하다는 뜻이다. 모든 것이 흠이 없고 부족함이 없으며 최고의 것이다.

3) 쇠하지(fade) 않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모든 아름다움이 쇠하여지고 추한 것으로 바뀐다. 장미도 시들고 아름다움도 늙어진다. 벧전1:24-25에서 베드로는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라는 말로 이사야40:6-8을 인용하며 하늘나라에서 받는 기업은 영원히 보존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위의 말을 종합하면, 하늘나라에서 우리가 받는 기업은 최고최상의 완전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다. 이러한 속성은 우리와 세상의 모든 것에 정반대의 것이다. 세상과 우리는 유한하며 완전치 못하고 이 또한 항상 변화 속에 쇠퇴하여 간다. 구원의 길에서 그 마지막에 무사히 도착하면 세상의 모든 것이 완전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과 우리의 존재, 그리고 삶의 조건이 불완전하고 고통과 아픔임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하여야 이러한 불합리와 불완전에서 벗어나 완전과 성숙을 이룰 수 있을까? 예수님의 부활로 이루어지는 구속을 경험하는 것이 새로운 탄생이다. 그리고 이 새  길을 걸어가는 것이 소망이며, 그 목표에 도달하여 우리가 구원으로 얻는 것이 하늘의 기업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 인생의 과정을 창조하기 전에 계획하셨고 육체의 탄생에서부터 시작하여 새 생명의 탄생과 소망으로 길을 인도하여 하늘의 기업을 구원으로 우리에게 주실 것을 먼저 예비하셨다. 실로 긍휼과 은혜를 감사하며 송축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지전능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감사와 송축만을 듣기 위하여 이러한 놀라운 계획과 목적을 뜻으로 두셨을까? 진정한 감사와 송축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따라서 구원을 이루는 것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구원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구속의 피를 흘리신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이루는 하늘 백성에게만 십자가의 피가 보혈이 된다. 천하를 얻고도 네 생명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말씀은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하늘백성의 생명하나를 천하보다 귀하게 보시며 하나님은 나아오는 구원의 생명을 지키신다. 다함께 하나님의 뜻을 알고 따라 구원의 큰 축복을 받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