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촛불집회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김진영 기자
11월 12일 해가 질 무렵.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3번 출구를 나와 세종대로 사거리까지 걸어가는 데 무려 20분이 걸렸다. 불과 20m도 채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밀려드는 인파를 뚫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산인해'라는 말로도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윽고 해가 지자 저마다 손에 든 초에 불을 밝혔다.

이날 촛불집회의 규모가 6월 항쟁 이후 최대라고 한다. 주최 측은 약 100만, 경찰은 약 25만 명으로 각각 추산했다. 광화문 일대를 중심으로 종로에 이르기까지 거리는 온통 사람들로 가득했다. 서울 뿐만 아니라 지방 곳곳에서도 이와 비슷한 집회가 열렸다.

2016년 대한민국의 가을은 온통 '최순실 게이트'로 물들고 있다. 기독교계도 다르지 않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김영주 목사)는 물론 사태 초기, 다소 조심스레 입장을 밝혔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이영훈 목사)와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 조일래 목사)도 이후 다시 보다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여러 신학대와 단체들의 '시국 선언'도 잇따르고 있다.

한기총은 "여야 지도자들과 각계 각층의 지도자들이 중지를 모아 조속히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대한민국의 발전된 미래를 향해 전진해 나아가야 한다"며 "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관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 처벌하라"고 했다.

광화문 촛불집회
▲집회 참석자들은 밤 늦게까지 촛불을 밝혔다. ⓒ김진영 기자
한교연도 "민주적 통치의 근간을 흔들리게 하고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모든 책임은 대통령이 져야 할 몫"이라며 "연일 계속되는 시국선언과 대통령에 대한 하야 요구가 국민들의 피맺힌 가슴에서 나오고 있음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NCCK 소속 교단장들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그래도 우리 대통령이라는 애정과 믿음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모든 기독교 가족들은 대통령님을 위해 기도했다"며 "그런데 대통령님은 우리의 믿음을 저버렸다. 이제는 더 이상 대통령님께 희망을 두지 않는다. 대통령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고 했다.

장신대 등 예장 통합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들 156명은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만큼 국민 대다수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그 직에서 내려와 참회할 것을 요구한다"며 "대통령을 포함하여 이번 사건과 관련된 이들이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날 촛불집회에 참석한 한 기독교인은 "그 동안 나라를 위해 많이 기도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그러나 기도만 할 순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생각에서 오늘 여기에 왔다.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또 다른 기독교인은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교회는 기도했고, 누구보다 먼저 슬프고 힘든 국민들을 위로했다"며 "이번에도 교회가 아프고 상처받은 국민들에게 힘을 주었으면 좋겠다. 비록 우리나라가 지금은 몸살을 앓고 있지만 하나님의 크신 뜻 안에서 새롭게 나아가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광화문 촛불집회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한 기독교인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김진영 기자
앞서 언급했던 장신대 등 예장 통합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들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1년 앞둔 시점에 벌어진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시대의 징표이다. 이는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고 한국사회를 정의롭게 하라는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이자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이 시대의 십자가임을 고백한다.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신 분이 우리 민족을 일제에서 해방시키시고 전쟁과 독재에서 구하셨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면서 우리는 앞으로 오로지 진리를 선포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따라 행할 것을 다짐한다"고 했다.